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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영의 아카시아꽃피면 제7회 강시만드는공장
유리넷  2015-11-08 11:10:31, 조회 : 104, 추천 : 11

김 범 영 문학소설

                        아카시아 꽃피면.


               제7회  강시 만드는 공장

여름으로 가는 길목의 6월 날씨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좋은 온도를 제공해주고 있었다.
긴팔을 입어도 무난하고. 반팔을 입어도 되고. 아침저녁으로 기온차이가 심하지 않아 감기 걸릴 염려도 없고. 비가 자주 오지 않아 화창한 날이 많은 6월이다.
용문산 높은 봉우리 위에 하얀 한 조각구름이 걸려있을 뿐. 하늘은 맑고 깨끗했다.
여지는 승용차를 갖고 나를 데리러 왔다. 서울에서 홍천가지 새로 만들어진 도로에 양평에서 서울 방향으로 휴게소가 하나 있었다. 여지는 그 휴게소 화단가에서 나를 기다리고 서 있었는데. 여지 뒤로 그 하얀 조각구름이 걸려있는 용문산 봉우리가 조금 보이고 있었다.
그 모습은 아름다운 배경으로 서 있는 여지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여지는 엷은 분홍색 원피스에 블랙 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배경에 아주 잘 어울렸다.
“걸어왔어요?”
여지가 나를 발견하고 물었다. 내가 걸어오는 것을 보고 택시라도 타고 오지 왜 걸어오느냐 하는 핀잔이다.
“내 차는 주차장에 넣고 오느라고.”
“차를 끌고 오셨어요? 가까운데 그냥 택시를 타고 오시지. 주차료가 많이 나올 텐데?”
“얼른 유가족들 만나보고 오늘은 홍천 현장으로 가야 하니까. 올 땐. 여기까지만 여지가 태워다 주면 되잖아. 집까지 가려면 여지 힘들까봐.”
“알았어요! 지금 유가족들 청평에 모여 있어요. 한 사람만 빼고요. 얼른 타세요.”
여지가 좀 서두르고 있었다.
“그래!”
난 여지 승용차 조수석 쪽. 문을 열고 얼른 올라탔다. 여지가 서두르는 것이 급해 보였기 때문이다.
“이번에 신임 검사들 환영 오찬이 있어서요. 거기 가야돼요.”
여지가 내가 묻기도 전에 스스로 말했다.
“아! 그랬구나! 초보 검사가 서울지검에 근무하니까. 사람들이 배경 어쩌고 하는 거야. 사실이 그렇고. 여지도 그런 소리 듣지?”
여지는 서울지검에 근무하게 됐다. 해서 모두들 배경이 좋을 것이라고 했다. 정말 그런 것인지. 나도 무척 궁금했는데. 이번 기회에 그걸 물어보고 싶은 것이다.
“음.......! 음........!”
여지가 갑자기 말을 하려다 만다.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일까. 난 그냥 지켜봤다.
“오빠!”
여지가 그 말을 하기가 그렇게 힘들었나보다. 말을 해놓고 얼굴까지 붉힌다. 같이 시험을 보며 만난 사이므로 선배라 하기도 그렇고. 나이가 많은데 친구도 그렇고. 해서 아직 여지는 나에게 호칭을 사용하지 않았었다. 이번에 오빠라 부르는 것이 처음이다.
“왜?”
나는 여지가 오빠라 불러주는 것이 무척 좋았다.
“오빠도 내가 배경이 좋다고 생각하세요?”
여지는 시동을 걸고 차를 출발시키며 나에게 물었다.
“글쎄......... 남들이 그렇게 말은 하던데. 모르겠네.”
“전 사실 배경이 좋은 것 맞아요. 아빠 배경이죠. 오빠가 공부하신 그 책은 사실 아빠가 공부하시던 책이거든요.”
“여지 아빠도........ 검사? 판사?”
“아빠도 검사였어요. 서울지검에 근무하셨고요. 10년 됐네요. 마약사건을 수사 중이셨는데. 마약거래를 하는 현장을 급습하시다가 도주하는 놈들 차에 치여 그만........”
여지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이고 있었다. 여지도 어려서 아빠를 잃은 불쌍한 아이였다. 난 그런 여지가 이렇게 훌륭하게 성장했다는 사실에 무척 놀라고 있었다.
“아직도 아빠 배경이 제겐 통하나 봐요. 동정이랄까. 보상이랄까. 뭐 그런 거죠.”
“몰랐네! 여지도 그런 아픈 과거가 있을 줄은........ 엄마는?”
“저희 엄마는 여장부세요. 처음부터 아빠는 검사 엄마는 경찰 이렇게 만났거든요. 지금도 엄마는 서울 경찰청에 근무하세요.”
“와! 대단하시다. 부모님이 그렇게 훌륭하시니 여지가 그 부모님 피를 받아서 거침이 없는 여장부가 된 것 아니겠어.”
“저 그렇게 거침이 없이 잘 나가지 못해요. 지금도 얼마나 망설이다가 겨우 오빠 소리를 했는데요. 아직도 망설이는 것이 많다고요.”
여지가 차를 정지하고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신호대기 중이었다. 여지는 운전 습관이 완전 오리지널이다. 신호는 물론이고 차선. 정지선까지도 철저히 지킨다. 해서 간혹 답답할 때도 있지만. 가장 안전하게 운전을 하는 모범운전자다.
“망설이는 게 많다고? 뭔데?”
“있어요. 그런 게.........”
여지가 날 바라보며 입가에 살짝 미소를 띤다.
“그것보다 우선 가면서 이번 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모두 해드릴게요. 제가 어쩌면 청평까지 오빠를 모셔다드리고. 바로 서울로 가야할 지도 모르거든요.”
“엥? 그럼 난 뭘 타고 양평까지 가나?”
“어쩌면 그 빠졌던 유가족 나머지 한 사람이 올지 몰라요. 그럼 그 차를 얻어 타고 가세요. 그분도 양평에 살거든요.”
여지는 지금 지영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지영이를 내가 안다고 여지에게 말해주고 싶어도 말을 해줄 수가 없었다. 그 것을 말해주면. 지현이 이야기부터 모조리 다 이야기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청평까지 가는 동안 그 이야기만 해도 다 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해서 입을 다물고 말았다. 우선 유가족 이야기와 사건에 관한정보를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혹시 그 분이 안 오면 그냥 택시타고 가세요. 제가 만약에 서울로 가야할 일이 생기면요. 그렇지 않으면 제가 다시 모셔다 드리고요.”
“알았어!”
“그럼 사건에 관한 정보부터 알아야겠죠? 한 마디로 유가족 측은 어떤 증거도 없어요. 그 유가족 대표란 사람에게서 돈을 안 받았다는 증거를 제출해야 하는데 그게 있을 리 있겠어요. 아마 반박할 만한 자료가 판사에게 제출되지 않는 한 이번 달 재판이 끝일 거 에요. 바로 결심 들어가고 판결 때리겠죠. 그저 유가족들은 억울하다고 울기만 하고. 마땅한 대책이 없으니 한심하죠. 반면. a보험에선 이번 사건을 제1변호사가 맡았는데. 전임 판사 출신 변호사에요. 도망을 친 유가족 대표로부터 녹취했다는 녹취록 외엔 유가족들이 대표를 위임하며 제출한 인감증명서와 위임장에 날인된 인감도장이 증거물로 이미 제출된 상태고요. 이거에요.”
여지가 서류봉투에서 몇 장의 서류를 꺼내 내게 줬다.
난 여지가 준 서류를 펼쳐 읽어보기 시작했다.
먼저 위임장엔 유가족 대표로 위임을 한다는 내용과 함께. 보험료 수령까지 위임을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무슨 위임장이 이렇게.........? 왜? 보험료를 그 대표란 자가 수령을 할 수 있게 썼어?”
난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대표라 해도 보험료를 그가 수령할 수 없는 것인데. 무슨 위임장에 보험료 수령까지 위임을 했단 말인가.
“위임장을 쓴 것이 아니고 백지에 그냥 도장만 찍어 줬다는 거 에요. 그걸 대표가 마음대로 작성을 한 것이고. 공교롭게도. 5명의 유가족 중 그 대표라는 자만 아내가 죽었고. 나머지 분들은 다 남편이 죽었죠. 해서 잘 모르는 여자들을 상대로 그 대표라는 자가 사기를 친 사건이 아닌가. 생각해요.”
“이건.......!”
난 서류를 살펴보다가 뭔가 발견하고 여지에게 보여줬다.
“이 인감증명서 말이야. 다른 인감증명서엔 용도가 아무것도 기제가 안 됐는데. 이건 돼 있네. 유가족 대표 위임용 이라고.”
“그게 뭐 어째서요? 어차피 모든 인감증명서가 유가족 대표를 위하는데 사용한 것은 맞는데. 용도를 기제 한 것이나 안 한 것이나 뭐가 틀리죠?”
“유가족 대표로 그를 위임하는 데는 동의를 했지만. 보험료를 수령해도 좋다는 데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거든.”
“오빠도 참........ 위임장에 그렇게 쓰여 있어요. 보험료를 수령하는 것 까지 위임한다고. 보셨잖아요?”
“백지에 도장만 찍어 줬다며?”
“네! 그렇죠. 허면.........?”
“시간은 벌 수 있다 이거지. 조금은 반박할 만 한 자료를 준비하면.........”
“그래봐야. 몇 달이죠. 그 후엔? 결국 재산 다 경매처분 들어갈 거 에요.”
“어쩌면 그럴 지도. 막을 수 없을 지도 모르지. 그런 걸 알면서 왜 내게 변론을 해달라고 하는 거야?”
“오빠라면 어떤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예감 때문에.”
여지가 나를 보며 눈을 찡끗 한다.
“글쎄다. 찾아보면 뭐가 보일지 모르겠다.”
“한번 해보세요. 불쌍한 사람도 도울 겸.”
“그래! 어차피 맡기로 했으니 최선을 다해야지. 하하.........”
난 그냥 웃고 말았다. 길이 보이지 않았다. 무슨 방법을 써도 유가족들 재산이 날아가는 것을 막을 수 없을 것 같다. 양평을 떠난 지 꼭 1시간이 걸려서 도착한 청평에서. 어느 주택으로 미지는 날 안내했다. 작은 평수에 2층 주택인데 뭔가 어수선한 느낌이 드는 집이었다.
“여기가 유가족 중 한 사람이 사는 집이에요. 압류당해서 그런지 집안 청소도 안하고 어수선하죠? 들어가요.”
여지가 주택 문 옆에 있는 초인종을 누르며 나에게 말했다. 난 말 없이 지켜만 보고 있었다.
“누구세요?”
초인종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변호사님 모시고 왔습니다.”
여지가 대답했다.
“어서 들어오세요.”
여자 목소리는 무척 반가워하는 것 같았다.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가자 모두 초췌한 몰골로 앉아있는 3명의 아주머니들이 보였다. 아주머니들은 여지를 반기면서도 나는 의외로 무시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내가 너무 젊은 햇병아리 변호사란 이유 때문일 것이다.
“이.......분이?”
아주머니들은 노골적으로 나를 반기지 않는 말투로 여지에게 물었다.
“아주머니들! 누가 요즘 돈도 안 받고 변론을 맡겠어요? 너무 실망하지 마세요. 이 오빠는 아주 유명한 변호사거든요. 사정해서 모시고 왔더니. 태도들이 그게 뭐에요?”
여지가 내 눈치를 살피며 얼른 말했다. 아주머니들 태도에 내가 불쾌하게 생각할까봐 미리 선수를 친 것이다.
“그야.........검사님이야 믿지만.........”
아주머니들은 내가 미덥지 못하다는 표정들이다.
“그럼 돌아가시라 할까요?”
여지가 버럭 화를 낸다. 나 때문이다. 내가 화를 낼까봐 미리 여지가 먼저 화를 낸 것이다.
“여지 급하다며? 먼저 가라! 이분들하고 이야기는 내가 혼자 할게.”
내가 여지 손을 잡고 문 쪽으로 등을 밀며 말했다. 자연히 여지를 감싸 않은 꼴이 됐다. 여지 손에 힘이 잠깐 들어가더니 다시 힘을 뺀다. 내 손에서 팔을 빼려고 하다가 그만 둔 것 같았다. 여지가 고개를 돌려 내 얼굴을 바라본다. 내가 눈을 찡긋해 보였다.
“알았어요! 오빠! 그럼 수고하세요. 전 갈게요. 여기 변호사 오빠랑 이야기들 나눠보세요. 믿고 협조해야 여러분들을 도울 수 있을 거니깐 명심들 하세요.”
여지가 나를 바라보는 눈이 반짝하고 빛났다. 내 뜻을 이해한 것이다. 여지는 다시 아무머니들에게 일침을 놓고 밖으로 나갔다.
“검사님!”
“검사님!”
아주머니들이 우르르 여지를 부르며 밖으로 쫒아 나가려고 한다. 난 문 앞에서 두 팔을 벌려 문을 가로막았다.
“변론은 변호사가 하는 것이지 검사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 자! 다들 앉으시죠. 이제부터 여러분들 재산을 지킬 작전부터 짜야겠습니다.”
내가 문 앞을 막고 있자 아무도 밖으로 나가지는 못하고 여지가 사라지는 것을 아쉬운 듯 바라만 보고 있는 아주머니들이었다.
“지금 작전이라 하셨나요?”
아주머니 하나가 못마땅한 투로 물었다.
“네! 그럼요 작전이 필요하죠. 자 앉으세요.”
난 너스레를 떨며 아주머니들 마음속으로 다가가려고 애썼다.
“법대로 하면 되지 무슨 작전. 법대로 하세요.”
아주머니 하나가 가소롭다는 투로 말을 하며 다른 아주머니들을 둘러본다. 자기 말이 맞지 않느냐고. 묻는 표정이다.
“그럼! 그럼!”
아주머니 둘이 얼른 동조를 하고 나섰다. 제기랄! 이런 아주머니들하고 뭘 해야 하지. 난 무척 난감했다.
바로 그때였다.
“법대로 하면 아줌마들 재산은 다 경매처분 될 텐데? 그렇게 하시려고요?”
지영이가 들어오며 앙칼지게 소리치고 있었다.
“지영아!”
아주머니들이 지영이는 무척 반기는 표정이다.
“거 봐요. 오빠가 왜? 변론을 맡아서 이런 대접을 받아요? 그만 두세요. 오빠랑 관련도 없잖아요.”
지영이 눈에 눈물이 가득하다. 진심으로 내 생각을 해주는 것이다.
“지영이 아는 변호사님이셔?”
아주머니들이 지영이와 나를 번갈아 처다 보며 의아한 표정들을 지었다.
“아! 네! 지영이는.......”
“제가 좋아하는 오빠에요.”
내가 말을 하려고하자 지영이가 얼른 말해버렸다.
“그래.......!”
“지영이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아까 그 검사님이 좋아하는 것 같던데?”
아주머니들이 한마디씩 하며 지영이와 나를 번갈아 처다 보는데 난 얼굴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를 정도로 민망해서 혼났다.
“오빠를 누가 좋아해요?”
지영이가 아주머니들 말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여지가 날 좋아 한다고 말을 한 아주머니를 붙들고 묻는다.
“서울지검에 갔다가 만난 검사님인데. 아주 친절하셔. 그분이 우리 변론을 맡을 변호사님을 소개시켜 주신다고 모이라 해서 여기 모인 거야.”
“헌데? 그 검사가 여자 분이고. 우리 오빠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요?”
“응! 응!”
아주머니는 고개까지 끄떡이며 대답도 잘한다.
“거 봐요! 우리 오빠가 얼마나 유명하면 검사님이 좋아하겠어요? 그래도 믿지 모하신다고요?”
지영이는 오로지 아주머니들을 설득하려는 생각뿐이었다. 여지가 날 좋아하든. 그런 것엔 관심이 없는 듯 보였다.
“알았다! 그만 화내고 앉아라! 변호사님도 앉으시구려.”
아주머니들이 일단 나를 믿어보기로 마음을 바꾼 모양이다. 아주머니들 마음은 이해가 갔다. 여기저기 다 돌아다니며. 억울하다고 하소연해도 누구 한 사람 시원한 대답을 못했는데. 햇병아리 변호사가 뭘 할 수 있겠느냐 하는 생각은 모두 같았을 것이다.
“그래 작전이라는 것이 어떤?”
지영이가 내 옆에 바싹 붙어 앉아 날 바라보며 물었다. 지영이 입김이 내 얼굴에 확확 전해진다. 너무 가까이 앉은 것 같아 내가 좀 옆으로 움직이자 눈치 없게도 지영이는 다시 다가앉는다.
“법을 지켜야 할 변호사가 이런 말을 하면 안 되는데. 지금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직 변론을 해서 이길 수 있는 어떤 증거나. 물품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이라. 이대로 가면 이번 달 또는 다음 달에 재판은 끝나고 여러분들 재산은 경매로 넘어갈 겁니다. 해서 시간을 좀 벌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이웃이나. 친척들 중에 이번에 유가족대표를 위임하면서 백지 위임장에 도장만 찍어주며. 보험회사와 서류나 보상금 문제를 의논만 하라고 위임을 했지. 보상금을 수령해도 좋다는 위임은 안했다는 진술서를 받아오세요. 많으면 많을수록 좋아요. 될 수 있으면 그 증인들이 법정에 불려나가지 않도록. 변호사를 같이 찾아가서. 공증을 받아 오시도록 하세요. 진술서에 공증을 받아오시면 됩니다.”
“그렇게 하면 재판을 이길 수 있나요?”
아주머니 하나가 어떤 희망을 갖고 묻는 표정이다. 참 딱 잘라 말하기 힘든 것인데 어쩔 수가 없었다.
“아닙니다! 그 진술서는 재판을 한 두 달 더 끌고 가려는 것뿐입니다. 그런 진술서는 100장이 있어도 이번 재판을 이길 수는 없어요.”
“그럼 무엇으로 이기려고요?”
아주머니들은 실망하는 눈치들이다
“단 한 가지. 증거나 증인. 또는 진술서가 절대 필요합니다. 그 대표란 사람이 수령한 보상금에서 단 한 푼도 받지 않았다는 증거나 증인의 진술서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아! 그것도 이웃이나. 친척에게 부탁하면?”
“안됩니다. 앞에 말씀드린 진술서들은 재판에 절대적인 영향을 주는 것들이 아니기 때문에 그 진술서가 가짜든 진짜든 크게 관심이 없는 것이지만. 이 경우는 다릅니다. 이건 절대적으로 이번 재판의 승패가 좌우되는 증거와 진술서이기 때문에 반드시 검증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변호사에게서 공증을 받아와도 그 증인은 법정에 서야 될 것이고. 상대 변호사가 빈틈을 찾아 집요하게 파고들면 다 털어놓게 됩니다. 앞서 말씀드린 위임장 문제에 관한 진술서는 재판을 뒤집거나 승소하려는 자료가 아니라 상대가 그 자료에 대한 변론을 하도록 한 달씩 시간을 벌어들이는 것뿐입니다. 그렇게 시간을 벌어 그 사이에 우린 재판을 뒤집어 버릴 결정적인 증거를 찾거나. 상대 보험회사 직원을 증인으로 법정에 세워 우리에게 유리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린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럼! 그 진술서들은 언제까지 받아오면 되나요?”
“이번 재판이 21일로 알고 있습니다. 늦어도 저에게 19일까지 가져다주세요. 그래야 복사도 하고 저도 거기에 맞게 변론 준비를 해야 하니까요.”
“알겠어요.”
아주머니들이 고개를 끄떡인다.

아주머니들과 헤어져 나는 지영이가 끌고 온 트럭을 타고 강촌으로 향했다. 오늘은 강촌과 홍천에 두 군데 작업 현장이 있었다. 녀석이 아침에 홍천으로 가면서 나에게 그리 오라고 했다. 해서 내 차를 양평에 그냥 놔두고 온 것이다.
“오빤데........ 청평 일이 끝나서 지영이랑 강촌으로 갈게.”
난 녀석에게 전화를 하고 지영이를 따라 갔다.
“그 검사는 누구에요?”
어라! 지영이가 아주머니들 앞이라 그냥 지나친 모양이다. 갑자기 두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나에게 묻는다.
“같이 시험 보다가 만난 동생이야.”
난 그냥 대수롭지 않은 관계처럼 대답했다. 녀석 같으면 더 꼬치꼬치 캐묻고 그랬을 것인데 지영이는 그냥 넘어간다. 나에게 관심이 있다고 말했지만 아직 녀석처럼 나와 친밀한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리라.
“강촌엔 오늘 잔디를 심어야하므로 아주머니들을 많이 불렀어요.”
“아주머니들? 아주머니들은 하루 일당이 얼마야?”
“아주머니들은 우리가 지불하는 금액은 5만원씩인데. 용역회사에 소개비 5000원 내고 45000원 받아 가신대요.”
지영이가 운전을 하고 난 조수석에 앉아 강촌으로 가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주로 공사에 대한 이야기다. 거의 강촌에 도착을 했을 때였다.
“참! 나에게 이런 것이 하나 있어요. 재판에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지영이가 품속에서 서류를 하나 꺼내서 나에게 줬다.
“이....... 이건!”
난 지영이가 준 서류를 받아 펼쳐보다가 깜짝 놀랐다. 8개월 전 지영이가 그 유가족 대표라는 사람한테 보낸 내용증명이었다.
“그 사람이 우리 엄마에게 전화로 이상한 말을 해서 제가 안 되겠다 싶어 내용증명을 보냈는데. 다시 돌아왔어요. 그 사람 주소가 바뀐 뒤였거든요. 해서 재판에 도움이 될지 그게 의문이에요.”
“엄마에게? 뭐라 했는데?”
“엄마가 그 사람에게 사건의 가해자가 바뀐 상황이니 이제 그 유가족 대표로 위임해준 위임장과. 인감증명서를 반환하라고 했어요. 그 당시만 해도 엄마는 정신이 멀쩡했어요. 다 그 유가족 대표 그 사람이 사기를 친 사실을 알고 그 충격에 그만.......”
지영이가 엄마 생각을 하면. 목이 메는지 잠시 말을 끊고 손으로 목을 만지며 목을 가다듬었다.
“그 사람이 하는 말이 아줌마도 보상금이 필요 하세요? 그럼 좀 드릴까요? 뭐 그런 내용이더라고요. 뭔가 이상해서 제가 내용증명을 보냈는데........ 되돌아 왔으니 허탕이죠?”
지영이가 보낸 내용증명엔 대충 이런 내용이 들어가 있었다.
(우리가 탈 수 있는 보상금도 아니라던데. 엄마에게 전화로 하신 그 말씀은 뭐죠? 아주머니도 보상금이 필요하세요? 보상금 나눠드릴까요? 하신 말씀 말이에요? 우리 보상금이 나왔나요? 보험회사에선 연락도 없던데? 그리고 가해자가 바뀌면 당연히 우리가 백지로 위임해드린 위임장과 인감을 반환하셔야죠. 이 내용증명을 받는 즉시 위임장과 인감증명서를 반환할 것을 요구합니다.)
지영이가 나에게 준 내용증명은 재판에 결정적인 증거가 되는 것이었다.
“재판에 도움이 될까요?”
“그럼! 그럼! 이젠 됐다.”
“그 사람한테 전달도 못한 내용증명인데요?”
“그건 상관없어. 8개월 전 즉 그자가 돈을 타먹고 막 사라지던 시기에 네가 이 편지를 우체국 도장을 받아 놨다는 것이 중요하지. 국가가 인정하는 기관의 도장이니. 이건 완벽한 증거자료가 되는 것이다. 당시 네가 쓴 이 편지 내용이 사실이든 가짜든. 그건 상대 변호사가 밝혀야 할 문제지만. 이런 경우 그 사실을 밝히기 힘들거든. 해서 이번 재판은 이길 수 있을 것 같다. 상대편 보험회사 당시 담당직원을 증인으로 내세우면 심문을 해서 얻어낼 것은 얻어내고 마지막에 이 증거물을 제출해야 하니까. 이게 있다는 것은 너와 나만의 비밀이다. 상대편에 이 사실이 들어가면 미리 어떤 방비를 할지 모르니 철저한 보안 또한 필요해. 알겠지?”
“정말이에요? 와! 그게 그렇게 중요한 편지인줄 몰랐어요. 알았어요. 비밀. 쉿........!”
지영이가 손가락으로 자기 입을 가리는 시늉을 했다.
“아마도 보험회사에서는 직원을 증인으로 내세우지 않고 바로 재판을 끝내려고 할 것이다. 허니 이번 재판엔 아줌마들이 준비해오는 공증 받은 진술서들만 제출해도 재판은 끝나지 않아. 결국 다음 재판으로 넘어가지. 그럼 다음엔 저들도 보험회사 직원을 증인으로 내세울 것이다. 우리가 제출한 진술서에 대항해서........ 그때 우리에게 유리한 진술을 보험회사 직원에게 받아내는 것이 중요해. 그리고 한방에 케이오 펀치로 이 편지까지 제출하면 아마 저들은 대항을 못하고 재판만 2~3개월 연기하다가 손들고 말 것이다. 이 편지의 진실여부를 저들도 밝힐 수 없을 테니까. 우리 지영이가 저들 편을 들어주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하하........”
난 오랜만에 통쾌하게 웃었다. 이젠 이길 수 있을 자신이 생겼다.
“다행이에요. 정말 그렇다면 얼마나 엄마가 좋아 하실까요.”
지영이는 두 눈 가득 눈물을 담은 눈으로 날 처다 보며 입가엔 미소를 지었다.
“그럼! 지영이 엄마도 무척 좋아 하실 거야. 그러니 오빠가 이번 재판은 꼭 이길게.”
“고마워요. 오빠!”
지영이와 이야기를 하는 동안 트럭은 강촌 현장에 도착을 했다. 오늘은 일꾼들이 많았다. 아주머니들도 10여명은 돼 보였고. 남자들도 6명이나 있었다. 녀석이 없는 현장에선 당연히 지영이가 책임자 역할을 한다. 시계를 보니 벌써 12시가 다돼간다.
“자! 모두 식사들 하러 가세요.”
지연이가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큰 소리로 사람들에게 식사시간이 됐다는 것을 알렸다.  점심은 가까운 거리에 정식집이 있어서 그 곳에서 먹는다.
“잔디만 다 깔면 이곳 작업도 다 끝나요.”
지영이가 마치 무거운 짐을 지고 목적지에 다 와서 내려놓는 홀가분한 표정이다.

“오빠! 오빠가 좀 도와줘야겠어. 오빠 혼자 얼른 좀 와!”
점심시간이 끝나기도 전에. 마귀할멈 녀석이 전화를 해서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나 없는 7년 동안도 혼자 잘 해놓고. 내가 도와줘야 한다고 호들갑을 떠는 이유는 오직 내가 지영이 같이 있는 꼴을 못 보겠다는 심보가 깔려있는 것 같았다.
“알았다! 양평까지 택시로 가서 내 차 끌고 갈게.”
난 녀석의 부탁을 절대 거절 못한다. 녀석이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이상한 병에 걸렸기 때문이다.
“수고해! 난 지현이한테 가야겠어. 급한 일이 있나봐.”
나는 전화를 끊고. 지영이와 헤어져 급히 택시를 타고 양평으로 향했다.
그 후........ 녀석은 내 곁에서 한 번도 떨어지지 않았다. 매일 붙어 다녔다. 녀석과 그런 식으로 작업을 나가며. 며칠이 흘러 유가족들의 재산 가압류 사건 변론기일이 됐다. 나는 유가족들이 공증을 받아다 준 진술서들을 제출했고. 재판은 다시 1달 후에 속개하기로 시간을 벌게 됐다. 한 달 후. 내 생각대로 상대 보험회사 측에선 당시 담당 직원을 증인으로 내세웠다. 내가 바라던 바였다.
나는 처음이지만 꼼꼼히 적고 생각한 그대로 증인 심문을 하기 시작했다.
“보험금을 유가족 대표에게 왜 지급을 하셨나요? 아무리 대표라 하지만 보험금은 개인이 직접 수령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잘못 지급한 것은 인정 합니까?”
당연히 재판의 승패와는 무관한 질문이었다. 상대편 변호사 입가에 비웃음이 번지고 있었다.
증인으로 나온 직원 역시 당당하게 잘 못 지급된 것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건 왕초보 변호사의 치밀한 계획이란 것을 그들은 모르고 방심을 했던 것이다. 이리 저리 쓸모없는 질문만 하던 나는 드디어 칼을 뽑아들었다.
“보험금을 지급하기 전이나 지급한 후에라도 유가족들과 대화를 하신 사실이 있나요?”
내가 지나가는 말투로 물었다.
“아닙니다.”
증인에 대답은 내가 바라던 대답이었다. 상대편 변호사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이 보였다.
“그럼! 비정상적으로 보험금을 대표에게 지급하면서 유가족들과 전화 연락도 한 번 없었다. 이겁니까? 지급한 후에도 아무런 연락도 안하시고요?”
나의 물음에 증인은 대답을 못하고 우물쭈물 하기 시작했다.
“왜? 대답을 못하십니까? 조금 전. 증인은 분명 유가족들과 대화를 한 사실이 없다 했습니다. 맞나요?”
“네! 맞습니다.”
“그럼 보험금을 대표에게 지급하면서 유가족들에게 아무런 연락도 없었고 지급한 후에도 아무런 연락을 하시지 않았지요?”
“네!”
증인이 결국 시인했다.
“잠시만 요. 그 대답 다시 해보세요. 유가족들에게 보험금 지급을 알리지도 알았다는 것이 맞습니까?”
판사가 내 말을 막으며  증인에게 질문을 했다.
“네! 맞습니다.”
증인은 하는 수 없이 시인을 했고 상대 변호사 얼굴은 심각하게 굳어 버렸다.
“방금 증인이 진술을 한 것처럼. 보험회사는 거액의 보험금을 개인이 아닌 유가족 대표에게 지급하면서. 유가족들에게는 단 한차례 연락도 없었습니다. 그래놓고 이제 와서 백지로 받아 간 위임장에 혼자 제멋대로 내용을 작성한 위임장 하나만 보고 그 거액의 보험금을 지급하고. 그자가 사기치고 도주를 하자. 자신들이 사기를 당한 돈을 되찾기 위해. 위임장과 인감증명서를 증거로 가족을 잃고. 그 대표란 사람이 보험회사에서 보험금을 수령한 사실이 있는지 없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유가족들에게 보험금을 돌려달라는 것은 가족을 잃고 슬픔에 잠긴 유가족들을 두 번 죽이는 일입니다. 여기 유가족들이 그 대표라는 사람에게 인감증명서를 반환하라는 내용과. 보험금 수령 사실을 몰랐다는 증거를 제출합니다.”
나는 지영이가 준 내용증명을 제출했다. 복사본을 상대편 변호사에게도 줬다.
“이 편지를 인정 합니까?”
판사가 상대 변호사에게 물었다.
“직인은 인정합니다.”
상대편 변호사는 우체국 직인만 인정을 했다. 결국 그 것은 이 내용증명 자체를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 내용증명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 밝힐 수 없기 때문이다. 내용증명이 사실이 아니다. 라는 지영이 진술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유가족 대표란 사람이 주소를 변경하여 이 편지를 받지 못했으므로. 그가 반박 편지를 쓰질 못했으니. 다른 방법은 전혀 없었다. 오로지 지영이 진술뿐.
결국 왕초보 변호사인 내 생각대로 상대 보험회사는 재판을 2번을 연기했다. 결국 그들로서는 내용증명의 내용을 뒤집을 증거를 찾지 못하고 재판을 포기하고 말았다. 왕초보 변호사가 승리한 이번 사건은 조그만 파랑을 불러왔다.

울긋불긋한 단풍잎 위로 하얀 물감을 뿌리듯. 차츰 온 천지가 하얗게 변하던 날 오후
양평 시내에 있는 갈비 집.
재판에 승리했다고 유가족들이 저녁을 사겠다하였다. 나는 거절을 못하고 녀석과 지영이를 대동하고 갈비 집으로 들어갔다. 이미 갈비 집엔 유가족들이 모여 있었다. 아주머니들은 자식들까지 데리고 나와서 그 숫자가 10여명은 됐다.
짝짝.......
내가 들어서자 모두 일어서서 나에게 박수를 치며 환영했다.
괜히 머쓱해진 나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얼른 화장실로 도망쳤다. 그런 모습이 유가족들 눈엔 무척 재미있었나보다 모두 깔깔 거리고 웃었다.
화장실로 들어간 나는 손을 씻고 세수도 하며 시간을 좀 보내다가 나왔다. 벌써 주문을 했는지 갈비가 노릇노릇 구워져 있었다.
“자! 자! 오늘은 우리를 도와주신 변호사님을 위한 자리니. 우선 변호사님을 위해 건배 합시다!”
유가족 아주머니 한 분이 일어나 잔을 들고 외쳤다.
“자! 건배!”
다른 사람들도 잔을 높이 들었다. 나는 술을 못 마시므로 그냥 오렌지주스를 한 잔 받아 들었다. 술잔에 맥주나 소주가 아닌 오렌지주스를 받아 들고 있는 사람은 녀석과 나 둘 뿐이었다. 지영이도 맥주를 받아 들었다.
“저도 앉아도 될까요?”
건배를 위해 잔을 들고 외치는데 톡 끼어드는 사람이 있었다. 내 등 뒤에서 언제 왔는지 여지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와! 검사님도 오셨군요? 어서 이리 앉으세요.”
아주머니들이 여지를 반기며 내 옆에 자리를 만들어 줬다. 내 오른쪽엔 녀석이 딱 붙어 앉아 있으므로 내 왼쪽에 있던 유가족이 자리를 비키며 여지를 앉게 했던 것이다.
“어서와! 바쁠 텐데? 어떻게 왔어?”
내가 여지를 반가운 표정으로 맞이하며 물었다.
“오빠의 첫 승리 기념 파티인데 내가 빠지면 섭섭하죠.”
여지가 배시시 웃으며 앉았다.
“검사님도 한 잔 받으세요.”
유가족 아주머니가 맥주를 들고 여지에게 권했다.
“전 술은 못해요. 오빠처럼 오렌지 주스나 주세요.”
여지는 원래 나처럼 술을 못했다. 태어나서 아직 한 번도 술을 마셔보지 못했단다. 난 못 마시는 것이 아니라 안 마시는 것이지만.
“제가 따라 드리죠.”
갑자기 녀석이 묘한 미소를 지으며 오렌지주스를 들고 여지에게 한 잔 따라준다.
“고마워! 오빠 하나뿐인 동생 이라고 들었어. 앞으로 잘 지내자?”
여지는 마치 녀석을 동생 대하듯 했다. 내가 슬쩍 이야기는 했어도 녀석과 여지는 오늘 첫 대면이었다.
“네! 오빠에게 이야기 들었어요. 만나서 반가워요. 무엇보다 술을 안 드셔서 맘에 들어요.”
녀석이 여지가 무척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그 이유는 오직 술을 안 먹는다는 그 하나가 녀석에게 많은 호감을 얻은 것이었다.
“고마워! 나도 동생이 맘에 들어. 술을 안 먹어서.”
여지가 녀석을 바라보며 눈을 찡끗했다. 둘은 금방 친해졌다.
“자! 자! 다시 건배합시다.”
여지 등장으로 못했던 건배를 다시 하려고 잔을 치켜들었다.
“잠깐만. 나도 술 안 먹고 오렌지주스 마실래.”
지영이가 맥주잔을 내려놓고 얼른 다른 잔에 오렌지주스를 따라 들고 손을 높이 치켜들었다.
건배........
그렇게 건배를 하고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언니는 왜 술을 안 먹어요?”
녀석이 음식을 먹으며 여지에게 물었다.
“난 태어나서 아직까지 한 번도 술을 마시지 안했어. 내 체질인가 봐. 술 냄새가 싫어서........”
“오! 언니가 나와 같은 부류네. 나도 그래요. 술 냄새. 담배 냄새는 정말 싫어.”
녀석과 여지는 죽이 척척 맞았다. 둘이 속닥거리며 떠드는 모습을 지영이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지영이는 술을 많이 마시지는 않지만 간혹 맥주 몇 잔을 마시는데. 그걸 녀석이 제일 싫어한다.
“변호사님이 술을 안 드시니....... 자 음료수라도 한 잔 받으세요.”
유가족 아주머니들이 돌아가며 내 잔에 음료수를 따라줬다.
즐거운 식사시간이 계속되고 있었는데. 불청객이 찾아왔다.
“안녕하십니까? 성기정 변호사님이죠?”
말끔하게 차려입은 중년 남자였다.
“네! 무슨 일이시죠?”
난 예의상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나며 불청객을 맞이했다.
“아! 전 이런 사람입니다!”
그는 나에게 명함을 한 장 건넸다.
k로펌.
명함에는 그렇게 쓰여 있었다.
“아! 잘못 찾아 오셨군요. 전 변호사 직업을 갖고 싶지 않습니다. 하는 사업이 있어서........ 그럼 안녕히 가십시오.”
난 정중히 거절하며 그가 다른 말을 하지 못하도록. 얼른 돌려보냈다.
“호호........ 오빠가 갑자기 유명해진 것 아니에요?”
여지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깔깔 웃었다.
“유명은 무슨. 노예계약이나 하자고 하는데.........”
난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노예계약? 오빠보고 노예계약을 하자고 해?”
녀석이 말뜻을 이해 못하고 묻는다.
“저 사람을 따라가 계약을 하면 노예처럼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는 것이야.”
여지가 녀석에게 설명을 했다.
“아! 월급은 많이 주나요?”
녀석이 여지에게 물었다.
“왜? 돈을 많이 준다면? 오빠가 변호사 일을 하는 것이 좋아?”
“아뇨! 절대 그런 뜻이 아니에요. 오빤 저하고 같이 사업을 하기로 했어요. 변호사 일은 이번이 끝이라 했어요.”
녀석이 나를 힐끗 보며. 자기 말이 맞지 않느냐고 묻는 표정을 보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오빠에 그 동생이네. 너무 닮았어.”
여지가 나와 녀석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말했다.
“정말? 그렇죠?”
녀석이 반색을 한다. 다른 때 같으면 나와 친동생 어쩌고 하면서 닮았다 하면 몹시 거부반응을 보이던 녀석이 오늘은 왜 여지와 죽이 척척 맞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녀석이 갑자기 내 귀에 입을 대고 작은 소리로 한마디 했다.
“부부는 닮는대.”
으아. 녀석이 아직도 그 생각을 버리지 않았다. 나와 결혼을 한다는 생각을.......

저녁 식사가 끝나고 나는 유가족들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녀석은 무슨 꿍꿍인지. 내 차에 같이 타지 않고 여지 승용차에 올라탔다. 나는 지영이와 둘이 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내 차 뒤쪽에 여지 승용차가 바싹 따라오고 있었다. 여지가 우리 집에서 좀 놀다가 간다는 것이다. 그것 역시 다 녀석이 그렇게 여지를 붙잡은 것이다.
“오빠!”
지영이가 뭔가 한참을 망설이다가 날 불렀다.
“응? 왜?”
“오빠도 저 검사 언니가 좋아요?”
“그럼! 여지는 무척 착해. 내가 방황을 할 때 날 구해준 은인이고.”
“오빠를 구해줬어요? 어떻게요?”
“내가 지현이를 잃고 삶을 포기하면서 방황을 했지. 매일 술만 먹고....... 그 때 여지가 내게 법학 책들을 준 것이지. 난 그것으로 공부를 시작했고. 정신도 차리고. 지현이를 찾기 위해 살려고 노력했어. 그 때 여지가 아니었으면 난 아마도 폐인이 되거나 이미 죽었을 지도 몰라.”
“그럼! 오빠는........ 그 언니랑 결혼하실 거죠?”
지영이가 머뭇거리며 내게 질문을 하고 싶었던 것은 아마 그 말이었을 것이다.
“결혼은 사랑이 있어야 한다고 알고 있는데........ 난 아직 여지를 사랑하거나 그런 감정은 없다.”
난 사실대로 이야기 했다.
“정말이세요? 그 말 정말이죠?”
지영이 표정이 밝아지며 내게 되물었다.
“그래!”
나는 왜 지영이에게 그렇게 말을 했는지 모른다. 어쩌면 내 마음 속에 이미 지영이가 조금씩 자리 잡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양평에서 곡수리는 가까운 거리이기 때문에 금방 집에 도착을 했다. 녀석은 여지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왔는지 차에서 내리는 표정이 무척 밝았다.
집에 도착한 내 앞에 또다시 불청객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엔 미모의 여성이었다.
“안녕하세요? 성기정 변호사님!”
미모의 여성은 나에게 상냥한 말투로 인사를 했다. 나이는 대략 여지와 비슷한 또래 같았다.
“아! 네!”
난 반갑지는 않지만 최대한 예의로 인사를 받았다.
“보람금융에서 왔어요.”
여성은 내게 명함을 내밀며 말했다.
“보람금융? 처음 듣네요. 뭐하는 곳이죠?”
내가 명함을 받아들며 물었다.
“사채업자야.”
옆에서 여지가 불쾌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채업자라니요? 민 검사님! 저희도 엄연한 금융회사라고요.”
여성이 여지를 알아본 모양이다. 애교를 떨며 여지 말에 반박을 하고 있었다.
“아! 그래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난 얼른 여지와 그 여성간의 신경전을 말리며 용건을 물었다.
“네! 이번에 저희도 법률 팀을 만들려고 합니다. 회장님께서 성기정 변호사님을 꼭 한 번 만나고 싶으시다 했습니다. 어떻게 초대에 응하시겠습니까?”
여성은 얼른 내 곁으로 다가와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아닙니다. 회장님 초대에 응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변호사 일을 하지 않을 겁니다. 체질에 맞지 않아서요.”
난 정중히 거절했다.
“뭣하세요? 오빠가 싫다고 하시잖아요.”
여지가 그 여성을 강제로 돌려보내고 있었다. 여성은 마지못해 뒤로 천천히 밀려나다가 그냥 가버렸다.
“누굴 강시로 만들려고 해.”
여지가 그 여성이 떠나간 곳을 바라보며 분이 풀리지 않은 듯 투덜거렸다.
“강시? 그 여자가 있는 곳이 강시를 만드는 곳이야?”
녀석이 여지한테 묻는 말이다. 저럴 때보면 영락없는 철부지 어린애다.
“응!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힘없고 돈 없는 사람들을 괴롭히며 돈이나 받아내는 강시노릇을 하는 곳이지. 강시 만드는 곳 맞아.”
여지가 녀석 물음에 잘도 대답해준다.
“그럼 거기가 강시 만드는 공장이네?”
녀석 물음에 여지도 빙그레 웃고 만다. 참 철부지 같은 면이 녀석에게도 있다.
“하하......... 그래! 네 말이 맞다! 돈이 없어 사채를 쓰고 갚지 못하는 사람들에게서 돈을 받아내기 위해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한 번 들어가면 나쁜 짓을 하게 만드는 곳이니 강시도 맞고 강시공장도 맞다. 하하.........”
나는 그만 웃고 말았다.
과거에는 사채를 쓰고 단 한 시간이라도 이자가 늦어지면 전화를 해서 온갖 욕이나 협박을 하며 나중에는 깡패까지 동원해서 돈을 받아내는 수법을 썼다면. 이젠 사채업자도 불법행위를 하다가 적발되는 경우가 많으니. 불법적인 행위를 해도 적발이 안 되고. 법적으로 빠져나갈 구멍을 찾아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바로 그들의 변호사다. 한 번 들어가면 빠져나오기 힘든 것은 그들의 폭력 때문이다. 폭력의 힘에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강시 같은 변호사가 그들은 필요하기 때문이다. 결국은 법을 알고 그 법을 이용해 같은 폭력배가 되는 것이다. 어려운 사람을 꼭 도와야하는 것이 변호사는 아니다. 단지 변호사라면 어렵고 불쌍한 사람 등쳐먹는데 힘을 보태주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자! 들어가자!”
난 여지 등을 손바닥으로 톡톡 치며 집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차나 한잔 마시고 갈게요.”
여지는 집에 들어가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바쁜 것이다.
여지가 내가 사는 집을 처음 구경 온 것이다. 일찍 서울로 가야하는데. 녀석이 무슨 말로 여지를 꼬여 이곳까지 데리고 왔는지 모르겠다.
“바쁘지? 언제 서울까지 올라가나?”
내가 걱정스런 눈으로 여지를 바라보았다.
“오빠가 데려다 주고 와.”
녀석이 톡 끼어든다.
“아니야! 그럼 올 땐 또 오빠 혼자서 와야 하잖아. 나 혼자 갈게.”
여지가 나를 생각하는 마음은 녀석과 다르다. 처음부터 그랬다. 여지는 뭐든 나에겐 헌신적이다. 그 것은 여지가 그 만큼 착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시 언니가 오빠를 많이 사랑하는구나.”
녀석이 갑자기 여지에게 반말을 한다. 같이 차타고 오면서 그런 사이가 된 모양이다.
“응!”
여지가 부정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여지 얼굴이 붉게 변했다.
“언니 그럼! 그날 꼭 와야 해?”
녀석이 여지에게 나도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했다. 그날이라니 무슨 날을 의미할까.
“그럼!”
여지는 얼른 대답했다.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미리 이야기가 오고 간 모양 같았다.
지연이가 인동초 꽃잎차를 가지고 왔다. 지영이가 여름에 뜯어서 말린 것이다. 그 향기가 무척 좋다. 몸에도 좋다니 인동초 꽃차는 그야말로 차중에 최고였다.

인동초 꽃차.
온 몸에 나른함을 없애주고.
게으름도 지루함도 사라지는
코끝이 개운한 천상의 향기
한 모금이면 하루가 즐겁고.
두 모금이면 잔병이 사라진다.
천근만근 무겁던 몸도 가볍고.
어둡던 두 눈이 밝아지네.
한 잔 다 마시니 몸에 봄이 오네.

“햐! 향기가 좋네요? 무슨 차에요?”
여지가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감탄을 했다.
“인동초 꽃차에요”
여지는 나에게 물었지만. 지영이가 얼른 대답했다.
“아! 인동초! 책에서만 봤지 직접 마셔보긴 첨이네요.”
여지가 다시 차를 한 모금 마셔보며 연신 감탄을 했다.
“좀 싸줄까?”
녀석이 여지에게 물었다. 여지는 아직 대답도 안했는데 녀석은 이미 일어나 인동초 꽃을 비닐봉투에 담고 있었다.
“고마워!”
여지가 녀석이 인동초 꽃차를 봉지에 담는 것을 보며 말했다.]
“고맙긴......... 우리 사이에. 히히.........”
녀석이 갑자기 이상해졌다. 여지를 대하는 태도가 이상하다. 한 번도 못 본 그런 태도였다. 저건 뭐? 무슨 뜻이지? 난 무척 궁금했다. 녀석에 대해서는 다 안다고 자부했는데. 저런 행동은 첨이라서 모르겠다.
나는 알쏭달쏭한 녀석의 행동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려고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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