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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영 실화소설 [귀여운처제3]원본
김범영  2011-04-11 15:38:18, 조회 : 1,312, 추천 : 91

굵은 빗방울이 후두둑,  후두둑, 소리를 내며 떨어지고 있었다.
철썩.
철썩.
파도 소리가 들려오는 높은 벼랑 위.
떨어지는 소나기를 고스란히 맞고 서있는 사람이 있었으니.
여인이었다.
온통 얼굴엔 슬픔이 가득 차 있었다.
빗물이 흘러서 눈물인지는 알 수는 없으나 그녀는 지금 울고 있었다.









자살을 하려는 것일까.
그런데.
그녀의 옷이.
고교생 복장이 아닌가.
빗물이 흐르는 얼굴을 자세히 보니.
아! 그녀는.
진미경.
바로 그녀였다.








오장진에게 첫 순결을 바쳤다고 하던 그녀.
j대학교 가정학과에 다닌다 하던 그녀.
그녀는 고등학생이었단 말인가.
그녀의 슬픈 얼굴에 잠시 지난 일을 회상하고 있었다.








3일전부터 어머니는 그녀를 데리고 산부인과를 가자고 했다.
오장진과 하룻밤 섹스가 그녀에게 임신이란 것을 안겨준 것이다.
임신.
고등학교 이제 3학년.
그녀의 어머니에겐 청천병력과 같은 충격이었다.









이년아!
대학도 가고 그래야 하는데.
누군지도 알지 못하는 놈의 애새끼를 낳으면 어떻게.
당장 떼버리자.
오늘 나하고 산부인과 가서 수술하고 오자.
당장.







어머니의 성화는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그녀는 집에도 학교에도 갈 수가 없었다.
이미 학교에서도 알건 다 알아 버렸다.
그래도 믿는다고 단짝 친구인 아랫마을 끝순이에게 살짝 말했더니.
이 계집애가 다 떠벌리고 다녔던 것이다.
빌어먹을 계집애.
진미경은 있는 욕을 다 퍼부었지만 이미 엎어진 물이다.










저기 발아래 30미터는 되는 낭떠러지.
한발만 앞으로 내딛으면 모든 걸 잊을 수 있는데.
그렇게 하기는 싫었다.
그래도 자신이 사랑해서 함께한 그 사람의 씨앗이 뱃속에 있는데.
그 아이마저 태어나지도 못하고 세상을 등지게 할 수는 없었다.
어디 멀리 도망이라도 가서 혼자 애기 낳고 살아야 하는가.
홀로된 어머니는 그냥 놔두고.











후두둑...
휘잉.
철썩. 철썩.
비바람과 파도 소리는 여전한데.
진미경은 발걸음을 돌리고 있었다.
죽으나 사나 집으로 가려는 것이다.









흑흑.

멀리서 진미경의 행동 하나 하나를 다 지켜본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진미경의 어머니다.
지금 집으로 돌아가는 딸을 바라보며 울고 있었다.







염병할 놈.
여행 와서 민박집에 들렸으면 잠이나 자고 놀다 갈 것이지.
남의 귀한 딸래미는 왜 건드리고 가.
후래 자식 놈.
집으로 돌아가는 진미경을 바라보며 어머니는 딸을 그렇게 만든 이름도 모르는 남자
에게 욕이란 욕은 모조리 꺼냈다.










[왜우런?]
딸래미가 자살을 하려는 것으로 알았는데 마음을 고쳐먹고 집으로 가자.
신세를 한탄하며 울던 어머니 등 뒤에서 할머니 목소리가 들렸다.
왜 우느냐고 묻는 말이다.
[아! 고종 할망.]
진미경 어머니는 등뒤에 서있는 할머니를 발견하고 반가워했다.
고씨  종가 집 할머니라서 그렇게 부른다.
진미경 어머니가 반가워하는 것은
다른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미래를 잘 맞추는 신통력이 있는 할머니로 이미 동네 사람이면 다 아는 사실이기 때
문이다.









[미경이가 임신을 했다고?]
할머니는 진미경 어머니의 말을 듣고 확인하듯 다시 물었다.
[네!]
진미경 어머니는 얼른 대답하며 미경이 앞날 좀 봐달라고 졸랐다.
[걱정마라! 기다리면 올 거다. 애기나 잘 기르고 있으면 반드시 올 테니 기다려라!]
할머니는 그렇게 확신하듯 말하며 진미경 어머니를 위로했다.
[그놈은 대체 누굽니까?]
진미경 어머니는 할머니에게 그렇게 물었고.
할머니는 진미경이 천생배필이라고 했다.




[배필. 내 딸년의 배필이라고.]
진미경의 어머니는 그 고씨 할머니의 말을 철썩 같이 믿었다.
왜냐하면 신통력이 있는 할머니이므로.









[할망 말대로 그래 낳고 기르며 기다리자! 그놈이 온다 했으니 기다려!]
진미경 어머니는 미경에게 그렇게 말을 하며 얼마 남지 않은 고등학교를 중퇴시키고
헤어디자이너 학원에 다니도록 했다.
진미경은 고교를 3개월 남기고 중퇴를 하고 우선 운전면허 시험 준비를 하면서 제주
시내에 있는 미용학원에 나가기로 하였다.
배가 부르기 전에 우선 운전면허부터 따려는 생각에 열심히 학원에 다니며 실습위주
로 공부를 했다.









외무고시를 패스한 지 이미 2년째.
석사학위와 박사 코스를 겨냥한 대학원인데.
문제가 생겼다.
아버지의 특명이 떨어진 것이다.






한중 교류가 한창인 때.
중국에 외교관으로 나가 있으라는 것인데.
아버지의 뜻은 다른 곳에 있었다.
중국에 진출하는 기업들 알맹이를 살펴보라는 것이다.
돈을 빌려줘도 되는지 알아보라는 것인데.








대학원 졸업을 두 달 남겨둔 상태에서부터
중국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다희.

그녀도 아마 그때부터라고 했다.
나를 따라가려고 중국행을 준비한 시기가.







중국행을 한 달 정도 남겨둔
늦은 가을.
11월.
큰 후박나무 잎들이 바람에 날려 하나 둘.
다 떨어지고 몇 잎 남아 있을 무렵이다.













핸드폰이 울리고.
전화를 건 다희는.
h전통 찻집에서 만나자고 했다.
약속 시간은 좀 늦은 밤 9시 정각.
지금까지 늘 만나왔지만 이렇게 늦은 시간에 먼저 만나자고 하는 것은 첨이다.









한강변에서 땀이 나도록 운동을 하던 나는.
다희의 전화를 받고 급히 집으로 돌아왔다.
얼른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겨우 30분 남았다.







샤워를 마친 나는.
얼른 옷을 갈아입고 뛰다시피 주차장으로 나갔다.
급 할 땐 정신도 따라서 급하기만 한 것.
옷을 갈아입느라 자동차 키를 갖고 나오지 않았다.
그냥 택시를 타고 갔다.
기다렸다는 듯.
집 앞에 지나가는 택시가 마침 있었던 것이다.








h전통 찻집은 여의도 한강변에 있었다.
방배동에서 차가 밀리지 않는 시간이라.
20분 만에 도착했다.
찻집으로 막 들어가려는데.
다희를 찻집 앞에서 만났다.








[오빠!]
다희가 나를 부르며 쪼르르 달려와 두 팔로 허리를 감싸않았다.

[다희 알바 끝나고 오는 모양이구나?]
난 다희의 몸에서 나는 햄버거 냄새를 맡았다.
[응! 짠돌이 사장님이 저녁도 안주고 일만 시켰어. 배고파. 뭐 좀 사줘!]
다희가 내 오른팔에 두 손을 잡고 매달리며 아양을 떨었다.
[그래! 나도 아직 저녁 전이거든.......! 저 앞 선착장에서 피자 파는데 맛이 그럭저럭 먹을 만하더라.]
난 고교시절 최민희와 간혹 왔던 피자집의 피자 맛이 생각나서 말했다.
[뭐야! 하루 종일 햄버거와 피자냄새에 쪄든 날보고 피자 먹자고?]
다희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이.  이런! 그렇지! 미안!]
난 정말 대책 없는 남자다.
데이트하는 여자 생각은 전혀 안하는 모양이다.
알바 하느라고 햄버거 피자 냄새만 맡고 있는 다희에게 피자를 먹자고 하니 말이다.









[저쪽 방송국 있는 앞에 가면 아구찜 맛있는 집이 있어. 그거 사줘!]
다희는 얼큰한 것이 먹고 싶은 모양이다.
나는 다희와 함께 20여분을 걸어 아구찜을 먹으러 갔다.
그 20분 정도 걸어가면서.
다희는 누가 볼 새라 번개같이 내 입술에 살짝 입맞춤을 했다.








다희와 처음으로 입맞춤을 한 것인데.
너무 순간적이라서 어떤 느낌마저도 느낄 수 없었다.
그래도.
좋았다.








아구  아구.
다희는 입이 터져라 아구찜을 입으로 집어넣고 있었다.
무척 배가 고팠던 모양이다.
다희가 먹는 모습을 지켜보느라고 난 몇 숟가락 뜨다보니 이미 큰 냄비가 다 비워졌다.








[오빠! 이제 한 달 남았지?]
다희가 나에게 중국행을 묻는 것이다.
[응! 그래!]
난 고개를 끄떡이며 대답했다.
[풉.......!]
다희가  살짝 웃음을 지었다.











[이제 배가 부르니까. 소화도 시킬 겸 영화나 보러가자!]
다희는 나의 팔을 잡아당기며 길가에서 택시를 탔다.
[신촌으로 가요!]
다희가 택시기사에게 말했다.
신촌.
이미 시간은 밤 10시가 다돼가고 있었다.








[영화를 보다보면 시간이 너무 늦을 텐데? 부모님이 걱정하신다며?]
난 영화관 입구에서 다희에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늘 나와 데이트를 할 때면
부모님을 들먹이며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던 다희다.
저녁 10시가 넘도록 같이 다닌 적이 없었다.








[쉿!]
다희는 내 입에다 손가락을 대며 말하지 말라는 시늉을 했다.
난 다희가 다른 때와 틀 린 행동을 보이므로 뭔가 집안에 일이 있나보다 했다.
더 이상 묻지도 않고 함께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영화관에서 영화를 감상하는 동안.
다희는 나에게 살며시 안겨오며 그동안 철저히 피했던.
성적 접촉을.
진한 키스로 개방해주고 있었다.













비록 어둡고.
영화를 관람하느라고 다른 사람들 볼 여유가 없다고들 하지만.
눈치가 보여서 긴 키스는 하지 못했다.








영화가 끝날 즈음.
두 번째 키스를 하고 아쉬운 듯.
영화관을 나섰다.








이미 12시가 넘어서고 있는 시각.
다희는 내 팔을 두 손으로 잡아끌며 술집으로 갔다.








[간단하게 한잔만 하고.]
뒷말을 흐리며.
다희는 바에 앉아 위스키 두 잔을 시켰다.
여전히 내 손을 두 손으로 꼭 잡고.








[한잔씩 더 할까?]
난 한잔 가지고는 입가심도 안됐다.
다희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위스키 두 잔째 시켰고.
나오자마자 급하게 비워버렸다.








난 소주나 맥주 같은 술은 많이 못 마셔도 양주엔 강했다.
아니 독한 술엔 강했다.
밤새도록 마셔도 취해서 쓰러지지는 않는다.
신기한 술꾼이라고 친구들이 놀려대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그렇지만 다희 생각도 해야 하기 때문에
위스키 3잔을 마시고는 술집을 나섰다.
다희는 두 잔을 마셨다.







[오빠! 중국에 가서 오래 있을 거 에요?]
길거리를 걸으며 다희가 물었다.
[응! 아마도.]
난 아버지를 너무도 잘 안다.
한번 결정한 일은 끝장을 봐야 멈춘다.
아마도 몇 년은 걸릴 것이다.









[결혼은 언제 하려고요?]
다희가 얼굴을 살짝 붉히며 물었다.
그 답을 꼭 듣고 싶다는 표정으로 날 처다 봤다.
[인연이 있으면 중국에서도 할 수 있지. 안 그래?]
난 다희를 보고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중국에서. 어떻게 결혼을.]
다희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결혼을 꼭 하객들 모시고 해야 하나? 둘이서라도 마음만 맞으면 되지.]
난 늘 그렇게 생각했다.
예식장에서 많은 사람들 모시고 축하 받으며 결혼을 하는 것도 좋지만.
겉은 번지르르 하지 속을 들여다보면 사실 그렇지 않다.
축하는 얼어 죽을.
축의금 내면서 욕이나 안하면 다행이다.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축의금을 내고 싶어 내는 사람은 드물다.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늘 축의금 내러 다녀봤지만.
대부분 만난 사람들이 투덜거리며 축의금을 내고 있었다.
그런 돈 받으려는 생각에 하객들을 모아놓고 결혼하는 사람이 또한 많다.
결국 결혼도 장사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결혼은 나에겐 달갑지 않았다.
조촐하게 친척들 모아놓고 축의금 안 받고 결혼을 하고 싶은 마음이 늘 마음속에 있었다.









[오빠! 나. 오빠 좋아해!]
다희가 어렵게 나에게 고백을 하는데.
젠장.
지나가는 오토바이가 나를 툭 치면서 지나가는 바람에.
다희의 고백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뭐? 뭐라고?]
난 그렇게 다희에게 되묻고 나서야.
다희가 방금 한 말이 제대로 기억이 났다.
이런.
실수를.
난 아차 싶었는데.









[저기.]
다희가 어딘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얼굴을 붉혔다.
[.......!]
난 다희의 손가락을 따라 고개를 돌렸는데.......
저. 저건.
다희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것이.
간판이었는데.
그 간판 이름이.










p모텔.
러브호텔이다.
무슨 생각인지.
다희의 손가락은 가늘게 떨고 있었고.
얼굴은 붉게 물들며 살며시 숙이고 있었다.
부끄러운 모양이다.








드디어.
오랫동안 사귀던 다희.
오늘이 그날인가.
난 가슴이 콩콩 뛰기 시작했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반짝이는 러브호텔 간판을 한동안 바라보던 나는.
다희를 살며시 안고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반짝. 반짝.
러브호텔 간판 옆에.
또 하나의 간판이 있었다.
만화방.
제기랄.
혹시 저 만화방 가서 책 빌리자는 것 아닐까.










불길한 생각에.
가슴이  오그라들고.
콩콩 거리던 심장도 조심조심 뛰기 시작했다.








비틀.
술에 취했는가.
다희가 잠시 비틀 거리며 내 품에 안겨왔다.
난 더욱 바싹 조이다시피 다희를 안고.
만화가계로 가자고 하기 전에.
서둘러 러브호텔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악!
나의 입에서 비명이 터졌다.
다희가 뾰족한 하이힐 뒤 굽으로 내 발등을 찍은 것이다.
[까르르. 남자들이란 다 엉큼하다니깐! 오빠도 마찬가지 야!]
저만치 도망가면서 다희가 통쾌하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제기랄.
저 말괄량이한테 또 당했다.
아픈 발을 절룩거리며 멀리 달아나는 다희 뒷모습을 바라보며 난 투덜거렸다.







그날 그렇게 도망친 다희는 한 동안 소식이 없었다.
나 역시 먼저 전화를 걸지 않았다.














중국 북경.
h호텔.
아버지가 그 비싼 호텔방을 무려 6개월이나 빌려서 나에게 준 것은.
흔 한일이 아니다.
돈도 돈이지만.
아버지나 나의 존재 자체를 남에게 알리기 싫어하는 성격이라서.
아버지의 그런 행동은 파격적인 것이다.






중국 북경에 도착한 나는
대사관에 출근을 며칠 앞두고 미리 출국했으므로 중국 관광에 나섰다.







[오빠!]
어떻게 알았는지.
아침부터 다희가 호텔 문 앞에서 진을 치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 넌 어쩐 일이야?]
다희 보고 출근은 안하냐고 묻는 것이다.
[나도 오빠랑 같은 날 출근이 지롱. 메!]
다희는 혀를 쏘옥 내밀며 내 팔짱을 끼었다.
[어!]
나는 짐짓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피이...다 알아놓고는! 오빠랑 이제부터 중국 여행을 같이 가려고 왔지 롱.]
다희는 한쪽 눈을 살짝 감으며 날보고 윙크했다.








[그래! 5일 동안 신나게 놀자!]
난 다희를 데리고 비서가 몰고 온 승용차를 탔다.
아버지가 보내준 운전기사다.
[엉큼한 생각은 안하기?]
다희가 나에게 물었다.
[아니! 해도 괜찮기.]
내가 시치미를 떼며 말했다.

[치 이.]
다희는 내 팔뚝을 살짝 꼬집으며 눈을 치뜨고 노려봤다.









첫날은 그냥 베이징 시내를 돌아다니며 쇼핑만 하였다.
다희가 혼자 자취를 해야 하므로 필요한 것이 많았다.
과감하게도 그 모든 돈은 내가 다 지불했다.
어떻게 하든 중국에서 다희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는 속셈이 포함된 행동이었다.









저녁은 다희가 샀다.
내가 머무는 호텔 중국식 식당에서.
처음 보는 음식은 먹지를 못하고.
작은 통돼지 구이를 먹었다.








[오빠가 타주는 커피가 먹고 싶어!]
다희가 저녁을 먹고 난 후 나에게 매달리며 애교를 부렸다.
허.
요것이 첫날부터 내 호텔방에서 놀려고.
난 엉큼한 생각을 하며 다희를 데리고 내 호텔방으로 갔다.







간단하게 커피를 타서 먹을 수 있는 도구는 준비를 한 상태이기에.
난 커피 물을 올려놓고.
물이 끓기를 기다렸다.






쏴아.
욕실에서 샤워하는 소리가 들렸다.
다희다.
커피를 타지도 못하고 그녀가 샤워를 끝내기를 기다렸다.








[나 어때?]
다희가 하얀 긴 수건을 몸에 두르고 나와서 나에게 물었다.
[응? 아......! 예뻐.]
난 가슴이 콩콩 뛰는 바람에 말까지 더듬으며 겨우 대답했다.
오빠.
다희는 나를 그렇게 부르듯 처다 보더니.
두 팔로 내 목을 감싸며 키스를 퍼부었다.



살랑.
다희의 긴 수건을 벗기고.



황홀감에 취해 다희의 알몸을 바라보고 있는데.



[오빠!]
다희가 나를 불렀다.
[악!]
난 비명을 질렀다.
내 허벅지에 강한 충격을 느끼며 벌떡 일어섰다.
젠장.
꿈이었네.
무슨 꿈을 이렇게 지저분하게 꾸고 있었지.
어제 마신 술 때문인가.











다희가 내 옆에  서서 무섭게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뭐야! 벌건 대낮에 낮잠이나 자고? 게을러서.  쯧쯧.]
다희는 나를 보며 혀끝을 찼다.
[아버님께서 오신대. 얼른 세수하고 옷 갈아입어!]
다희는 마치 명령하는 투로 말했다.
으으.
난 지저분한 꿈을 털어버리듯 샤워를 했다.












30여분 지나서 집에 도착한 아버지 손에는 여권과 비행기 표가 들려 있었다.
[중국에 나가서 좀 있다가 와라!]
아버지는 나에게 명령하듯 말했지만.
난 다시 정신을 차렸다.
아직 중국에도 안 나간 상태란 말인데.
모든 것이 꿈이었단 말이다.
너무도 지저분한 꿈을 꾼 것이다.




그것은 아버지의 간곡한 부탁이란 것을 난 안다.
오래전부터 중국에 아버지께서 벌려놓은 사업이 요즘 많은 타격을 받고 있었다.
신흥 중국 사채업자들이 견제를 심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름 전엔 아버지 부하직원이 폭행까지 당한 일이 있었다.








[알겠어요! 다녀올게요.]
난 이미 집작하고 있었기에 이유도 묻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
난 1-2년 걸리는 일이 아니란 것도 잘 안다.
중국에 나가면 몇 년이 걸 릴 지 모르는 일이다.
난 대답을 하면서 다희를 바라보았다.
말괄량이지만 그래도 앞에 안보이면 섭섭한 다희.

그녀의 표정이 어떤지 보고 싶었던 것이다








[히힛.]
다희는 나를 보며 재미있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설마.
꿈속에서처럼.
중국까지 따라오는 건 아니겠지.
나의 그런 생각은 바로 깨져버렸다.







[다희도 같이 갈 거다!]
아버지의 그 한마디가 내 귓가에 천둥소리처럼 들렸다.
그렇게 싫지는 않지만.
같이 간다는 것은 왠지 내 앞날이 어두운 먹구름으로 가득 찬 느낌이다.




그러나
꿈은 그냥 꿈이다.









[전.  부모님께서 반대를 하셔서.]
다희가 아쉬운 표정으로 거절 의사를 밝혔다.








그렇게.
다희와 나의 사랑은 끝났다.
그 후 다희는 아무런 연락도 없이 결혼을 하고 만다.
난 그날 저녁 급하게 중국으로 떠났다.









세월은 빠르게 흘러.
2년이 지났다.
몇 달 만에 한 번씩 서울로 돌아오는데.
그렇게 서울도 돌아와서 볼일을 보고 다시 중국으로 가고.
그런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 무렵이었을 것이다.
내게 전화가 한통 날아 온 것은.
[여보세요?]
난 발신자표시가 없는 전화라서 누가 장난을 하겠지 하는 생각에 별로 반갑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으앙!]
수화기에선 어린아이 울음소리가 먼저 들렸다.
[누구니?]
난 갑자기 생각이 나는 것이 있어서 혹시나 하고 물었다.



[아.   아빠!]
미정이었다.
내 생각이 맞았다.
난 무척 반가웠다.






[미정아! 잘 있었니?]
난 아직도 울음 섞인 목소리의 미정이에게 다정하게 물었다.

[아빠! 보고 싶어! 왜 전화가 안 돼? 계속 했는데?]
미정이가 아마도 내가 외국에 나간 사이 공중전화로 계속 전화를 한 모양이다.
[미   미안! 아빠가 외국에 나가있어서 전화가 안 된 거야. 미안해!]
난 미정이가 전화를 할 줄 몰랐기 때문에 정말 미안했다.
[아빠!]
미정이가  내 말뜻을 알아들은 것일까.
밝은 목소리로 날 불렀다.






[왜?]
내가 다정하게 물었다.
[아빠 나. 유치원 다녀!]
미정이가 유치원에 다니는 모양이다.
[응 그래? 지금 유치원이니?]
내가 물었다.
[아니! 유치원 끝나고 집에 가려고.]
미정이가 유치원이 끝나고 근처 공중전화로 내게 전화를 건 모양이다.




[이런! 동전이 많이 들겠다.]
내가 염려하는 것은 그것이었다.
어린 미정이가 동전이 많이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유치원 같으면 그 전화로 내가 다시 걸려는 것인데.


[선생님이 아빠한테 전화 하라고 동전 넣어 주시는걸.]
미정이가 말했다.
아마도 옆에서 유치원 선생이 동전을 넣어주는 모양이다.
미정이가 아마도 지금 6살일 것이다.
[그래! 선생님한테 아빠가 고맙다고 말했다고 전해줘.]
내가 말했다.
미정이가 바로 그 말을 전하고 있었다.






[아빠 또 외국에 가시면 어떻게?]
미정이는 다시 나와 연락이 안 될까봐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그럼 이렇게 하자! 아빠가 서울 집 전화를 가르쳐 줄 테니. 내 핸드폰으로 전화가 안 되면 미정이가 받을 수 있는 전화번호를 아빠 집에 전화를 해서 받는
사람한테 알려줘. 그럼 바로 아빠가 전화할게.]
난 그렇게 말했고.
미정이가 이해를 잘 못하겠는지 옆 유치원 선생을 바꿔줬다.
난 유치원 선생님이라는 아가씨한테 자세히 알려줬다.





[미정이 아직도 아빠랑 찍은 사진 갖고 있지?]
내가 미정이한테 물었다.
[응!]
미정이는 아마도 지금 그 사진을 보며 전화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 사진 뒤에 전화번호가 있으니 말이다.
[그 사진에다 꼭 아빠 집 전화번호를 적어놔! 알았지?]
내가 말했다.
[응 아빠!]
미정이의 밝은 목소리가 들렸다.






다시 2년 정도가 흐른 어느 날.




[아빠!]
미정이 전화가 왔다.
[왜 그래? 미정아!]
내가 물었다.
[아빠 오늘 울 학교에 못 오겠지?]
미정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모양이다.
[오늘?]
내가 물었다.
[응! 오늘 선생님이 아빠를 모셔 오라고 했는데.......아빠는 외국에 나가셔서 못 오신다고 했어!]
미정이가 말했다.
왼지 슬픈 목소리였다.




[미정이가 친구랑 싸웠니?]
내가 물었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부모님을 부를 땐 무슨 사고를 냈기 때문일 경우가 많았다.
[응! 동규 녀석 까불어서 때려줬는데.......으앙.......이빨이 부러졌대. 엄마가 알면 혼나.]
미정이가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삐삐삐.
동전이 다된 모양이다.
[아빠가 갈게!]
난 다급하게 말했다.
[아빠!]
미정이의 밝음 음성을 끝으로 전화는 끊어졌다.








왜 그랬는지 모른다.
정말 언제부터인가.
미정이를 딸처럼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바로 공항으로 달려가서 항공기를 타고 제주도로 향했다.
오후에 중국에 가야하기 때문에 시간도 없었다.
제주도에서 머무를 시간은 겨우 2시간 정도.
공항에서 미정이가 다니는 신엄초등학교까지 가는 시간과 공항으로 되돌아오는 시간을 빼면 겨우 30여분 정도 여유가 있었다.





공항에서 시간에 맞춰 왕복표를 구입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난 정말 미정이 아빠처럼 동규라는 아이 부모님한테 용서를 빌며 치료비를 듬뿍 줬다.
치료비가 많아서인지 입이 벌어진 동규 부모는 더 이상 문제를 삼지 않았다.



[우리 아빠다!]
미정이는 나를 데리고 다니며 자기 친구들한테 자랑을 했다.



불과 30여분 .
나는 그렇게 미정이 아빠 노릇을 했다.
[아빠는 다시 외국에 가야 하는데 미정이 보고 싶어 어떻게 하지?]
내가 미정이에게 다정하게 물었다.
[아빠!]
미정이는 내 볼에다가 뽀뽀를 했다.
그리고 자기 친구들 틈으로 뛰어가며 손을 흔들었다.
녀석 무척 기특하구나.
헤어짐에 눈물도 안 흘리고.
난 미정이를 바라보며 손을 힘껏 흔들고 학교 선생님들에게 인사를 하고 급히 공항으로 떠났다.











한 번 더 미정이와 만남이 이루어졌다.
미정이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 봄이다.
역시 또 싸움이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또다시 피해 학생 부모를 만나 치료비를 지불해줬고.
미정이에게 당분간 외국에서 돌아오지 못한다고 말해줬다.




그 후 미정이는 친구 집이라며. 학원 이라며.나의 서울 집으로 전화를 해서 나에게 전화를 하라고
전화번호를 가르쳐주고.
난 바로 전화를 해서 통화를 했다.
미정이의 전화 통화는 처음엔 한 달에 한번 정도였던 것이
나중엔 2.3일이 멀다하고 통화를 요구했다.

내 전화번호는 어린 나이에도 누구한테도 안 가르쳐주고 혼자만 간직했던 미정이.
그 어린 미정이에게도 언제나 난 아빠였다.





미정이와 만나지 못한지 언 5년이 흘렀다.








30대 중반의 나이.
내 모습은 제법 어른스러워졌다.
아무도 마중 나오지 않은 김포공항.
아직은 차디찬 바람이 불고 있는 이른 봄.
나는 중국에서 돌아왔다.








택시를 타고 도착한 방배동 집.
역시 나를 반겨주는 것은 워리 뿐이다.
누런 진돗개 한 마리.
그 개 이름이 워리 다.
촌스럽게 아버지께서 지은 이름이다.







10년의 세월.
아버지는 몸이 쇠약해졌다.
중국에서 돌아온 것도 그 때문이다.
아버지는 현제 병원에 입원중이다.
나는 방배동 집에 짐을 풀고.
냉장고에서 시원한 물 한잔을 마신 후 곧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s병원.
강남에선 제법 큰 병원이다.
1127호실.
특실이다.
난 노크도 없이 벌컥 문을 열고 병실로 들어갔다.








[아버지 이.]
난 침대에 누워있는 아버지 모습을 보고 울컥 눈물이 흘렀다.
너무도 쇠약해진 모습.
[녀석....... 왔구나! 고생 많았다!]
아버지는 내 두 손을 앙상한 두 손으로 꼭 쥐며 말했다.
평소 눈물과는 거리가 먼 아버지.
그렇게 강인하시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애비가 널 10년씩이나 중국에 보내놨으니 탓할 수도 없고.  언제 손자 녀석 안겨 줄 거냐?]
아버지께서 늘 입버릇처럼 전화로 하시던 말씀이다.
잊지 않고 침대에 누워서도 그 말씀을 했다.









그래요.
아직 연애한번 해보지 못한 자식이 언제 마누라 얻어서 자식을 낳겠어요.
그때 그 말괄량이 다희와 확 결혼이라도 하고 중국에 갈걸 그랬죠?
36살 먹도록 여자란 다희 밖에!





아니지.




단 한 번의 섹스라 해도.
내가 처음 관계를 갖은 여인이 있긴 있었지요.
모든 게 거짓말 같아서 잊으려고 했는데.










미정이가  6살이 되던 해
아빠.
유치원에 다니는 미정이에겐 2장의 사진 속 남자가 아빠였다.






친구들이 물으면 아빠라고 자랑하며 들고 다녔다.
언제나 2장의 사진중 하나는 가방 속에 넣고 다녔다.
한 장은 방에 잘 보이는 곳에 붙여놓고.
[저게 자기 아빠로 착각하나.]
민박집 주인아주머니도 미경이도 미정이 행동에 그렇게 생각을 했다.









다시 몇 년이 흘러.
미정이가 12살이 되던 해.
너의 아빠는 언제오니?
친구들이 물었다.
사진만 들고 다니지 아빠란 남자는 전혀 보이질 않았기 때문인데.
미정이 눈엔 눈물이 고였다.





아빠!
왜 안 오는 거야.





그리고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들어가면서.
미정이는 추억속의 남자가 아빠가 아니라 언니의 남편이 될 형부란 것을 처음 알았다.






아빠로 알고.
오지 않는 아빠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다 못한 미경이가 말해줬기 때문이다.





형부라고.
내 꿈속의 아빠가.
아빠가 아니라 형부라고?
아빠라도 좋고 형부라도 좋아.
오기만 하면 좋겠다.
왜 안 올까.






미경이 어머님 보다.
미경이보다.
나를 더 기다린 것은 바로 귀여운 처제 미정이었다








아버지를 보살펴주는 아주머니에게 슬쩍 어디 좀 다녀온다고 말을 하고.

난 김포 공항에서 비행기를 탔다.
마음속 한 편에 병상에 게신 아버지께 얼른 며느리라도 데려다 보여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제주도를 향해서.
그 첫 경험 그녀를 못 잊어서.
그렇게 난 10년 만에 제주도로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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