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야자대추가 거대한 수수이삭처럼 매달려 있는 키가 큰 야자나무들이 4차선 도로 양쪽으로 끝없이 늘어서 있는 무향도 중심가.
높은 빌딩들이 숲을 이루고 야자나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월드빌딩.
무향도 중심가 향동에서 가장 높고 거대한 빌딩이다.
건평 3000평에 87층.
80층부터는 호텔이다.
1층부터 80층까지는 은행. 보험 등 금융기관이 모조리 차지하고 있었다.
월드금융.
바로 무향도 재산을 관리하는 곳이다.
세계 각국에 투자를 관리하는 곳이기도 했다.
“굿모닝! 여러분! 굿모닝이에요!”
월드빌딩 3층 장수보험회사
건강보험을 주 상품으로 판매하는 회사다.
아직 20세가 안된 예뿐 소녀가 직원들 책상에 커피를 하나씩 나눠주며 상냥하게 인사를 하고 다녔다.
성 진진.
검고 큰 두 눈이 무척 귀여운 아가씨다.
방년 만 18세.
180cm의 큰 키에 늘씬한 몸매지만 한 가지 흠이 있었다.
절벽.
가슴이 그냥 브래지어 하나만 걸친 듯 너무도 밋밋했다.
“예쁘고 섹시하고 귀엽기까지 하지만 아쉽다. 너무 절벽이야!”
장수보험 남자 직원들은 진진을 보며 슬쩍 한마디씩 하는 걸 잊지 않았다.
그렇다 하여 진진을 싫어하는 직원들은 아무도 없었다.
항상 긍정적이고 밝고 명랑해서 모든 직원들이 진진을 좋아했다.
“진진 오늘도 늦지 않았구나!”
돼지처럼 살이 뒤룩뒤룩 찐 황과장이 제일 반가워했다.
“커피가 없으면 난 사는 재미를 몰라!”
황 과장만의 철학이다.
“굿모닝! 안녕하세요? 아저씨!”
진진은 황 과장을 아저씨라 부른다.
장수보험 영업부 황 과장.
영업부 127명 직원들 중 유일하게 진진이 아저씨라 부르는 사람이다.
황 과장은 늘 그것이 불만이다.
“왜? 나만 아저씨냐?”
황 과장은 가끔 진진에게 투덜거리지만 그래도 좋았다.
자신의 아들과 친하게 지내는 진진이기에 친구 아버지를 아저씨라 부르는 진진에게 진심으로 불만이 있어서 묻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황 과장이 농담으로 그렇게 물으면.
“아저씨 덩치가 제일 크거든요. 히히.......”
진진의 대답은 늘 같았다.
역시 장난을 치는 말인데.
그 농담 속에 칼날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황 과장은 잘 안다.
틀림없이 아들 녀석이 그 칼날을 진진에게 부탁했을 것이다.
“아빠! 제발 살 좀 빼!”
이 것이 아들 녀석의 칼날이다.
127명 장수보험 영업부 직원들에게 매일 아침 커피 배달을 하는 진진.
그녀는 장수보험 직원이 아니었다.
커피장수였다.
월드금융 1층 진 커피숍을 운영하며 매일 아침 월드금융 일부 회사에 커피를 직접 배달하는 진진.
바로 황 과장의 아들 황 이철과 같이 동업을 시작한지 벌써 3개월째.
둘이 아침에 배달하는 커피가 무려 4000여 컵에 이른다.
저녁에 다시 한 번 배달을 하는데. 저녁엔 아침에 절반도 안 된다.
3개월 만에 하루 커피 판매량이 무려 6000여 컵.
그 것이 모두 진진 때문이다
누구나 귀여워하는 진진 때문에 커피 판매 그래프는 급경사를 이루며 높이 오르고 있었다.
여행용 가방처럼 만든 보온가방에 커피를 담아 끌고 다니며 2000여 컵을 배달하고 나면 온 몸에 땀이 흐른다.
새벽부터 컵에 커피를 담아 포장을 하고 보온가방에 담아 준비를 하는데 무려 3시간.
배달은 신속하게 1시간 내에 끝내야한다
직원들 아침에 출근하면 바로 마시게 배달을 해줘야 하기 때문인데.
둘이 4000여개를 배달하다보니 땀이 나도록 뛰어 다녀도 2시간은 족히 걸린다.
“난 진진이 배달해주는 커피가 좋아!”
짓궂은 남자 직원들 때문에 이틀에 한 번씩 직원들을 바꿔가며 이철과 진진이 커피를 배달해도 진진이 배달하는 것이 항상 더 많다.
“사내 녀석이 허약하긴.......!”
진진이 늘 이철을 보며 놀리는 말이다.
모든 면에서 이철은 진진을 따라가지 못한다.
달리기도 진진이 빠르고.
주문을 받아 오는 것도 거의 진진이하고.
머리도 진진이 더 좋아서 계산도 모두 진진이 한다.
커피도 진진이 만들어야 맛있지만 단 하나 그래도 남자라고 힘은 이철이 세다.
쌩.......
진진이 아침 인사를 하며 커피를 책상에 올려놓고 사라지는 속도는 그야말로 빛의 속도다.
“두 시간 만에 이천 개를 배달하려면 1분에 거의 20개는 배달을 해야 하니 1개를 배달하는데 걸리는 속도는 3초를 넘기지 않는다.
“오빠는 블랙이고. 언니는 원두고. 오빤 설탕1에.......”
진진은 그 많은 직원들 입맛까지 줄줄 외우고 다닌다.
“진진! 굿모닝!”
누구나 그냥 커피만 받지 않는다. 반드시 아침 인사를 하는 걸 빠트리지 않는다.
간혹 사탕이나 먹을 것 또는 꽃이나 선물 같을 걸 줄때도 있다.
“진진! 선물이야!”
누군가 선물을 주면 진진은 절대 사양하지 않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빛의 속도로 받아 가지고 간다.
“성의를 무시하면 기분 나쁘잖아!”
이철이 준다고 다 받느냐며 투덜거리면 진진은 항상 그렇게 대답한다.
“오 나의 사랑 진진!”
은근히 진진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짓궂은 남자들이 있지만........
항상 미소로 답하는 진진.
질투심 때문인가.
이철은 그런 남자 직원들을 경계한다.
그 남자들은 자신이 직접 배달하겠다고 우긴다.
“진진! 어머니는 어때?”
장수보험 상품 기획실 대리 윤지가 진진이 배달해준 커피를 받아 들고 물었다.
“항상 그렇지 뭐”
진진이 윤지 앞 의자에 털썩 앉으며 손으로 이마의 땀을 대충 닦아내며 말했다.
벌써 2000여개 배달의 종착지다.
윤지하고 수다를 떨기위해 마지막 배달을 항상 윤지로 정해놓았다.
“오늘 공지 봤니?”
윤지가 자신의 책상 서랍에서 하얀 수건을 하나 꺼내 진진의 얼굴에 땀을 닦아주며 물었다.
“공지라니? 무슨 공지?”
진진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황궁 비서실에서 공지를 발표했는데....... 오는 5월 8일 고시를 실시한다고 했어. 너도 참가 할 거지?”
윤지가 말했다.
“참가 신청은 언제까지래?”
진진이 반색을 하며 물었다.
“다음달 15일까지”
윤지가 얼른 대답했다.
“윤지 너는 무슨 고시를 볼 건데? 역시 행정이지?”
진진이 물었다.
“아니.......! 난 요리 쪽으로 가려고.”
윤지가 말했다.
“뭐? 요리? 넌 행정고시를 보려고 공부 많이 했잖아? 그런데 요리라니?”
진진이 이해할 수 없다는 투다
무향도 황궁에 근무할 직원을 뽑는 고시를 5년에 한 번씩 실시하는데.
올해가 고시가 있는 해다.
고시란 법. 행정. 군. 경. 요리. 특별. 등 모두 6개 분야로 본다.
특별이란 황궁 내에서도 가장 고위직으로 황을 측근에서 보필하는 비서. 경호. 사무. 등에 속한다.
“진진 너도 요리 쪽으로 갈래?”
윤지가 같이 가자는 이야기다.
“뭐야? 또 커피나 만들라고? 싫다! 난 특별에 비서직으로 갈 거야”
진진은 항상 황궁 비서직을 원했다.
“비서로 가서 커피나 만들려고?”
윤지가 그게 그거 아니냐는 듯 미소를 띠며 물었다.
“응! 그래도 내 커피를 황께 드릴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
진진이 배시시 웃었다.
“넌 왜? 황께 가까이 가려는 것인데?”
윤지가 알 수 없다는 투로 물었다.
“보고 싶어서.......”
진진이 말끝을 흐렸다
착각일까.
진진의 눈가에 반짝 이슬이 맺히는 것은.......
“너! 그거 아니? 황궁 비서실엔 밥맛이 둘이나 있다는 것을?”
윤지가 말했다.
“알아! 첫째와 둘째 쌍둥이 왕자님들 말이지?”
진진이 말했다.
“그래! 우리와 나이도 같다던데....... 누군 태어나면서 왕자고. 그 많은 재산을 상속받을 축복받은 씨고. 우린 뭐냐! 겨우 황궁에 일자리 얻으려고 고시나 보려고 발버둥치고.......!”
윤지가 억울하다는 표정이다.
“그러게....... 첫째 셋째 황비께선 자손도 없이 돌아가시고....... 넷째 황비께선 임신을 못하시고. 오로지 행방불명된 둘째 황비께서 낳으셨다는 그 두 쌍둥이 왕자들뿐이니 당연히 그 중 한 분이 상속자로 정해지겠지만. 아직은 정해진 것도 아니니깐.”
진진이 말했다.
“너.......! 혹시?”
윤지가 뭔가 눈치를 챈 듯 진진을 묘한 눈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뭐가?”
진진이 윤지의 묘한 눈을 슬쩍 피하며 되물었다.
“맞네! 너 왕자님들한테 관심이 있구나?”
윤지가 손뼉까지 치며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히히....... 관심? 그래! 관심이야 많지!”
진진이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아! 나도 너 따라 간다. 특별 분야 비서직 요리 쪽으로.......!”
윤지가 결정을 내렸다.
“뭐? 에고.......! 경쟁자가 하나 더 생겼네.”
진진이 호들갑을 떨었다.
“아마 500대1은 될 걸.......!”
윤지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히히.......! 더 될 거야. 이철이 녀석도 같이 갈.......”
진진이 여기까지 말을 할 때였다.
“녀석이라니? 나 없다고 몰래 욕이나 하고.......!”
땀으로 목욕을 한 듯 옷이 흠뻑 젖어 회색 옷인지 검은 옷인지 구별이 안 되는 이철이 진진이 뒤에 나타나 투덜거렸다.
키는 진진보다 조금 작지만 몸집은 더 컸다.
“아빠를 닮아가니?”
진진이 늘 그렇게 놀렸다.
살을 빼라는 충고였다.
다행인지. 커피배달이 많아 매일 땀을 흘린 보람으로 이철은 살이 많이 빠져 건강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