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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영의 아카시아꽃피면 완결편 강력한 적이나타났다.
유리넷  2015-11-08 11:12:02, 조회 : 121, 추천 : 13

김범영 문학소설 완결편                      
  제 8회 강력한 적이 나타났다.


여지가 향기로운 인동초 꽃차를 마시고 서울로 올라가고 며칠이 지나갔다.
길바닥에 어저께 내린 눈이 아직도 하얗던 아침. 녀석은 새벽부터 지영이를 깨워 세수를 시키고 밥도 먹게 하고. 어딜  데리고 간다고 서두르고 있었다. 겨울철이라 조경공사는 중단된 지 오래됐다. 내일이면 크리스마스이브가 되는 오늘이 12월 23일 아침이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어딜 가려고?”
내가 잠에서 깨어 방문을 열고 녀석에게 물었다.
“오빤 더 자. 지영이와 나만 다녀올 곳이 있어.”
녀석은 나를 다시 방으로 밀어 넣고. 문까지 닫아 버린다.
“어딜 가려고 저러지........!”
난 의문이 생겼지만. 녀석을 항상 믿기에 그냥 다시 잠이 들었다. 어제 늦게까지 장작을 패서. 몹시 피곤하기도 했지만 일이 없으니 나도 모르게 게을러 진 탓도 있었다. 난 녀석과 지영이가 어디를 갔는지 모른 체 해가 중천에 떠있을 때까지 잠들어 있었다.
똑똑........
누군가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난 잠에서 깼다.
“누구세요?”
나는 녀석과 지영이가 없다는 것을 알기에 동네 사람들이 날 찾아 온 것으로 생각했다.
“오빠! 나야!”
뜻밖에도 집에 들어와 내 방문을 두드린 사람은 여지였다.
“여지. 어떻게? 바쁘지 않아?”
“우리라고 늘 바쁘나. 3일간 휴가에요.”
여지가 휴가를 내어 놀러 온 모양이다.
“오! 잘됐네. 잠깐만.”
난 얼른 방문을 닫고 옷을 갈아입었다.
내가 옷을 갈아입는 동안 여지는 주방에서 차를 끓이고 있었다. 나는 소파에 앉았다. 녀석이 인동초 꽃차가 어디 있는지 가르쳐 준 모양이다. 여지는 인동초 꽃차를 두잔 가지고 내 앞으로 와서 앉았다.
“드세요.”
여지가 차 한 잔을 내 앞에 놓았다.
“아침은?”
내가 찻잔을 들어 차를 입으로 가져가며 물었다. 나도 아침을 먹기 전이므로 여지와 식사를 하려고 물은 것이다.
“오빠도 아직 식사 전이잖아요? 차부터 마시고. 내가 준비할게요.”
여지가 급할 것 없다는 투로 말했다.
“애들이 다 어딜 가서........”
나는 녀석과 지영이가 아침부터 어딜 갔으므로  그 말을 하는 것이었다.
“알아요! 동생들은 여행 갔어요.”
“여행? 어디로?”
나는 무척 놀랐다. 녀석이 지영이를 데리고 여행을 갔다는 것도 그렇고. 그걸 여지가 알고 있다는 것도 그랬다.
“아마 지금쯤 울릉도로 향하는 배를 타려고 할 거 에요.”
“울릉도? 추운 날씨에 울릉도는 왜?”
“지현이가 오빠와 나하고 즐거운 시간 보내라고 자리 비켜준 거 에요.”
“뭐? 그럼........! 그때부터 이미?”
“네!”
여지가 얼굴을 붉힌다. 녀석이 이미 먼저 번 여지와 같이 승용차를 타고 오면서 계획한 것이 이것이었던 모양이다. 나와 여지에게 시간을 만들어 주려고 지영이를 데리고 여행을 갈 계획을 미리 준비한 것이었다.
녀석이 이젠 나와 결혼 하겠다는 생각을 접은 모양인데. 왜 그럴까. 내 마음은 허전해졌다. 어차피 친동생으로 생각하고 살아가기로 했으니 잘 된 일이지만. 왜일까? 자꾸 허전해지는 느낌은.
“잘됐네! 우리 둘이 재미있는 크리스마스를 보내야지.”
“네! 우선 밥부터 먹죠. 배고파요.”
여지는 차를 다 마시고 주방으로 걸어갔다.
“나하고 같이 준비하자. 여지는 뭘 잘 만들지?”
“전........ 별로 해본 것이 없어서........그래도 밥은 잘해요.”
“그럼 여지는 밥하고. 난 된장찌개를 끓일게. 우리 지현이가 담근 된장인데 맛있어.”
“동생이 된장도 담아요?”
여지는 놀랍다는 표정이다.
“된장뿐이겠어? 고추장에 간장까지. 메주도 직접 만들고. 다해.”
“그래요?”
여지가 놀라는 표정은 무척 이상했다. 놀라는 표정 뒤에 심각함이 깃들어있었다.
“왜? 여지 표정이 왜 그래?”
나는 여지 표정을 보고 의문을 생겼다.
“아. 아니에요.”
여지는 얼른 표정을 바꾸며 억지로 밝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
나는 여지가 왜 갑자기 심각한 표정을 지었으며 억지웃음을 내게 보이려고 하는 지 의문이 생겼지만. 음식을 준비하느라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동생이 음식도 잘하죠?”
여지가 쌀을 씻으며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나에게 물었다.
“잘하지. 그럼. 녀석은 못하는 것이 없어. 음식도 잘하지. 사업도 잘하지.”
“네........!”
여지는 개운치 않은 대답을 했다. 여지 대답이 또 신경 쓰였지만. 여지 컨디션이 좋지 않은 모양이다 생각하며 그냥 흘려보내고 말았다.
음식 준비를 하던 나는 녀석이 배를 타면 멀미를 할 것을 생각하고 전화를 했다.
“너! 지영이 데리고 어딜 간다고?”
“울릉도 구경 가려고. 히히........ 오빠 혼자 심심할까봐. 여지 언니 오라 했는데. 왔어?”
“너! 멀미할 텐데? 거기가 어디라고 구경을 가? 얼마나 먼데........ 멀미약은 챙겨 먹었어?”
“응! 챙겨 먹었어. 한 3일 걸릴 테니까. 여지 언니랑 즐겁게 크리스마스 보내. 알았지?”
“그냥 돌아오면 안 돼? 너무 멀어서 힘들단 말이야. 멀미도 많이 하면서?”
“히히........ 지영이가 옆에 있으니 너무 걱정 마. 그럼 즐거운 크리스마스 보내.”
녀석은 얼른 전화를 끊어 버렸다. 나는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녀석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나는 결국 지영이에게 전화를 했다.
“네! 오빠!”
“우리 지현이 괜찮아? 멀미 잘하는데?”
“네! 배가 너무 흔들려서 저도 죽겠어요. 으으.........”
지영이가 고통스러운 말투다.
“그런 소리를 왜 해?”
옆에서 녀석이 소리치며 지영이 전화까지 뺏어 끊어 버린 모양이다. 녀석도 지영이도 다시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난 찌개를 끓일 냄비에 물은 계속 끓는데....... 녀석 걱정에 멍하니 서있기만 했다. 그런 내 모습을 여지는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동생이 어린애도 아니고 옆에 지영이도 있으니 너무 걱정 마세요.”
나를 심각하게 바라보던 여지가 위로의 말을 했다. 나는 여지 말에 정신을 차리고 다시 찌개를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녀석 걱정에 나는 다시 멍하니 서있게 됐다.
“울릉도가 얼마나 먼데........큰 배도 아니고. 멀미가 심할 텐데........”
나도 모르게 중얼거림이 입 밖으로 튀어 나왔다.
“이런.........! 동생 걱정 때문에 이러다가 밥이나 먹겠어요?”
여지가 다시 나를 위로하며 내 옆구리를 손으로 툭 쳤다.
“아! 미안.”
난 다시 여지 앞에서 내가 실수를 한 것을 알고 억지 미소를 보여주며 다시 찌개를 끓이기 시작했다.

여지와 식사를 마치고 난 계속해서 녀석과 지영이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기가 꺼져있었다.
“오빠! 그렇게 걱정되면 쫒아가 보세요.”
보다 못한 여지가 그 말을 했을 때 난 여지를 앞에 놓고 너무 녀석 생각만 한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 영화나 보러 갈까?”
여지에게 미안해서. 나는 얼른 근심 가득한 얼굴을 감추고 억지로 미소를 띠며 여지를 데리고 양평 y극장에 갔다.
극장에 들어가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녀석 걱정에 영화 내용은 하나도 기억 못했다.
“영화 재미있죠? 특히 중간에 주인공이 자동차를 쫒아가며 막 소리치는 그 장면이 멋있었어요. 오빤 무슨 장면이 좋았어요?”
여지가 극장을 나오며 물었을 때 난 아무 대답도 못했다. 녀석 걱정 때문에 기억나는 장면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걸 눈치 못 챌 여지가 아니었다.
극장을 나와 나를 바라보는 여지 눈엔 반짝거리는 눈물방울이 보였다.
그 순간 나는 여지에게 못할 짓을 하고 있구나 하는 죄책감이 들었다. 어디 가서 여지를 즐겁게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노래방 갈까?”
“네! 그래요.”
여지는 내 뜻을 알고 얼른 따라 나섰다. 극장 근처에 노래방이 하나 있었다. 여지가 술도 못 마시고. 춤도 잘 안 추는 것으로 알기 때문에 나이트클럽은 여지에겐 맞지 않았다. 해서 선택한 것이 노래방이었다.
여지와 나는 노래방에서 몇 곡을 교대로 불렀다.
한참 분위기 띄우고 즐겁게 놀다가 갑자기 문제가 생겼다.
“오빠!”
여지가 내 곁으로 다가오며 들어가는 소리도 나를 불렀다.
“응?”
“나 좀 안아줘!”
“응! 그래!”
난 여지를 안기위해 팔을 벌렸다. 헌데......... 갑자기 녀석 생각이 떠올랐다. 킁킁........ 코로 내 몸에 냄새를 맡으며 어느 여시야? 하고 토끼눈을 뜨는 녀석 모습이 각인되면서 도저히 여지를 안을 수 없어서 팔을 벌린 채 그냥 서있는 꼴이 되고 말았다.
“.........!?”
여지는 내 가슴에 기대고 있다가 내가 팔을 벌린 채 가만히 있자 다시 떨어져 나가며 나를 바라보았다. 여지 눈엔 실망이 가득했다.
“나가죠!”
여지는 손가방과 벗어 놓았던 웃옷을 챙겨들고 먼저 노래방을 나가 버렸다.
노래방을 나간 여지는 바로 나의 집으로 데려다 달라고 해서 자기 승용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 버렸다.
“오빠와 저 사이에는 건너기 힘든 너무도 큰 강이 있었네요. 이제야 그걸 알게 됐다는 것이 후회돼요. 일찍 알았다면 오빠와 더 빨리 만나서. 오빠를 사랑할 것을 그랬어요. 동생 찾기 전에........ 후후........ 하지만 이미 늦었네요. 지현씨와 오빠 사이엔 아무도 끼어들 수 없다는 것을 알았어요. 이제 오빠와 저는 그냥 아는 오빠와 동생으로 남을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다음에 만나면 오빠라 부르지 않고 그냥 선배라 부를게요.”
그날 밤. 여지가 서울로 올라가며 남긴 말이다. 떠나는 여지 눈엔 눈물이 가득 담겨 있었다.
말없이 여지를 떠나보내고. 난 급히 내 승용차를 몰고 동해로 향했다.
깊은 밤. 고속도로위를 달리는 내 승용차는 무척 급하게 속도를 내고 있었다.
내 마음과 같이 승용차도 급했던 것인데.........
녀석이 멀미를 하고 아파할 것을 생각하며 내 마음은 녀석에게 달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허나 급하면 꼭 사고가 터진다.
진눈깨비가 쫙 깔린 고속도로위를 속도를 내서 달리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대관령을 눈앞에 두고 터널을 빠져나간 내 승용차는 급커브에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도로를 이탈하고 말았다.
작은 소나무를 비스듬히 들이받는 내 승용차는 옆으로 한 바퀴 돌며 밭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정신이 아득했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고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며칠이 지났는지 모른다.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땐. 병원 침대 위에서 주사기를 꽂고 누워있었다. 머리가 몹시 아팠다. 내 머리엔 붕대가 칭칭 감겨 있는 것으로 보아 머리를 다친 모양이었다. 가슴에도 답답함을 느껴  내려다보니. 내 가슴에 녀석이 엎드려 잠들어 있었다. 잠이든 녀석 얼굴엔 온통 눈물자국으로 얼룩져 있었다.
나는 주사기 꽂힌 손을 들어 녀석 얼굴을 살짝 만졌다. 녀석이 꿈틀댄다. 잠에서 깨려나보다. 나는 얼른 녀석 얼굴에서 손을 내리고 눈을 감았다.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척 하려는 것이다.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나 자신도 알지 못했다.
덜컹.
병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들어 온 모양이다.
“야! 일어나!”
지영이 목소리였다. 지영이가 병실에 들어와 녀석을 깨우는 모양이다.
“왔어?”
녀석이 잠에서 깨어 내 가슴에서 머리를 치웠다.
“아픈 오빠를 그렇게 베고 자면 어떻게?”
지연이가 녀석을 호통치고 있었다. 신기한 일이다. 지영이는 녀석에게 늘 꼼짝 못하는데. 지금은 야단을 치고 있었다.
“아! 미안! 그만 깜빡 잠들었어.”
더욱 신기한 것은 녀석이 꼼짝 못한다는 것이다.
난 계속 자는 척 하며 둘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오빤?”
지영이가 내 상태를 녀석에게 묻는 모양이다.
“아직........ 흑흑........”
녀석이 갑자기 울기 시작한다.
“울긴 뭘 울어? 다 너 때문이잖아. 오빠가 잘못되면 어쩔래? 뭐? 여지 언니가 뭐 어떻다고? 강력한 적이 나타났다고? 그래서 그게 여지 언니를 오빠 곁에서 쫒아내는 방법이라고? 네 생각대로 여지 언니는 오빠 곁에서 떠났지만. 오빤 너 걱정하느라고 달려오다가 사고가 났잖아? 으앙.........”
지영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헌데........ 지영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는 무척 놀랐다.
녀석이 여지를 강력한 적으로 생각했다는 것도 놀랐지만. 내 곁에서 여지를 몰아낼 생각으로 일부러 울릉도 여행 이야기를 하며 내가 녀석을 걱정하게 만들었다는 것이 너무 기막혔다.
이 마귀할멈 같은 녀석이. 또 날 갖고 놀았단 말인가. 난 무척 화났다.
여지를 처음 만날 때부터 여지가 자신에게 가장 강력한 경쟁자다. 적이다.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내 곁에서 스스로 물러나게 만들기 위해. 여지가 크리스마스이브에 맞춰 내게 오도록 미리부터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울릉도 여행 어쩌고 하면서 배가 흔들려서 어쩌고 하면서. 내가 자기 걱정을 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결국은 여지 스스로 나와 녀석 사이에 끼어들 수 없다는 것을 깨달고 떠나게 만들었던 것이다.
무서운 녀석. 역시 녀석은 내가 감히 어떻게 할 수도 없는 마귀할멈이었다. 난 무척 화났다. 당장 일어나 녀석을 혼내주고 싶었다. 하지만 녀석과 지영이 대화를 더 들어 보기로 했다.
“으앙.........”
녀석도 울음을 터뜨렸다.
“오빠가 깨어나지 못하면 어쩔 거야?”
지영이가 눈물 섞인 목소리로 녀석에 물었다.
“오빠가 죽으면 나도 같이 죽을 거야. 오빠가 깨어나지 못하면 나도 항상 오빠 곁에 있을 거야. 난 오빠를 사랑하니까. 너무 사랑하니까. 그러니 너무 뭐라 하지 말란 말이야. 나도 지금 죽고 싶으니깐. 으앙........”
녀석이 지영이에게 악을 쓰며 말하고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난 그래도 너를 친구 이전에 무척 존경했어. 네가 갖은 그 결단력. 깊은 생각과 빠른 머리회전. 무엇 보다고 오빠를 향한 너의 그 간절함을 알기에. 차마 난........난........ 오빠를 좋아하면서도 곁에 가려는 생각조차 못했어. 네가 오빠를 사랑하는 그 숭고함을 난 너무 존경했어. 오로지 오빠를 기다리며 매일 눈물로 지새우던 그 7년 세월을 난 아직도 잊지 못해. 그래서 나도 네 곁에 머물고 있었던 거야. 네가 어린 나이부터 그렇게 사랑하는 오빠가 돌아올 날을 기다리며. 너에게 사업을 배우고 있었어. 그리고 네 사업수단에 난 무척 놀라고 너를 더욱 존경했다. 헌데. 이건 아니다. 오빠를 다치게 한 건 정말 잘못이야. 네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실수를 한 거야.”
지영이도 지지 않고 말했다.
“그래! 내 실수였어. 오빠가 날 걱정해서 그 밤에 달려올 줄은 정말 몰랐으니깐. 정말 오빠도 날 사랑하나봐. 동생이 아닌 여자로 사랑해줬으면 좋겠는데........”
녀석이 갑자기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울기 시작한다. 녀석 몸이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잠든 척 할 수가 없었다. 화났던 것도 언제부터인가 사라져버렸다. 녀석이 나를 향한 사랑이 그렇게 깊었다는 사실을 알고 내 마음도 녹아버린 것이다.
“끄으응.”
난 이제 정신을 차린 듯 몸을 움직이며 눈을 뜨고 녀석과 지영이를 바라보았다.
“오빠! 정신이 들어요?”
나를 먼저 발견한 것은 지영이다. 녀석은 내 가슴에 엎드려 있다가 내가 움직이는 느낌에 고개를 들어서 좀 늦게 나를 봤다.
“으앙........ 내가 잘못했어! 오빠! 미안해!”
녀석이 내가 정신을 차린 것을 알고 눈물을 펑펑 흘리며 울기 시작했다. 저런 녀석을 어떻게 화난다고 야단을 칠 수 있을까. 도저히 여지를 내 곁에서 떨어지게 만들려고 음모를 꾸민 녀석을 야단칠 수가 없었다. 난 말없이 두 팔을 활짝 벌렸다. 녀석이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울기 시작했다. 난 녀석을 포근히 감싸 안았다.
지영이가 그 장면을 보고 손으로 눈물을 닦으며 병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아마 자리를 피해준 모양이다.
“오빠! 살아줘서 고마워!”
녀석이 눈물이 범벅이 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입가에 살짝 미소를 머금었다.
“녀석........! 정말 나를 남자로 사랑해? 오빠가 아닌?”
난 녀석 눈물을 손가락으로 닦아주며 물었다.
“들었어? 응! 그래! 난 오빠를 사랑해. 많이많이.”
녀석은 다시 눈물을 흘리며 대답했다.
“알았어! 오빠도 노력해볼게. 너를 여자로........”
“고마워! 오빠!”
갑자기 녀석이 자기 입술을 내 입술에 포갰다. 난 잠깐 망설였지만. 곧 녀석 입술을 받아들이고 말았다.
녀석과의 첫 키스는 오래도록 계속됐다.

다음날 나는 퇴원을 해서 곡수리 집으로 돌아왔다.
지영이는 그날 병실에서 자리를 피해주러 나간 후 아직 보이지 않았다. 나와 녀석의 긴 키스를 지켜보고 떠난 모양이다.
곡수리 집에는 나를 기다리는 손님이 와있었다. 바로 새어머니 딸이었다.
“오빠! 안녕하세요?”
정장 차림을 한 그녀는 소복차림을 할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무척 지적 미를 갖고 있는 미인이었다. 그녀 등장에 녀석이 다시 토끼눈으로 날 처다 보았다.
“우리 아버지가 늦게 새장가를 가셔서........ 그 새어머니 딸.”
나는 녀석에게 얼른 그녀를 소개했다. 늦으면 무슨 말이 튀어나올지 몰라서 급히 소개를 한 것이다.
“아! 어서 오세요.”
녀석은 인사를 하면서도 아직 경계는 풀지 않은 모습이다.
“반가워요. 오빠에게 전해드릴 것이 있어서 왔어요.”
그녀가 편지봉투 하나를 가방에서 꺼내 나에게 줬다.
“이게?”
“아! 보상금이 너무 많아서........ 그래도 혼자 쓰는 건 도리가 아니다 싶어서.........”
“왜 이런 걸? 그냥 다 쓰셔도 되는데..........”
“보상금이라니?”
갑자기 녀석이 관심을 보인다.
“응! 아버지 사고로 돌아가셨다고 했잖아? 그때 가해차량 보험회사에서 보상금이 나왔나봐.”
내가 대충 설명했다.
“그게 몇 년 전 이야긴데? 이제 와서?”
녀석이 나와 그녀를 번갈아 보며 물었다.
“제가 유학을 갔었어요. 그래서 좀 늦게 왔어요. 다시 외국으로 떠나게 돼서........ 혹시 오빠 결혼식이 있어도 못 뵈러 올 것 같아서 미리 축의금부터 드리는 거 에요.”
“아! 고마워요.”
녀석이 내 손에서 봉투를 뺏어가며 말했다.
“그럼 전........”
그녀가 가려고 돌아선다.
“들어가서 차라도 한 잔 하시고.”
“아니에요. 얼른 올라가야 해서요. 그럼 오빠! 나중에 뵐게요.”
그녀가 나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아직 동생이라지만 이름도 몰랐다. 그건 예의가 아니다 싶었다.
“아직 동생 이름도 모르는데........”
“제 이름은 정희에요. 신정희. 오빠는 성기정 맞죠?”
“어! 내 이름은 알고 있었네?”
“그날 제게 보험금 양도하실 때 이름 썼잖아요.”
“아! 그래! 동생 이름도 그날 써놓고 몰랐네.”
난 괜히 쑥스러워 손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그럼 전 갈게요.”
정희가 다시 인사를 하고 한 쪽에 세워둔 승용차를 향했다.
“운전 조심하고. 외국에 나가도 건강하고. 혹시 결혼할 남자 생기면 내게 소개도 시켜주고.”
난 정희 뒤를 따라가며 말했다.
“당연하죠. 오빤데 결혼할 남자 생기면 제일 먼저 오빠한테 허락을 받을게요.”
정희가 고개를 돌리며 빙긋 미소를 지었다.
“그래! 우린 남매니까. 잘 가라!”
“네! 그럼.”
정희는 승용차를 타고 사라졌다.
“후아! 다행이다.”
녀석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뭐가?”
“오빠 동생 말이야. 난 그녀를 보는 순간. 여지 언니보다 더 강력한 적이 나타났다. 하고 바싹 긴장했지. 동생이라니깐 다행이지만.........”
“뭔 소리야? 나도 이제 두 번째 보는데......... 정희가 내가 보험금을 준 것이 고마워서 그냥 오빠라 부르는 것뿐이야.”
“쳇! 완전 숙맥이 오빠야. 저런 숙맥이 뭐가 좋다고 여자들이 한 번만 보면 줄줄 매달린단 말이야. 바보야! 아마 저 정희도 오빠와 새엄마 새아버지 관계가 아니었으면 그중 한 여자가 됐을 걸. 눈을 보면 다 알아.”
“무슨 말이야? 뭘 알아?”
“여자는 여자가 더 잘 안다고. 히히........”
녀석이 정희가 준 봉투를 들어 흔들며 집으로 들어갔다.
“배고프다. 네가 끓여주는 김치찌개가 먹고 싶다.”
나는 녀석 뒤를 따라 들어가며 응석을 부렸다.
“알았어! 잠시만 기다려.”
녀석은 정희가 준 봉투를 열어보고 있었다.
“켁.......! 하여간 쥐뿔도 없으면서 배포만 크다니깐. 도대체 얼마나 많은 보상금을 다 동생에게 몰아준 거야?”
녀석이 한심하다는 투로 물었다.
“뭘? 왜 그래?”
“이게 얼만 줄 알아?”
“몰라! 관심도 없어.”
“그래? 그럼 이건 내 돈이다?”
“알았어! 너 가져라.”
“히히........ 오늘 땡잡았네.”
녀석이 봉투를 주머니에 넣고 주방으로 향한다.
“김치찌개에 두부를 많이 넣어. 돼지고기는 먹기 싫다.”
“으이그. 저 투정을 부리면 착한 아이가 못 된다고 그렇게 말해도.”
녀석이 배시시 웃는다. 녀석이 기분이 좋으면 저렇게 농담도 잘하고 배시시 웃는다. 녀석이 기분이 좋으면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녀석이 아프면 나도 아프고. 녀석이 우울하면 나도 우울해진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녀석과 일심동체가 됐다.
녀석이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 어느덧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막 저녁을 먹으려는 순간 지영이가 케이크를 사가지고 왔다.
“어서와! 어디 갔었어?”
내가 지영이를 반기며 물었다.
“아빠 엄마 산소에 갔다가 왔어요. 꼭 드릴 말씀도 있고 해서.........”
“그래? 손에든 케이크는 뭐야?”
“오빠 퇴원 축하해야죠. 호호.........”
지영이가 밝게 웃었다. 저렇게 웃는 모습이 꽤 오랜만이었다. 지영이 마음속의 무거운 짐을 다 털어버린 그런 모습이었다.
“축하는 무슨.........! 며칠이나 누워 있었다고.”
난 당치도 않다는 투로 말했다.
“며칠이라니요? 벌써 7일째구만요.”
“7일? 내가 그렇게 오래 누워있었어? 그럼 오늘이?”
“네! 년 말이잖아요. 오빠 퇴원도 축하할 겸. 가는 해도 잘 가라고 인사를 해야죠. 올해가 아주 뜻 깊은 해잖아요. 지현이랑 오빠가 7년 만에 만났고. 오빠도 7일 만에 깨어났고. 재판도 이겼고. 정말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가네요.”
지영이가 감자기 어른스러운 말을 했다.
“너! 어디 아프니?”
내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녀석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아무 말도 없이 지영이를 바라보는 표정이 덤덤하다.
“여지 언니가 그랬듯 저도 오빠를 그냥 오빠로 삼기로 했어요. 그러니 우리 자매가 된 기념으로 또 축하를 해야죠.”
“친자매? 그거 좋지!”
내가 좋아하는 표정을 보는 지영이는 몹시 서운함이 깃들어 있었다.
지영이 역시 녀석과 나 사이에 끼어들 수 없는 장벽을 실감하고 그냥 동생으로 남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우린 그렇게 나의 퇴원 축하 겸. 지영이와 나의 자매가 된 기념 축하까지 겹들인 저녁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즐거운 시간에 tv연예계 뉴스가 방송됐다.
(유명 여배우 h씨가 결혼 8개월 만에 이혼을 하고 전 남편을 상대로 고소장을 제출 했습니다. h씨에 따르면 남편에 폭력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참 요즘 이혼들 잘해. 처음엔 좋아서 결혼을 하다가 왜 이혼을 하면 서로 원수가 되지.”
난 뉴스를 보며 도통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정말 이혼을 하면 서로 저렇게 싸울까?”
녀석도 이해를 할 수 없다는 투다.
가는 해를 보내며 들은 그 뉴스는 나와 녀석의 가슴 속에 깊이 자리를 잡았다.

해가 바뀌고 겨울도 다 지나가는 길목에서 변수가 생기고 있었다.
안 치혁.
나의 시골 친구가 나를 찾아왔다.
녀석이 드디어 시골집을 떠난 것이었다. 늙은 부모님을 동생에게 맡기고. 가출을 한 것인데. 서울이 아닌 나를 찾아온 것이다.
마침 날씨도 풀리면서 일거리가 늘어나던 조경 사업에 일꾼이 모자라던 나는 친구가 반가웠다. 치혁은 우리 집 방 하나에 거주하며 일을 하기 시작했는데.......
녀석이 치혁을 보는 시선이 이상하다. 완전히 푹 꽂힌 표정이다. 녀석을 챙겨주는 것 하며. 늘 같이 다니려고 하는 것 또한. 완전히 치혁에게 녀석이 넘어가 버렸다.
그렇게 동생으로 남기고 싶어 하던 나는 이상하게 녀석이 치혁에게 잘해주는 것이 눈에 거슬렸다. 질투가 생기기 시작했다. 녀석 말대로 가장 강력한 적이 출현했다. 라고 해야 하나?
곱상한 얼굴의 치혁은 마음도 무척 착했다. 그 자상한 마음씨가 녀석을 완전히 사로잡은 것이었다.
그 시기에 여지에게서 소식이 왔다.
약혼식을 올린다는 것이었다. 아버지도 안 계시고 홀로 사는 어머니가 딸의 결혼을 서두르면서 같은 검사 청년과 선을 본 모양이다.
나는 여지 약혼식에 초대를 받고 서울로 향했다.
“내가 오빠랑 같이 갔다 올게?”
“응! 갔다 와!”
지영이가 녀석에게 허락을 받고 내 차에 올라탔다.
정말 녀석은 나를 향하던 마음을. 치혁에게로 돌아선 것인가. 지영이가 나와 동행을 한다 해도 별로 신경 쓰는 눈치가 아니었다.
나는 지영이와 함께 승용차를 타고 여주 쪽으로 차를 몰기 시작했다. 고속도로를 이용하려는 생각이다.
“오빠! 서운하시죠?”
지영이가 운전을 하는 내 옆에 앉아 나에게 물엇다.
“뭐가?”
“지현이 말이에요. 그 오빠 친구 분을 너무 좋아해서요.”
“아! 그 얘기야? 좀 서운한 감이 없진 않지만......... 녀석이 지금이라도 나를 친오빠로 여기고 그 친구를 사랑하게 된다면 다행 아닐까?”
“정말 그렇게 생각 하세요?”
“그럼! 나는 아직도 녀석을 내 친동생으로 생각하는 것이 좋다. 왠 줄 알아?”
“지현이를 여자로 사랑하지는 않아서?”
“아니야! 나 역시 녀석을 누구보다 사랑해. 동생이 아닌 여자로........녀석이 내 옆에 없으면 난 정말 살 수 없어. 그래서 녀석과 결혼을 못 하는 거야.”
“그건 또 무슨 말씀이세요?”
“요즘 툭하면 이혼 하더라. 처음엔 부부가 서로 사랑해서 결혼 하는데. 이게 그냥 친구나. 자매 같으면 싸우지 않아도 될 문제로 꼭 싸우고 헤어지더라고. 나도 녀석과 결혼을 하면 그렇게 될까 그게 두려워.”
“그런 말이 어디 있어요? 사랑하면 결혼해서 싸우지 말고 죽을 때까지 사랑하면서 살면 되죠. 오빤 너무 나쁜 쪽으로 생각하시는 것 아니에요?”
“아니! 결혼을 했다가 헤어지면.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더라고 모두 보면 다 그래. 난 녀석과 평생 헤어지지 말고 살아야 하거든. 왜냐하면. 녀석과 헤어지면 난 정말 죽을 거야.”
“오빠를 전 이해 못하겠어요. 결혼하면 서로 사랑하며 재미있게 살 수 있는데. 연예인들은 아마 과거문제나 성격차이가 심해서 그렇지 않을까요? 저는 이해가 안가요. 처음부터 결혼을 하지 말던가. 사랑한다고 말을 하지 말던가. 그래야죠. 결혼해서 싸우고 헤어질 것을 사랑해서 결혼 했다고 할 수는 없죠. 이해타산을 생각한 결혼이면 모를까.”
“이해타산?”
“네! 연예인들은 서로 어떤 인기문제로. 또는 돈 문제로 엮어지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사람들이 꼭 싸우고 헤어질 거 에요. 그러니 오빤 지현이랑 그런 걱정은 하지 마세요.”
“요즘 녀석도 그래서 내 친구를 좋아하는 것은 아닐까?”
“아마도요. 제가 본 오빠와 지현이는 생각하는 것부터가 똑같아요. 오빠가 그런 생각을 했다면 지현이도 그런 생각을 했을 거 에요.”
“그래! 그래서 아마 내 친구를 좋아하려고 애쓰는 것 같기도 해.”
“지현이가 그 오빠 친구 분이랑 결혼을 한다 하면요?”
“응?”
“오빠는 저와 결혼하실 수 있어요?”
지영이 얼굴이 붉게 변한다.
“너와?”
“네! 저하고요.”
“음........!”
난 한 동안 대답을 못했다.
“저하고도 싫죠?”
“아니야! 난 처음부터 여지도 여자로 보이지 않았고. 녀석도 그랬는데........ 넌 여자로 보였거든. 괜히 가슴이 쿵쿵 뛰고 네 얼굴을 바로 처다 볼 수 없을 정도로........”
내 말은 진심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내 마음 깊은 곳에 지영이는 여자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정말이세요?”
지영이가 무척 반기는 표정이다.
“그래! 진심이야.”
“그럼! 이렇게 해요.”
“어떻게?”
“지현이는 그 친구 분이랑 결혼하게 두고요. 오빤 저와........”
지영이가 마치 홍당무처럼 얼굴이 붉어졌다. 지영이 말을 듣고 있는 나 역시 자꾸만 가슴이 쿵쿵 뛰었다.
“그래!”
난 나도 모르게 대답을 하고 말았다.
차가 신호대기를 위해 멈춘 순간 지영이 입술이 내 입술위로 포개졌다. 잠깐이지만 지영이와의 키스는 무척 달콤했다.

서울로 올라와 여지의 화려한 약혼식을 지켜보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고속도로를 타지 않고 한강을 따라 양평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오가는 차가 뜸한 도로변에 차를 세우고. 두 번째 지영이와 키스를 했다. 이번 키스는 무척 길게 이어졌다.
그리고 그 길로. 양평 입구에 있는 모텔로 들어가고 말았다.
지영이는 기회를 놓치기 싫은 듯 적극적으로 모든 것을 내게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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