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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영의 제주도 여행기 제1편 아!백록담
김범영  2011-10-11 14:38:42, 조회 : 675, 추천 : 84

김범영의 제주도 여행기
본 저자 김범영이 직접 보고 느끼고 격은 제주도의 모든 것을 솔직하고 꾸밈없이 그려가는 이야기입니다.

현실 속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그려나가는 생생한 실화.

많은 사랑과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제1편 아! 백록담.



“혜야! 진아!”
새벽부터 곤히 잠자는 두 딸을 깨웠다.

“벌써 가려고?”
두 딸은 하나같이 잠에서 깨기 싫어서 시간을 조금 늦춰 줬으면 하는 눈치다.

“얼른 안가면 주차 공간이 없고. 정상을 오르지 못할 수도 있으니 서두르자.”
평소 같으면 그래 더 자라! 하고 걷어찬 이불도 덮어 줬을 아빠지만 나의 두 손은 딸들이 덮고 자는 이불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아침밥은 먹고 가야지.”
아내는 벌써부터 일어나서 아침 준비를 이미 마친 상태였다.

긴 통나무 식탁위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계란찜과 생선구이가 밥과 함께 차려져 있었다.
계란탕은 유난히 색이 노랗다.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양계장에서 며칠 전 5판을 사온 계란은 이미 두 판을 먹어 치웠다.


몸이 뚱뚱한 큰딸이 다이어트를 한다고 계란 흰자를 먹어치운 탓이다.
그런 까닭에 우리 집 계란탕은 늘 노른자만 갖고 만들다보니 유난히 색이 노랗다.


벌써 1달째.
제주도엔 비가 내리지 않았다.
심한 가뭄 때문에 아내는 밥을 차려놓고 텃밭에 호수로 물을 뿌리고 있었다.


10월 1일 국경일이지만 아내는 직장에 나가야 한다.
오늘 한라산 등반은 나와 두 딸만 하기로 했다.


제주도 마늘 심기는 검은 비닐을 씌우고 구멍에 뾰족한 도구를 이용해 땅을 찌른 다음 마늘을 그 속에 세워두는 방식이다.
흙을 전혀 덮지 않아서 조그만 가뭄에도 물을 뿌리지 않으면 말라 죽는다.
또한 저장성도 그리 좋지 않다.


하지만 우리 집 텃밭의 마늘은 그렇지 않다.
마늘쪽의 2~3배는 되도록 땅속에 깊이 묻혀서 심어져있다.
그런 관계로 가뭄을 타지는 않는다.
1달 이상 가뭄이 계속되자 아내가 걱정을 해서 물을 뿌려주고 있는 것이다.


아내가 텃밭에 물을 뿌리는 사이 나와 두 딸은 서둘러 아침 식사를 했다.


“김밥 싸놨으니까 갖고 가요”
어느새 작은 배낭에 김밥과 물을 준비한 아내가 무척 고마웠고 한 편으론 미안했다.
휴일에 같이 갔으면 좋았는데.


“갔다 올게”
“엄마! 갔다 올게.”
나와 두 딸은 서둘러 성판악으로 향했다.

올해 제주도 한라산 등반코스 중 관음사 코스와 성판악 코스만 정상을 오를 수 있다는 것을 한라산 관리사무소에 전화로 문의해서 확인을 했기 때문에 가장 험난한 관음사 코스는 다음에 오르기로 하고 조금 쉬운 성판악 코스로 향했던 이유는 큰딸 때문이기도 했다.

운동부족에 비만인 큰딸이 성판악 코스로 과연 정상에 오를 수 있을까?
나와 작은 딸은 서로 눈짓으로 큰딸 몰래 미덥지 않다는 표정을 주고받았다.


총 등반 코스 10km 거리의 성판악.
한라산 등산 코스 중 새로 생긴 돈내코쪽 등산로가 가장 길다고 하며 다음이 성판악 코스다.
가장 짧다는 관음사 코스는 총 8km거리. 사실 그래봐야 2km거리가 길지만 등산 코스로는 많은 차이가 난다 .
도착을 해보니 이미 주차 공간은 없었다.
“참! 부지런한 사람 많다!”
“그러게요. 이제 6시 조금 넘었는데.........”
나와 딸들은 일찍 온 사람들을 존경하며 도로변에 길게 늘어선 주차 차량들 맨 뒤에 주차를 하고 서둘러 성판악 등산 코스 입구로 걸어갔다.
“12시 30분까지 진달래 대피소까지 못 가면 정상에 오를 수 없어!”
화장실을 찾아 걸어가는 두 딸 등 뒤에다 난 서두르라는 뜻을 보냈다.


20대 젊은 사람들도 산을 오르는 속도는 나를 따르지 못한다.
6시간 걸린다는 정상까지 갔다 오는 시간을 난 4시간 근처에 왕복을 한다.
컨디션에 따라 4시간 30분도 걸리고. 딱 4시간도 걸린다.


문제는 우리 큰딸.
그 아이를 데리고 과연 몇 시간이나 걸릴까.


삼림욕으로도 아주 좋은 등산길.
양쪽으로 나무숲이 우거져 하늘을 가릴 정도이므로 상판악은 그야말로 천혜의 삼림욕 코스다.


거의 평지 수준의 오름.
4km 지점에 화장실이 있다.
그곳까지 참고 가지 않으려면 입구에서  강제로라도 소변을 보고 출발을 하는 것이 좋다.


“아가씨는 어디서 왔어요?”
이제 막 1km정도 오르기 시작 했을 때.
내가 큰딸을 데리고 가느라 조금 뒤쳐진 때문인가.
작은 딸 옆에 어떤 남자가 붙어 말을 걸고 있었다.
나와의 거리는 불과 10여 미터.


“제주도 사는데요.”
작은 딸은 공손하게 대답을 하고 있었다.
“물을 가지고 다녀야지 가다보면 목말라요. 하나 드릴까?”
남자는 자신의 배낭에서 작은 생수병을 꺼내 작은 딸에게 내밀었다.
작은 딸이 뒤를 돌아다보며 나에게 묻는 눈치다.
받아도 되느냐? 하는 것이다.


등산길에서 만난 사람은 모두가 다 같은 마음이니 남의 친절을 무시해도 안 되는 것이기에 난 고개를 끄떡거렸다.


“감사합니다!”
작은 딸은 물병을 받아 손에 들었다.


옆에서 걷는 남자의 걸음보다 조금씩 쳐지면서 작은 딸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빠가 마셔!”
작은 딸은 물병을 나에게 주고 내가 메고 있는 배낭에서 다른 물병을 꺼내들고 갔다.
녀석. 기특하게도 아빠가 늘 당부하는 말을 잊지 않고 잘 실천을 하는 것이다.
난 두 딸에게 늘 이렇게 말했다.
누가 먹을 것 음료수. 물. 또는 음식을 줘도 먹어선 안 된다. 라고.
세상이 워낙 험악해서 성폭행 범죄자들이 여자나 노인들을 이용해서 접근시키고 물과 음료수에 약을 타서 먹으라고 준다는 어느 방송을 듣고부터 주의를 주는 것이었다.



“아빠! 좀 쉬었다가 가자!”
큰딸은 이미 지쳐있었다.
정상에 올라갔을 시간인데 이제 겨우 중간 화장실이 있는 곳에 도착을 했다.


그렇다고 작은 딸은 팔팔하다고 볼 수도 없었다.
작은 딸도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럼 5분간 휴식이다”
남자이기 때문인가 아니면 아직도 군대 시절의 추억이 남은 것일까.
마치 군 훈련병시절 조교들이 하는 말투가 내 입에서 튀어 나왔다.
말을 하고 난 나도 무척 놀랐다.



힘을 내서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한 딸들을 데리고 약수가 있는 중간 쉼터에 도착을 했다.

빈병에 물을 채우고 조금 쉬었다가 출발을 하려는데.


“아가씨! 여기 김밥도 들고 가면서 먹어요.”
작은 딸에게 누군가 김밥을 건넸다.

저 남자는........
작은딸 옆에 붙어서 물병을 주던 그 남자였다.
비록 뒷모습만 봤었지만 옷을 입은 모양이 같았다.
그런데
이 남자는.........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생긴 것도 그다지 착해 보이지 않았다.



“아! 여기 김밥 많이 있어요.”
난 작은 딸이 어떤 생각과 결정을 하기 전에 미리 막고 나섰다.


“아빠에요. 고맙습니다! 저희도 김밥을 많이 싸와서요.”
머쓱해져있는 그 남자에게 작은 딸이 겉치레 인사를 했다.


“사라 오름에 있는 분화구를 보고 사진도 찍고 정상으로 향하자.”
시간도 넉넉해서 우린 사라 오름으로 향했다.

40여분 거리.
사시사철 분화구에 물이 있는 곳.

일반인에게 전혀 공개를 하지 않았던 사라 오름  
정말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오랜 가뭄 때문에 물은 이미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고 등산로 공사가 한창이어서 공사 자재들이 어지럽게 늘어져 있는 것이 흠이었다.


왠지 한번 쯤 물속에 풍덩 들어가 그 속에 무슨 물고기가 사는지 보고 싶은 충동이 느껴졌다.
팔딱팔딱 뛰며 즐거운 탄성을 지르는 작은 딸과는 반대로 큰딸은 이미 녹초가 돼 난간에 몸을 기대고 숨을 할딱거리고 있었다.



사라  오름에서 내려와 다시 시작된 정상을 향한 출발 시점에서.
큰딸은 결국 포기를 했다.
더 이상은 무리라는 판단 아래.
작은 딸과 둘이서만 정상에 가기로 했다.


지친 큰딸은 몸을 쉬면서 진달래 대피소까지 올라 정상에서 내려오는 나와 작은 딸과 만나기로 했다.


“에고 힘들어!”
작은 딸 입에서도 연신 그 말이 튀어 나왔다.


“정말 힘들어!”
작은 딸 말을 받아 같이 장단을 맞추는 아이가 하나 있었는데.
바로 비슷한 또래의 여자아이다.
이제 20세 초반 정도로 보이는.


내 앞에서 둘은 그렇게 서로 주거니 받거니 힘들다는 말을 장단 삼아 천천히 올라가고 있었는데.


이 아이 정말 아무것도 없는 빈손이었다.
작은 물병 하나 없는 빈 손.
순간 나는 배낭을 내려 물병을 꺼내 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까 그 사람도 나와 같은 그런 마음이었을까?
같은 마음이었는데.
내가 괜히 오해를 한 것이라면 세상이 험악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닐까?


애야! 라고 부를 수도 없으니 그냥 아가씨라고 불렀다고 봐야 할 것이고.
자신의 딸 같으니 물도 음식도 나눠주고 싶었을 수도 있는데.
내가 너무 오버를 한 것이 아닐까?
딸을 둔 그 남자의 마음도 이해를 해야 하고 내 딸을 보호 하려는 나의 마음 또한 이해를 해야 하는 이 세상이 너무도 우습지 않는가?


조금 올라가면 진달래 대피소이니 그 곳에 매점도 있다.
필요하면 사서 마시겠지.
난 결국 그 아이에게 물병을 주지 못했다.
나도 누군가에게 나와 같은 오해를 남기고 싶지 않아서........


결국 그 아이도 나와 작은 딸도 정상에서 만났다.
그렇게 힘들어하며 그 아이는 결국은 정상에 섰다.
비록 오랜 가뭄 때문에 백록담엔 물이 한 방울도 남아있지 않았지만.
이미 나와 작은딸. 그리고 그 아이 눈엔 경치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난 그 아이와 내 작은 딸이 들도록 한마디를 했다.


인생도 마찬가지로 한번 뒤처지면 앞서 가는 사람을 따라잡기 힘들고.
늘 쳐진 인생이 되는 것이다.
정상에 오른 사람만이 정상을 알고 다시는 정상에서 밀려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공부도 사회생활도 정상에 오르는 기쁨을 모르고서는 노력하는 즐거움도 모른다.
그러니 늘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한껏 폼을 잡고 딸에게 가르침을 내리는데.
어떤 녀석이 찬물을 뿌리고 있었다.


“학생 사진 좀 부탁할까?”
바로 작은딸 옆에 붙어서 물병을 주고 김밥을 주려고 하던 그 40대 후반의 남자다.
내가 있는데 아가씨 하고 부르며 김밥을 주다가 머쓱해졌던 그 남자는 은연중에 오해를 풀어보려는 속셈이 깔려있었다.


난 눈짓으로 작은 딸에게 그렇게 해드리라고 했다.
사람의 호의를 오해를 했던 내가 더 나뿐 사람이란 걸 뒤 늦게 알고 그 남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정상에서서 즐거움을 누리는 것도 좋지만 기온 차이가 심해서 나는 작은 딸을 데리고 바로 하산을 서둘렀다.


진달래 대피소에서 기다릴 큰딸 걱정도 있지만.
기온 차이가 심한 곳에서 땀을 흘렸던 몸으로 오래 있으면 체온이 떨어져 감기에 걸리기 때문이다.


난 그런 걱정은 없다.
감기에 걸리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벌써 20여년 전혀 감기에 걸려본 기억이 없다.
감기 기운이 있어도 하루나 이틀이면 사라진다.
특이한 체질이라고 아내는 말하지만.
늘 오르는 등산이 내게 건강을 주기 때문이다.



“에고 힘들어!”
70대 할머니 한 분이 하산 하려는 나의 눈에 들어왔다.
이제 막 백록담에 도착을 한 것인데.
사라 오름 3거리를 지나 조금 오르면 30여 계단 가파른 경사가 있다.
그 곳에서 만났던 할머니다.


“정상에 가려면 이곳보다 경사가 더 심한가요?  저기 보이는 봉우리가 정상 아닌가요?”
내게 그 할머니는 그렇게 물었었다.
“그럼요. 정상을 가려면 이곳 경사처럼 가파른 오르막길을 10개는 더 올라가야 됩니다. 그리고 저 봉우리는 정상이 아니고요. 저 봉우리에 올라가면 그 위에 성산일출봉의 두 배는 되는 가파른 봉우리가 하나 더 있습니다. 그 곳이 백록담 정상입니다.”
너무 겁을 준 것 같아 내내 마음에 걸렸는데. 정상까지 올라오신 것을 보고 안심을 했다.



“이게 무슨 효도 관광이야! 늙은이들 골탕관광이지.”
어느 할아버지는 정상을 열 발자국 정도 눈앞에 두고 쓰러지듯 바닥에 누워버리며 투덜거렸다.


“이것들이! 지 애비 골탕 먹이려고 작정을 했어!”
같이 온 할아버지도 맞장구를 치며 바닥에 드러누웠다.


그래 70대 노인들에겐 무리한 관광이 맞다.
나 역시 그 노인들 말에 동의를 했다.



서둘러 내려 온 진달래 대피소.
체온이 떨어지자 추위에 떨고 있는 두 딸들을 위해 컵라면을 사서 김밥과 함께 접심을 먹었다.

태풍 무이파의 잔해가 남아있는 백록담.
나무로 만든 계단이며 난간들은 흩어져 어지럽게 나뒹굴고 있어서 무척 안타까웠지만.
그 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등산객들이 아직도 담배꽁초며 음료수 캔과 물병들을 숲에 던져 버린다는 것이었다.


선진국으로 향하는 대한민국.
국민들 정신 상태부터 선진국으로 갈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더욱 기가 막힌 것은 등산로 곳곳에 노인양로원 또는 일부 연예인들 광고물이 나뭇가지에 묶여 매달려 있다는 것이다.
마치 나무를 사랑하는 문구를 누구에게 보이려는 듯 나무를 사랑 합시다. 라는 문구까지 넣어서 노인양로원 광고와 연예인 광고까지 지저분하게 등산로 나무에 매달아 놓았다는 것이다.



두 딸을 데리고 올라간 백록담.
뭔가 가르침을 주려고 한 내 속셈은 혹시나 저런 못된 내용을 딸들이 배우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하기에 바빴다.


오를 때는 힘들어 안보이던 것이 내려오는 길엔 잘 보였다.
그렇게 챙기고 챙겼지만 결국 작은딸은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정상에 올라가서 쉴 때 걸칠 두툼한 옷을 반드시 가지고 가야할 것이다.



2011년 김범영의 한라산 등산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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