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오후.
퇴근 시간 후에 남아 일을 하는 직원들 커피를 배달해주고 가계로 돌아온 진진을 이철이 청소를 다 해놓고 같이 퇴근 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왜? 먼저 가지 그랬어?”
기다려준 이철이 고맙기도 하지만 진진은 이철 걱정을 먼저 했다.
기다리지 않고 먼저 갔으면 이철이 아버지와 같이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야! 너 내려주고 가야지.......! 내가 혼자가면? 누구 좋으라고? 너 또 지난번처럼 상품 기획실 오 대리 차를 타고 가려고? 안되지 절대. 앞으로 내가 꼭 널 집까지 데려다주고 간다.”
이철이 진진이 어깨를 왼손으로 툭툭 치면서 말했다.
“어 어! 너! 은근 슬쩍 스킨십이냐?”
진진이 마치 몸에 벌레라도 붙은 듯 이철의 손을 피하며 자신의 손으로 툭툭 털었다.
“야! 난 뭐 남자도 아니냐? 내가 손만 대면 난리야.”
이철이 투덜거렸다.
큰 야자대추 나무 사이로 간혹 한그루씩 있는 소철에도 오렌지색깔의 밤 같은 예뿐 열매가 소복이 잔털 속에 담겨 있었다.
이철의 차는 소철나무 옆에 길가 주차장에 세워져 있었다.
이철의 차는 청색 소형 승용차다.
자석을 이용한 차량이라 시동을 거는 방식이 특이하다.
서로 밀고 당기는 자력을 이용해 움직이는데. 당겼다가 멈추게 하는 장치가 바로 자력을 차단하는 금속이다. 바로 그 금속 하나를 발명해서 지금의 무향도가 생긴 것이다. 그 장치를 밀어 넣어주면 엔진이 움직인다.
“사람들은 왜? 소철 열매를 안 먹을까?”
진진이 큰 밤알 정도 되는 오렌지색 소철 열매를 이빨로 껍질을 벗기고 아삭아삭 깨물어 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맛없는 열매를 누가 먹어? 진진이 너나 별종이니까 먹지. 비릿하고 생콩 같은 그런 게 뭐가 좋다고....... 아! 또! 여자한테 좋은 거라고? 알았어! 얼른 타기나 해.”
이철이 승용차에 먼저 타서 차창 유리를 내리며 소리쳤다.
“진진!”
저 만치 남자 하나가 달려오며 진진을 불렀다.
“저건 왜 아직 안 갔지!”
이철이 달려오는 남자를 발견하고 투덜거렸다.
바로 조금 전 자신이 말했던 바로 그 월드보험의 상품 기획실 오 진명 대리였다.
“진명이 너? 아직 안 갔니?”
진진이 의외라는 표정으로 물었다.
“진명이 뭐야? 오빠라니까.”
진진과 비슷한 체구의 잘생긴 남자 오 진명 그는 진진보다 1살 많다고 알려졌다.
겨우 19살 그 나이에 대리로 승진을 했다.
상고를 나와 월드보험에 입사한지 5개월 만에 초고속 승진을 한 것이다.
모두가 인정하는 실력으로.......
무향도 젊은이 대부분은 대학교를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하며 틈틈이 공부를 하는 방식으로 택한다.
무엇보다 5년에 한 번씩 열리는 고시를 통해 황궁에 들어가야 젊은이들 대부분이 원하는 가장 좋은 대학교에 자동 입학을 하며 무료로 대학 과정을 배울 수 있기 때문에 오로지 5년을 고시 공부만 하며 기다리는 것이다.
황궁 뒤에 100만평 부지에 세워진 무향도 최고의 대학교.
무향대학교.
무향도 인구가 겨우 200만 정도인데....... 무향대학교 학생 수가 4만 명 정도 된다.
물론 외국에서 유학을 온 학생들도 많다.
“얼른 안타고 뭐해?”
이철이 질투를 느낀 모양이다.
꽥 하고 소리를 지른다.
“응! 그래! 진명이 너도 타라! 너 오늘 차 없잖아?”
진진이 이철이 보고 대답을 하고 다시 진명이 보며 물었다.
“헤....... 역시 진진이만 날 알아준다니까!”
진명이 너스레를 떨며 진진이 보다 먼저 이철이 차에 올라탔다.
“이......!”
이철이 뭐라 말을 하려다가 참는다.
야자대추 큰 나무들 숲을 모조리 벗어나 하얀 백사장이 마치 백설기를 칼로 썰어 놓은 듯 반듯하게 다듬어진 해수욕장에 이철이 차가 도착을 했다.
“고마워! 내일보자!”
이철이 차에서 진진이 내리며 손을 흔들었다.
“잘 가! 오빠 꿈꾸고.......”
진명이 차창 유리문 밖으로 머리를 내놓고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어 어! 조심.......”
진진이 놀라 소리쳤다.
화가 났는지. 이철이 차를 급하게 몰고 떠났기 때문이다.
하마터면 진명이 머리가 소철나무 억센 잎사귀에 부딪칠 뻔 했던 것이다.
“저 녀석 성질머리 하곤........”
진진이 빙긋 미소를 지으며 혼자 중얼거렸다.
“아차! 배 떠날 시간이다!”
진진이 오던 길을 되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젠장! 언제까지 이렇게 숨기며 살아야 할까.”
진진이 투덜거리며 달려간 곳은 해수욕장 옆 조그만 부둣가였다.
10여 명 정도 탈 수 있는 작은 배가 사람들을 태우고 떠나려고 막 움직이고 있었다.
“할아버지! 기다려요!”
진진이 달려가며 소리를 질렀다.
“오늘은 왜 늦었느냐?”
배에 시동을 걸고 움직이던 배가 멈추고 얼굴에 검버섯이 많이 있는 노인이 카랑카랑한 소리로 말했다.
이배 주인 선장 할아버지다.
사공이니 선주니 그런 말 보다 선장 할아버지라 부르면 아주 좋아한다.
“히히.......! 겨우 1분 늦을 걸 가지고 그러세요?”
진진이 숨을 헐떡이며 배에 올라타서 사람들 틈에 앉으며 노인에게 말했다.
“전자시계가 늦으니 걱정했지.”
콧수염이 한문 팔자로 길게 난 중년인이 진진이 옆에 앉아서 말했다.
“암! 진진인 누가 뭐래도 전자시계지.”
노란 개나리꽃 같은 예뿐 옷을 입은 중년 부인이 옆에서 맞장구를 쳤다.
“예쁘고 귀엽고 착하고 누구한테 시집을 가려나. 그놈 복 터진 놈이지”
선장 할아버지가 같이 맞장구를 쳤다.
“에구 주머니에 돈도 없는데 비행기를 자꾸 태우시면 삯은 뭐로 드릴까요? 뽀뽀나 해드려야지”
진진이 장난스럽게 미소를 지으며 일어서서 선장 할아버지 볼에다 뽀뽀를 했다.
“이야! 할아버지 오늘밤에 잠 못 주무시겠네.”
진진이 나이 또래의 청년이 너스레를 떨었다.
장 병우.
진진이 보다 한 살 아래다.
이제 고등학교 졸업반이다.
초기 교육 열풍을 타고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나이가 겨우 5살이다 보니 18살이면 고등학교를 졸업한다.
“누나!”
병우가 진진을 부른다.
“.........!?”
진진이 병우를 바라보았다.
“아까 낮에 엄마 병원에 다녀오시던데. 많이 아프신 거야?”
병우의 물음에 금방 진진이 눈가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넌 공부는 안하고 또 땡땡이 쳤지? 그러니까 진진이 엄마 병원에 가신 것도 알고?”
노란 옷을 입은 중년 부인이 야단치듯 말했다.
병우 엄마다.
“누나! 미안해!”
병우가 진진이 눈가에 가득한 눈물을 보고 미안해했다.
“우리 진진이가 착하고 예뻐서 반드시 네 엄마는 살아날 게다. 그러니 너무 슬퍼 말거라! 때로는 의학보다 사람의 의지로 병을 치료하는 경우가 많단다. 네 엄마가 널 놔두고 이대로 눈을 감지는 않을 것이니 용기를 내거라!”
팔자로 수염이 길게 난 중년 남자가 진진이 어깨를 손바닥으로 토닥거리며 말했다.
“암! 암! 그렇고말고.”
병우 엄마도 같이 거들었다.
“에고! 어쩔까.......”
선장 할아버지가 안타깝다는 투로 하늘을 처다 보며 중얼거렸다.
배는 바다 가운데 보이는 작은 섬을 향해 천천히 미끄러지고 있었다.
음도.
생긴 모양이 콩나물 머리. 음표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섬.
s국 나라에 속한 땅이지만 무향도와 가까운 관계로 s국에서 관심을 두지 않는 섬으로 버려진 섬이라 칭한다.
버려진 섬 음도.
그 작은 섬에 총 4가구가 살고 있다.
선장 할아버지와 할머니 두 분이 사는 집.
병우와 여동생 진희 그리고 병우 부모님 이렇게 4식구가 사는 집 그리고 수염이 여덟팔자로 길게 난 중년 남자 혼자 사는 집과 진진이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집 이렇게 4가구였다.
묘하게도 무향도 주인이 s국과 자석을 이용한 동력장치 특허권을 매매하는 계약서에서 상속문제를 잘못 읽은 실수를 했다면. s국은 무향도 바다를 섬에서 사방 100km로 선심 쓰듯 주면서 이 작은 섬을 깜빡했다는 후문이다.
해서 바다는 무향도 바다요. 땅은 s국 땅이 되는 섬이 음도였다.
섬의 크기는 겨우 1만여 평.
바위산을 빼면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밭은 겨우 2000여 평 정도.
큰 파도 하나면 집어 삼킬 것 같은 작은 섬이다.
소철도.
음도의 또 다른 이름이다.
바위틈새에 가득 소철 나무가 자란다.
섬 전체에 소철 나무뿐이다.
마치 울타리처럼 소철 나무가 가득한 틈으로 겨우 손수레 하나 지나갈 정도 되는 좁은 길을 따라 50m 약간 오르막에 20여 평 정도 돌로 벽을 만들고 나무껍질로 지붕을 덮은 집이 바로 진진이 어머니와 함께 사는 집이다.
“엄마!”
진진이 집으로 들어서며 소리쳐 불렀다.
어머니가 어디 있는지 먼저 알고 싶어서였다.
“나 여기 있다”
힘없는 목소리가 건물 뒤쪽에서 들렸다.
진진이 얼른 건물 뒤로 달려갔다.
우물.
돌로 둥글게 쌓아 놓은 우물이 보이고 그 앞에 회색 상의에 검은 치마를 입은 여인이 앉아서 빨래를 하는 모양이다.
“엄마! 또 빨래를 하고 있었어?”
진진이 화난 표정으로 달려가던 걸음을 우뚝 멈추며 말했다.
“사람은 움직여야지. 움직이지 않으면 없던 병도 생겨.”
여인이 힘겨운 소리로 말을 하며 일어서서 돌아섰다.
오........
이게 어찌 사람 얼굴일까.
얼굴이 온통 상처투성이다.
마치 거미줄 같이 상처로 가득한 얼굴.
코도 뭉텅 떨어져 나가고. 입술도 치아가 드러날 정도로 잘라져 나갔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토할 것 같은 얼굴이다.
다행히 두 눈은 검고 커서 무척 예뻤다.
얼굴은 상처로 인해 알아보기 힘들지만 두 눈은 진진과 너무도 닮았다.
“병원에서 뭐래? 많이 좋아 졌다고 하지?”
진진이 얼른 달려가서 어머니를 두 팔로 힘껏 앉고 말했다.
“그럼! 엄마 오래 산다고 의사 선생님이 말씀 하셨다.”
진진 어머니가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했지만 진진은 그 말이 거짓이란 걸 안다.
벌써 4개월 전.
오랜 시간을 진진을 위해 몸이 아파도 참고 일했던 어머니는 결국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급히 병원으로 가서 진찰을 받았는데.
술도 드시지 않고 담배도 피우지 않는 어머니가 간암 말기란다.
의사 말로는 누적된 피로와 스트레스 때문이라는데. 그 모든 것이 바로 심한 상처로 망가진 얼굴을 가지고 홀로 진진이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을 많이 해야만 했고. 얼굴에 상처 때문에 일터에서 주변에서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한 진진은 자기 때문에 생긴 병이라는 것을 알고 대학을 포기하고 돈을 벌려고 커피 장사를 시작했다.
시한부 인생 6개월.
이미 4개월이 지나간 지금. 남은 기간은 겨우 2개월이다.
주위에서 좋다는 음식도 약초도 서로 가르쳐주는데. 사공 할아버지가 소철 열매가 좋다고 해서 결국 이 섬 음도로 이사를 했다.
간을 이식해야만 삶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진진은 알고 있다.
진진이 자신의 간을 이식해드리려고 병원을 찾았지만
진진과 어머니는 혈액형이 달랐다.
물론 돈도 없었다.
“들어가자! 오늘은 내가 저녁 준비를 할게. 엄마는 쉬어.”
진진이 어머니를 부축해서 방으로 들어갔다.
“괜찮다고 해도 그러는 구나!”
어머니는 그런 진진이 마냥 사랑스러웠다.
이젠 다 컸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어머니는 아직 할 일이 남아있다.
그 일을 위해 진진이 깔아주는 요위에 베개를 베고 누웠다.
잠시라도 잠을 청하려는 것이다.
오늘은 밤샘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