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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영 애정소설 [엄마는 사채업자 제1편]
유리넷  2013-10-17 21:23:35, 조회 : 208, 추천 : 13

   김 범 영 애정소설

                        엄마는 사채업자                        

                         아픈 추억

휘잉.
차디찬 눈보라만큼 가슴시린 추억이 있었다.
달콤한 환상과 함께 시작한 사랑이기에 더욱 그 이별은 큰 상처와 아픔을 내게 남겼다.

1993년 10월
가로수 은행나무들이 그 아름답던 잎을 하나 둘만 남기고 모두 낙엽으로 벗어버리고 앙상한 가지만 남긴 체 그 마지막 남은 잎을 위안삼아 찬바람에 견디고 있던 서울. 답십리.

동인 만화방.
나이 30이 갓 넘은 노총각이 운영하는 조그만 만화방답게 늘 손님은 여자들로 가득했다.
허 동인. 31세.
만화방 주인이다.
키도 크고 코도 오뚝한 크고 검은 눈을 갖은 미남청년이다.
평소엔 말도 없고 수줍음이 많다가도. 술이라도 한 잔 하면 여자 손님들 물음에 곧잘 대답하는 허 동인. 그런 그의 만화방엔 여고생들부터 근처 공장에 다니는 아가씨들은 물론. 소문을 듣고 찾아 온 다른 동네 아가씨들까지 항상 의자가 모자랄 정도로 가계는 북적댄다.
고향이 어딘지. 부모님과 친척은 물론 그의 과거까지도 아는 사람은 없었다. 밝혀진 것은 단 하나. 그의 이름과 나이 정도였다.
“동인씨! 안녕하세요?”
찬바람을 몰고 문을 열고 들어온 오늘 첫 손님은 근처 공장에 다니는 김 하나였다. 올해 27살. 노처녀라면 노처녀고. 적령기라면 그 또한 맞는. 살이 통통한 아가씨다.
“어서 오세요.”
동인이 의례적인 인사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춥네요. 아침은 먹었어요?”
하나가 찬바람이 들어오는 가계 문을 닫으며. 동인에게 말을 걸지만 동인은 고개만 끄덕인다. 늘 있는 일이다.
“정은이 왔었나요?”
하나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동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뇨.”
동인이 짧게 대답했다.
이 정은. 26세 만화가계 길 건너편 정육점집 딸이다. 유일하게 동인이 관심을 보이는 아가씨다. 다른 사람들에겐 대답도 잘 안하지만. 정은이 물음엔 꼬박꼬박 대답을 한다. 먼저 말을 걸기도 한다. 아침 일찍 정은이가 와서 같이 밥도 해먹고 장난도 치며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을 하나는 여러 번 보았다. 동인이 대답을 듣고 하나는 안심을 했다. 오늘은 정은이가 훼방을 놓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며 동인이 옆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오늘 아침은 뭘 드실래요? 제가 해드릴게요.”
그렇게 말은 했지만 하나는 무척 자존심이 상했다. 자존심 하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하나였는데. 이 남자 앞에선 그 자존심마저 무너져버리고 만다.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없는 일이었다.
“.........!?”
하나의 자존심을 버린 용기를 이 남자는 무시하고 대답이 없다.
하나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버렸다.
침을 탁 뱉고 그냥 가계를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지만. 하나는 다시 용기를 냈다. 그 이유는 같은 공장에 다니는 아가씨들 사이에 이 남자에 대한 근거 없는 무수한 소문 때문이다.
“동인씨는 대기업 재벌 2세야.”
“동인씨 부모님은 모 대학 교수래.”
“동인씨 앞으로 재산이 엄청 많다더라.”
모두 근거 없는 소문에 불과하지만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이 남자 동인을 자기 남자로 만들려는 경쟁이 보이지 않게 시작되었다.
“저랑 사귀지 않을래요?”
하나로서는 자존심을 버리고 최대한 용기를 낸 마지막 질문이었다. 이 질문마저 무시하면 하나로서는 이곳에 더 이상 서있을 자신이 없었다.
“저........”
정말 처음으로 이 남자 동인이 입이 열리려는 순간에. 하나가 경계하던 문제의 정육점집 딸이 차가운 바람과 함께 가계 문으로 들어왔다.
“정은이 왔어?”
하나가 체념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나 네가? 아침 일찍 무슨 일이야?”
정은이가 발끈한 표정으로 하나를 경계하는 말투로 톡 쏜다.
“내가 못 올 때 왔니? 여기가 네 가계니?”
하나도 발끈해서 맞받아친다.
“동인씨랑 돼지고기 넣고 김치찌개를 끓여 먹어야하니까. 그만 나가줄래?”
정은이 정육점에서 들고 온 돼지고기 봉투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끓여 먹어라! 난 만화책 보러 왔다.”
하나가 정은이와 동인을 번갈아 보며 의자에 털썩 앉았다. 제발 동인이 정은이 뜻을 동조하지 말기를 바라며 더 나아가 정은이를 내보내고 하나 자신과 같이 아침을 먹자고 말해주길 바랬다.
그러나 동인은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다. 자신 앞에서 두 여자가 자신을 놓고 다투는 상황에서도 저렇게 태평하다는 것이 오히려 여자들 사이에 무한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며 이 남자 동인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생각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내가 김치찌개 끓일게?”
정은이 주방으로 성큼 들어가며 동인에게 물었다.
“응!”
동인이 얼른 대답했다.
동인이 유일하게 물음에 모두 대답하는 상대가 정은이다.
하나는 물론 하나 친구들도. 이곳 만화가계에 오는 다른 아가씨들도. 정은이 정체를 안다. 비록 포장은 정육점집 딸이지만.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환자라는 것을. 해서 정은이를 화나게 하면 칼이고 뭐고 손에 잡히는 대로 들고 대든다. 오래전 성추행을 당해서 그렇게 됐다는 소문이다. 불쌍한 과거를 갖고 있는 정은이를 동인이 측은하게 생각해서 상대를 해준다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하나는 질투가 났다. 자신의 물음엔 대답도 잘 안하면서 정은이 물음엔 대답도 잘하는 동인이 밉기도 했다.
동인은 정은이 주방으로 들어가자 하나를 바라보며 잠시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하나로서는 획기적인 발전이었다. 동인이 처음 관심을 보여준 것이다.
하나가 괜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어서 들어가 보라는 눈짓을 했다. 주방에 들어가 칼을 잡고 음식을 준비하는 정은이. 바로 이때가 제일 위험하다. 동인이 다른 여자에게 관심을 보이거나. 다른 여자가 훼방을 놓거나 하면 또 칼을 들고 나와 소란을 피울 것이다. 한두 번 겪은 일도 아니었다. 이미 동네가 다 아는 일이다.
“너 거기 계속 앉아 있을 거야? 밥 먹거든 다시와!”
정은이 하나가 신경 쓰였는지 손에 부엌칼을 든 체 가계로 나오며 말했다.
“어? 알았어! 이따가 올게.”
하나가 마지못해 일어나며 말했다.
“얼른 가!”
정은이 하나가 일어나는 것을 보고 다시 주방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하나는 여기 더 있다가는 정은이 소란을 피울 것을 뻔히 알기에 할 수 없이 가계를 나가려고 했다.
“갈게요.”
하나가 동인에게 인사를 하고 막 가계 문을 열려는 순간. 뭔가 툭 하고 하나 손을 잡았다. 처음이다. 그토록 바라던 이 남자 동인이 자신의 손을 잡은 것은. 하나는 그대로 석상처럼 굳어졌다. 움직일 수가 없었다. 움직이면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동인이 손이 떠날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 순간은 아주 짧았다. 하나가 그의 체온을 느끼기도 전에 다시 그의 손은 하나를 떠났다. 단지 하나 손에 뭔가를 남긴 체.
가계 밖으로 나온 하나는 가슴이 콩콩 뛰었다. 그가 하나 손에 남긴 쪽지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저녁 8시 뒷산에서 만나.
이건 동인이 하나와 사귀겠다는 대답과 같았다. 하나는 뛸 듯이 기뻤다. 하늘을 날 것 같았다. 모든 친구들이 그렇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어 하던 동인을 이제 하나 자신이 차지하게 됐다는 성취감에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어! 안녕하세요?”
한창 즐거움에 콧노래를 부르며 걷던 하나 앞에 여고생이 반갑게 인사를 했다.
이 경숙.
전라도 전주에서 왔다는 여고생.
만화가계에서 만난 학생이다.
“어! 어디 가려고? 만화가계라면 더 있다가 가야할 걸. 그 미친년이 또 있어서.”
하나는 경숙이 대답 따위는 필요 없었다. 알려줄 것을 알려 줬으니 다시 콧노래를 부르며 갈 길을 갔다.
“이따가 봐요.”
저 뒤에서 경숙이 목소리가 들린다.
마치 파리를 쫒듯 고개도 돌리지 않고 하나는 손을 휘휘 흔들어주며 걸어갔다.

하나는 통장의 돈을 꺼내 비싼 미용실도 가고. 목욕탕도 가고. 속옷도 새것으로 입고. 향수도 뿌리며 8시를 기다렸다.
그리고 8시를 10여분 남기고 서둘러 만화가계 뒤쪽 동산으로 올라갔다. 여름이면 시원한 바람을 맞으려고 많은 사람들이 돗자리를 들고 올라오는 동산이지만 지금은 추운 탓에 사람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벌컥 무서운 생각에 하나 발걸음이 주춤 멈추었다. 아무리 앞을 봐도 사람 그림자도 보이지 않고 어두운 동산에 나무들만 하나 둘 을씨년스럽게 서 있었다.
“왔어?”
하나가 막 뒷걸음을 치려는 순간 뒤쪽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리며 하나 손을 그의 손이 잡았다.
“네!”
하나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리와!”
그의 억센 손이 하나 손을 잡고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의 한 쪽 옆구리엔 돗자리가 둘둘 말려 들려있었다. 하나는 그의 손이 무척 따뜻하다고 느꼈다. 그는 하나를 큰 소나무 아래로 데려갔다. 그는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말했다.
“앉아!”
하나는 그가 시키는 대로 돗자리 위에 가만히 앉았다.
“사실 나도 하나를 좋아해. 너무 좋아해서 말을 못했어.”
동인이 하나 옆으로 앉으며 조용한 음성으로 속삭이듯 말했다.
“저........ 정말인가요?”
하나가 콩콩 뛰는 가슴을 두 손으로 누르며 물었다.
“그럼! 정말이지.”
동인이 손이 하나 등 뒤로 해서 하나 옆구리를 잡고 힘껏 당긴다. 하나 몸이 동인에게 안기고 말았다.
“.........!?”
동인이 한 손이 하나 턱을 잡고 당기며 동인이 입술이 하나 입술을 덮는다.
“사랑해.”
동인이 속삭이듯 말했다.
“헉! 저도 사랑해요.”
이미 하나는 동인이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주고 있었다. 능숙하게 동인이 손이 하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아무도 없는 어두운 동산.
하나는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그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여러 번 연애를 하다가 실패를 한 하나였기에 이번만은 절대 실패를 하지 않기 위해서 모든 것을 자신이 선택하고 자신이 원해 동인과 사랑을 하게 되었다.
둘은 1주일에 1번씩 만화가계를 떠나 동산이나 여관이나 모텔에서 주로 달콤한 관계를 맺었다.
사랑의 씨앗인가.
하나에게 그의 씨앗이 자라기 시작했다.
3개월.
1994년 모질게 꽁꽁 얼어붙은 추운 겨울.
청천벽력과 같은 거대한 회오리가 하나에게 불어 닥쳤다.
갑자기 사라진 만화가계와 허 동인.
그리고 망연자실 만화가계를 바라보는 여인들. 그렇게 달콤했던 하나의 사랑은 처참하게 부셔졌다. 무려 5명. 그녀들은 모두 하나가 아는 여자들이다. 만화가계 건너편 정육점집 딸 정은이를 포함. 하나와 같이 공장에 다니던 친구들까지. 일주일간 교대로 동인이 밤무대를 만들어 줬던 희생양들인가. 그들에겐 공통점이 있었다. 동인이 씨앗이 뱃속에서 자라고 있다는 것.
“우리가 속았어. 우리가 당했어.”
모두 텅 빈 만화가계에 넋을 놓고 주저앉아 통곡했다.
그리고 하나 둘 그의 씨앗을 제거하기 위해 산부인과를 찾아 분주히 떠나갔다.















김 범 영 애정소설
                           엄마는 사채업자.

제1편 붉은 거미.

2013년 서울 금호동.
작은 집들이 산비탈을 마치 계단처럼 다닥다닥 붙어 동네를 형성한 서울의 대표적인 빈촌이다.
다르륵. 다르륵.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가 가득한 조그만 가내 공장.
10여명의 직원들이 앉아 가방을 만드느라 분주하다. 여기저기서 가방 하청을 받아 만들어 납품하는 공장이다.
“휴........ 우리 월급은 언제 주려나.”
재봉틀을 분주히 돌리며 바느질을 하던 아주머니가 한 숨 섞인 말로 옆 동료에게 말한다.
“벌써 두 달이나 밀렸지? 난 들어 온지 이제 한 달 넘었는데........”
옆에서 재봉틀을 돌리던 동료 아주머니가 걱정스런 말투로 묻는다.
“그래도 난 나은 편이야. 순덕이네는 3개월이나 밀렸다고.”
“사장은 왜 그런다니? 수금도 잘된다는데?”
“몰라! 늘 입버릇처럼 수금이 안 된다고 하더라.”
“그런 사람이 골프나 치러 다니고. 호텔뷔페나 먹으러 다니겠어? 다 거짓말이지? 안 그래?”
“맞아! 다 거짓말이야. 오늘은 사장 오면 좀 따져야겠어.”
“그러다 경미처럼 해고당하면 어쩌려고?”
“휴.......”
두 아주머니들 대화는 거기서 잠시 멈추었다. 월급은 밀렸어도 사장에게 따져봐야 해고를 당할 텐데. 당장 일자리 구하기도 힘들었다. 답답한 마음을 어디에 하소연이라도 할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두 아주머니는 저 쪽 문턱에 앉아 꾸뻑꾸뻑 졸고 있는 청년을 슬쩍 바라본다. 사장에게 열심히 아부해서 관리를 맡은 허수아비 공장장이다. 아는 것도 기술도 없지만. 사장이 부재 시 사장 대신 직원들 감시용으로 저렇게 앉혀놓은 것이다.
덜컹.
공장 문이 열리며 환한 빛이 공장 내부로 쏟아졌다
“.........!?”
아주머니들 눈이 일제히 한 곳으로 향했다.
공장으로 들어 선 사람들 때문이다. 모두 4명. 가느다란 다리에 딱 달라붙은 스키니 청바지를 똑같이 입고. 붉은색 티셔츠를 배꼽이 다 들어나도록 입었다.
“쌍둥이들인가!?”
공장 직원들은 하나같이 그렇게 생각했다.
“햐!”
꼬빡꼬빡 졸고 있던 직원 감시용 청년이 공장 문이 열리는 소리에 놀라 일어나다 입에 침을 흘리고 멍하니 서있다.
하나같이 키가 크고 날씬한 미녀들이다.
“너! 이리와!”
생머리에 눈이 큰 아가씨가 직원 감시용 청년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했다.
“나?”
청년은 어이가 없어서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래! 이리와!”
이번엔 노란색으로 염색을 한 짧은 머리에 키가 가장 작은 아가씨가 냉큼 대답했다.
청년은 자신도 모르게 비실비실 아가씨들 앞으로 걸어왔다.
“사장이 고무영이지?”
“네!”
청년은 자기도 모르게 존댓말로 대답했다.
“당장 전화해. 총알같이 뛰어 오라고.”
“지방에 내려가신다고........”
“지방은 무슨. m호텔 뷔페를 처먹고 있는데. 당장 전화 못해?”
“야! 야! 그럼 무서워서 오겠니? 여기 예쁜 아가씨들 4명이 취직하러 왔는데. 사장님은 뵙고 결정하겠다고 한다. 그래.”
이번엔 검은 머리에 다리가 유난히 길어 보이는 아가씨가 둘 대화를 말류하며 말했다.
“그걸 내가 왜?”
청년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안 그러면 아프거든.”
4명중 가장 예쁘게 생긴 아가씨가 나서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
“뭐? 고분고분 해주니까 내가 바지저고리로 보여?”
청년이 발끈했다.
“응! 바지저고리로 보인다.”
노란머리 아가씨가 대답했다.
“이것들이! 아까부터 반말질이야? 내가 그렇게 우스워?”
“그래 우스워 보인다.”
이번엔 생머리가 긴 아가씨가 대답했다.
“이것들이!”
청년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짝.
청년의 볼에 번개 불이 번쩍 했다.
생머리 아가씨가 손바닥으로 뺨을 때린 것이다.
무척 아팠다. 청년의 눈에서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비췄다.
“이게!”
반항을 하려던 청년의 볼에 다시 아가씨들 손바닥이 날아들었다.
짝. 짝. 짝.
청년의 입술이 터지고 피가 흘렀다.
“더 아파야 전화를 하겠어? 얼른 사장한테 전화를 해야지? 더 아프면 죽을지도 몰라. 응?”
예쁜 아가씨가 손으로 청년 턱을 받쳐 들고 청년 얼굴을 들여다보며 생긋 웃었다.
공장에서 일을 하던 아주머니들은 사장에게 늘 아부만 하던 청년이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아가씨들에게 맞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도 통쾌했다. 일을 하던 손을 멈추고 흥미롭게 구경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청년이 호락호락 아가씨들 말을 들을 리 만무했다. 그래도 남자인데. 하는 생각에 주먹을 불끈 쥐고 자신의 턱을 받쳐 들고 생끗 웃는 아가씨 턱을 향해 빠르게 휘둘렀다.
휘잉.
청년 주먹은 허공만 때리고.
짝.
다시 예쁜 아가씨 주먹이 청년 볼을 세차게 때렸다.
“악!”
청년은 자기도 모르게 비명이 터졌다. 지금까지 맞은 아가씨들 손바닥과는 차원이 틀렸다. 엄청난 아픔이 몰려오며 청년의 몸은 뒤로 벌렁 넘어졌다.
퍽. 퍽.
“으악!”
넘어진 청년 옆구리에 노란머리 아가씨 발길이 아프게 파고들었다.
청년은 비명을 질렀다.
몇 차례 더 때린 아가씨 발은 멈추었다.
“이제 전화를 해야지?”
노란머리 아가씨가 쪼그리고 앉아 청년이 넘어지며 떨어뜨린 핸드폰을 손으로 주어 청년에게 주며 빙긋 웃었다.
미소를 지으며 때리는 아가씨들이 청년에겐 너무도 공포로 다가왔다. 더 이상 아가씨들을 상대하기엔 자신의 힘이 보잘 것 없다는 것을 청년은 느꼈다. 청년은 전화기를 받아 들며 머리를 굴렸다. 금호동 파출소 전화번호를 아는 청년은 사장에게 전화를 하는 척 하며 파출소로 전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런 청년의 생각은 깨끗이 잊어야했다.
“눌러! 010-7743-xxxx"
아가씨가 줄줄이 외우고 있는 전화번호. 바로 사장 전화번호였다. 청년은 하는 수 없이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쁜 아가씨들이 4명이나 와서 취직을 하겠다한다. 사장을 뵙고 결정하겠단다. 라고 전해.”
청년은 아가씨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가씨라면 사족을 못 쓰는 사장은 곧 오겠다고 했다.
청년은 아가씨들 눈치를 살피며 전화를 끊었다.
“너! 봉지 커피라도 타와.”
재봉틀 위에 털썩 앉으며 노란머리 아가씨가 청년을 보고 말했다. 이미 공장 한 쪽에 봉지 커피와 온수기가 있는 것을 발견 한 모양이다. 말을 하는 노란머리 아가씨 눈이 그곳으로 향했다.
“난 물 량이 작게.”
“난 물 량이 좀 많게.”
아가씨들이 모두 취항에 맞게 주문을 했다. 구경을 하던 아주머니들은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청년은 슬금슬금 걸어서 온수기로 향했다.
“혹시 소문의 그?”
구경을 하던 공장 근로자 아주머니 한 명이 아가씨들 정체를 알겠다는 듯 작은 소리로 옆 아주머니에게 말했다.
“그런 것 같아! 그 뭐라더라........?”
“붉은 거미.”
“맞아! 붉은 거미야.”
“4명이고 옷차림새도 같고. 틀림없어.”
두 아주머니들 속삭임을 들었나. 긴 생머리 아가씨가 고개를 돌려 두 아주머니들을 힐끗 본다. 아주머니들은 얼른 입을 다물었다.
긴 생머리 아가씨가 다시 고개를 돌리자 두 아주머니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저........”
청년이 비실비실 걸어서 아가씨들에게 커피를 배달했다.
“난 커피에 물이 많아야 좋다 했는데. 이게 뭐야.”
예쁜 아가씨가 커피를 청년 앞에 쏟으며 토끼눈을 뜬다. 청년이 어쩔 줄 몰라 하는데.
“난 커피 물량이 작아야 좋다 했는데. 멍청이.”
긴 생머리 아가씨가 투덜대며 커피를 청년 앞에 던져 버린다.
“나도 물량이 작아야 좋다고 했는데. 이런 바보.”
유난히 다리가 긴 아가씨도 커피를 청년 앞에 던져 버린다.
“왜 그래? 난 괜찮은데. 커피 물도 적당하고.”
노란머리 아가씨가 배시시 웃는다.
“저 바보가 네가 젤 무서운 모양이야. 눈치 살피는 꼴을 봐. 호호........”
긴 생머리 아가씨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그래? 너! 내가 젤 무섭니?”
노란머리 아가씨가 긴 생머리 아가씨 말에 청년을 바라보며 묘한 미소와 함께 물었다.
“저........ 그게.........”
청년은 머뭇거렸다. 뭐라 대답을 해야 얻어맞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뾰족한 해답이 없었다.
“사장실에 냉장고 있지?”
노란머리 아가씨가 뜬금없이 물었다.
“네!”
청년은 냉큼 대답했다.
“거기 시원한 음료수가 있지?”
“네!”
“가서 그걸 4개 가지고 와. 딴생각 말고. 어디다 전화를 할까. 또는 도망을 갈까. 하는 생각은 버려야지?”
“네!”
“그래! 착하네. 얼른 가져와.”
노란머리 아가씨가 마치 어린아이 다루듯 청년에게 말했다.
“네!”
청년은 얼른 일어섰다.
“다섯이면 충분하지? 하나.”
노란머리 아가씨가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청년은 총알같이 뛰어서 사무실로 들어갔다.
“둘. 셋.”
노란머리 아가씨가 셋까지 빠르게 말을 하고 멈추었다. 우당탕 거리고 청년이 사무실에서 음료수 캔을 들고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야! 야! 난 콜라로 줘.”
긴 생머리 아가씨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청년은 노란머리 아가씨 눈치를 살폈다. 노란머리 아가씨가 청년을 보고 고개를 끄떡 거렸다. 긴 생머리 아가씨가 원하는 것을 주라는 뜻이었다. 청년은 얼른 콜라를 긴 생머리 아가씨에게 줬다.
“야! 거기 노란색 캔은 이리.”
예쁜 아가씨가 손가락을 까딱 거렸다. 청년은 다시 노란머리 아가씨 눈치를 살폈다. 노란머리 아가씨가 고개를 끄떡이는 것을 보고 노란색 캔을 예쁜 아가씨에게 줬다.
“남은 두 개가 뭐 뭐지?”
유난히 다리가 긴 아가씨가 물었다.
“사이다와 커피인데요.”
청년이 얼른 대답했다.
“난 그럼 커피로.”
유난히 다리가 긴 아가씨가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말했다. 청년이 다시 노란머리 아가씨 눈치를 살피고 캔을 넘겼다.
“사이다는 내 몫이군.”
노란머리 아가씨가 청년 손에서 사이다 캔을 얼른 빼앗아 뚜껑을 따고 입으로 가져갔다.
“호호호........ 쟤 오줌쌌나봐.”
긴 생머리 아가씨가 청년 바지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깔깔 웃는다. 청년 바지춤이 흠뻑 졌었다.
“아. 아니에요.”
청년이 말했다.
“아니면?”
노랑머리 아가씨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사장님 냉장고에 있던 보약을 쏟았어요.”
청년은 얼른 해명을 했다.
“뭐라고? 내 보약을?”
때 마침 공장 문을 열고 들어서던 사장이 그 말을 들은 모양이다. 제법 살이 통통한 건장한 40대 남자였다. 청년은 순간 벌벌 떨며 어쩔 줄 몰라 했다.
“그....... 그게.”
청년은 변명을 하려고 했지만 좋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우선 사장보다 더 무서운 여자들이 앞에 있기 때문이다.
“마! 뭐라 그랬어? 그 비싼 보약을? 쏟았다고?”
사장은 화를 벌컥 내며 청년을 잡아먹을 듯 노려보다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4명의 아가씨들을 발견하고 억지로 웃는 표정을 지었다.
“고무영씨! 반가워요.”
긴 생머리 아가씨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 어떻게 내 이름을?”
사장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본능적으로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휘익.
스치는 바람처럼. 노란머리 아가씨가 공장 문으로 달려가 문을 봉쇄했다.
“왜?”
사장이 본능적으로 위기를 느끼고 이유를 물었다.
“왕십리 이 여사를 아시지?”
긴 생머리 아가씨가 말했다.
“이 여사? 그건 왜?”
“왜긴 돈 받으러 왔지. 네가 빌려간 돈.”
“지금 없는데........”
“늘 그랬잖아. 지금 없다고. 그건 이 여사에게만 통하는 말이고. 이 붉은 거미에겐 안 통해.”
“붉은........ 거....... 미!”
사장은 놀랍다는 표정을 지으며 주춤 물러섰다.
“도망가려고? 순순히 갚는 것이 좋을 텐데? 2008년 10월부터 k브랜드 상표모방 핸드백 제조 판매. 2010년부터 신당동 골목에 불법 도박장 운영. 2011년 아내 몰래 h양과 불륜. 자동차 인사사고를 내고 뺑소니에. 더 할까?”
긴 생머리 아가씨 말에 사장은 온 몸이 경직되고 있었다.
“그만! 갚으면 될 것 아니야. 갚는다. 갚아.”
사장은 얼른 사태를 파악했다. 더 이상 버텨봐야 자신의 비리가 모두 직원들에게 폭로되고. 나아가 고발조치까지 되어 세상에 알려질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상대가 그 악명 높은 사채업자의 딸 붉은 거미이므로.
붉은 거미.
이 지역에선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사채업자 이 여사의 딸과 그의 친구들로 구성된 4명의 악녀를. 혼자 사는 과부의 돈이라고 날름날름 쓰고 갚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요리조리 이 여사를 골탕 먹이던 사람들에게 무서운 악녀들이  나타났다. 바로 붉은 거미라는 이름을 가지고 4명의 아리따운 아가씨들이. 그들의 신상정보를 꿰뚫고. 돈을 받겠다고 설치고 다녔다. 같은 학교 무술 고단자로 구성된 4명의 아가씨 붉은 거미. 그녀들을 막겠다고 돈으로 매수한 한 가닥 한다는 폭력배들조차 그들 손에 무참히 깨졌다. 신상정보는 물론 막강한 파워까지 곁들인 그녀들. 고 무영 사장도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왜 4명의 아가씨란 청년 전화를 받고 그 생각을 못했을까. 후회가 됐지만 이미 늦었다. 이젠 이 여사 돈을 갚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란 것을 그는 안다.
“지금 입금 시켜. 계좌번호는.......”
긴 생머리 아가씨가 계좌번호가 적힌 명함을 내밀었다.
“알았어!”
사장은 얼른 그 자리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이자까지 3600이야.”
“왜? 3100으로 아는데?”
“쟤 치료비 줘야 하거든. 입술도 터지고. 옆구리에 멍도 생겼어.”
긴 생머리 아가씨가 손가락으로 청년을 가리켰다.
“치료비는 내가.”
사장은 머리를 굴렸다. 자기가 주겠다. 하고 이 악녀들이 가면 안줘도 된다는 생각이었다.
“허튼짓! 그 치료비는 우리가 항상 직접 받아 직접 전달한다는 것을 알 텐데?”
긴 생머리 아가씨는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장은 잠시 머뭇거렸다.
“아님 다른 방법이 있어.”
긴 생머리 아가씨가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장은 덜컥 겁이 났다. 이 악녀들이 미소를 지을 땐 조심해야 한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아니야! 그냥 지금 입금 시킬게.”
사장은 얼른 핸드폰으로 뱅킹을 시작했다.
“왜? 무슨 방법인지 궁금하지도 않아?”
긴 생머리 아가씨가 배시시 웃으며 물었다.
사장은 그런 아가씨 모습에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모르긴 해도 이 긴 생머리 아가씨가 바로 그 이 여사의 딸일 것이다. 다른 방법을 물어보면 나만 손해다. 직원들 임금을 들먹일 것이고. 저 녀석 치료비에 월급까지 다 해결하라고 나올 것이다. 눈치 빠른 사장은 얼른 3600만원을 아가씨가 내민 계좌로 이채를 시켰다. 그리고 됐지 않느냐 하는 표정으로 긴 생머리 아가씨를 봤다.
“됐어요. 그리고 어이!”
긴 생머리 아가씨가 사장에게 말하고 다시 청년을 불렀다.
청년이 비실비실 다가왔다.
“사내 녀석이 일을 저질렀으면 책임을 져야지? 네 여자 친구 뱃속에 든 생명을 지우라 했다고?”
긴 생머리 아가씨가 어린애 다루듯 말했다.
“네? 그걸 어떻게?”
“그래서 우리가 널 혼내준 거야. 이 돈 500은 그 친구 줄 테니까. 나중에 아기 낳으면 잘 키우고. 예쁘던데. 많이 사랑해줘. 알았어? 나중에 보고 허튼짓 또 해서 여자 친구 괴롭히면 넌 다시 혼날 줄 알아? 엉?”
“네! 네!”
청년은 그저 그렇게 대답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다른 변명이라도 하다가 다시 얻어맞으면 자기만 손해니까.
부들부들 떨며 고개를 숙이고 대답만 하던 청년이 고개를 들었을 땐 이미 그녀들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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