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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영의 아카시아꽃피면 제5회 지옥의 터널에서
유리넷  2015-11-08 11:08:28, 조회 : 139, 추천 : 16

김 범 영 문학소설

                            아카시아 꽃피면.


                    제5회 지옥의 터널 속에서 잠이나 잔다.

아카시아 꽃이 다 지고. 여름철을 알리는 굵은 소나기가 온 천지를 암흑 속으로 만들며 퍼붓고 있던 날 난 오원 마을을 떠났다.
앞이 보이지 않는 차량 앞 유리창을 윈도우 브러시가 쉴 새 없이 움직이며 빗물을 닦아내고 있었다. 새말에 들어서서 막 고속도로로 진입을 하려는 내 차량 앞에 1톤 트럭 하나가 얌체처럼 끼어들었다.
“헉! 저건........!”
난 그 트럭을 보고 무척 놀랐다. 바로 잊고 있었던  나의 옛 조경 사업. 그 정원조경 간판을 달고 있는 자동차였다.
“오! 저걸 만나다니........ 정말 누가 사업을 하긴 하는 건가? 그래.........! 이젠 녀석의 짐도 정리를 해야 하겠지.........”
난 그 자동차를 따라 가기로 마음먹었다. 7년간 방치를 해놓은 내 옷이며 녀석 짐도 정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앞도 보이지 않는 폭우 속에 누가 운전을 하는지 트럭의 속도는 무척 빨랐다.
앞서가는 자동차들을 요리조리 추월을 하며 달리는 트럭을 쫓아가는 나는 트럭 운전자가 누군지 무척 궁금했다. 비만 안 오면 앞 트럭 백미러를 통해 운전자를 대강은 볼 수 있지만. 지금은 앞 트럭을 그 정도로 바싹 따라붙을 수도 없었다. 너무 위험하기 때문에 안전거리가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내 예상대로 앞에 가는 트럭은 여주 톨게이트로 나가고 있었다.
쉴 새 없이 움직이던 차량 앞 유리창의 윈도우 브러시가 느리게 움직여도 될 만큼 비가 그치기 시작했다.
앞서가던 차량이 여주 시내에 있는 어느 식당 앞에 멈추었다.
“저 식당은.........! 그래! 그 명이 아주머니가 녀석에게서 수수께끼를 듣는 대가로 불고기를 사 주던 식당이군! 녀석이 참 맛있게 먹었는데........”
난 옛일을 생각하며 그 트럭 옆에 차를 세웠다.
트럭에서 내린 운전자는 놀랍게도 여자였다. 이제 갓 20세가 되었을까. 훤칠한 키에 날씬한 몸매였으나 검은 선글라스를 끼어 얼굴은 잘 알아볼 수 없었다.
조수석에서 남자가 하나 내렸는데. 40대 초반으로 보였다. 남자가 먼저 내려 얼른 우산을 받쳐주고 있었다.
식당에 들어가서 밥을 먹으려는 모양이다. 핸드폰 시계를 보니 벌써 오후 5시 40분이었다. 저녁 시간이다. 나도 배가 고프다는 것을 그때야 알았다.
“그래! 나도 그 불고기 맛을 좀 보자.”
나도 차에서 내려 식당으로 들어갔다.
트럭에서 내린 남녀가 앉은 자리에서 조금 떨어진 창가에 자리를 잡은 나는 불고기를 시켰다. 녀석이 맛있게 먹던 지난 추억을 떠올리며 먹으려는 생각인데. 갑자기 녀석이 보고 싶어 미칠 것 같았다.
“사장님은 왜? 다른 식당도 많은데 꼭 여기 오셔서 식사를 하세요? 그것도 매일 불고기만?”
40대 남자가 그 트럭을 운전하던 여자에게 묻는 말이다. 아마도 저 여자가 사장인 모양이다.
“맛있잖아요. 아저씬 맛이 없어요?”
사장이라는 여자가 농담을 하는 모습이 왜 그 녀석을 꼭 닮았는지........
여자는 밥을 먹으면서도 선글라스는 벗지 않았다. 난 혹시 녀석이 아닐까 확인하고 싶었지만 얼굴을 알 수 없으니 답답했다.
불고기가 나오고 나도 저녁 식사를 시작했다. 불고기 맛은 그 때 녀석이 맛있게 먹던 그 맛 그대로였다. 저녁을 다 먹고 식당을 나온 시간은 오후 6시 20분. 비가 그쳐있었다. 서쪽 하늘엔 구름 사이로 붉은 빛을 뿌리고 수줍은 듯 얼굴을 붉히며 태양이 산마루 너머로 고개를 살짝 숙였다.
붉은 빛을 받으며 긴 그림자를 남긴 여자는 다시 트럭에 올라타고 식당을 떠났다. 난 거리를 유지한 체 계속 그 트럭을 따라갔다.
그 트럭은 빠른 속도로 도로 위를 달려 곡수리 삼거리에 도착했다.
“........!?”
난 그 트럭에서 시선을 떼고 근처를 둘러보다가 깜작 놀랐다. 할머니가 녀석에 팔았다는 그 집은 어디에도 없고. 하얀 2층 집이 들어서 있었다. 상가주택처럼 지었는데. 전에 옆집 아줌마 집까지 사라지고 꽤 넓게 지은 2층 건물이었다. 1층엔 슈퍼마켓 간판이 달려있고. 2층엔 정현조경이란 간판이 걸려있었다.
트럭에서 내린 여자는 슈퍼마켓에 들려 주인과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더니 2층으로 올라갔다.
“내일 봐요!”
“네! 그럼 들어갑니다!”
40대 남자는 트럭을 몰고 다시 어디론가 떠나갔다. 이제 퇴근을 하는 모양이다.
난 차에서 내려 잠시 주위를 둘러보며 머뭇거리다가 용기를 내어 2층 정현조경으로 올라갔다.
똑. 똑.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안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쪽은 문이 두 개 더 있는데 하나는 열려있고 하나는 굳게 닫혀있었다. 열려있는 문으로 들어가 보니 꽤 넓은 사무실이었다. 그 여자는 사무실 가장 안쪽 창가에 앉아서 뭔가 서류 정리를 하고 있었다.
“잠시 앉아서 기다리세요.”
그녀는 나를 바라보지도 않고 서류를 정리하며 말했다. 그녀를 바라보던 난....... 무심코 본 것이 있었다. 명패였다.
정현조경 사장 강 지 현.
난 가슴이 쾅쾅 뛰었다. 나도 모르게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
내가 다가가자 그녀가 나를 바라보다가 그대로 굳어버렸다.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 흐르기 시작했다.
“왜? 왜? 이제 오는 거야?”
녀석이 날 알아봤다. 틀림없는 그 녀석이다. 내가 그렇게 아카시아 꽃이 피면 기다리고 기다리던 나의 천사. 마귀할멈. 바로 그 녀석이었다.
“지현아! 너 살아 있었니? 살아 있었어?”
나도 눈에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오빠!”
녀석이 달려와 내 품으로 안겼다.
“살아있었구나? 살아 있었어. 으흐흑........”
난 녀석을 으스러지도록 안고 울었다.
“내가 오빠를 얼마나 기다렸는데. 으앙....... 왜 이제 오는 거야? 왜? 으앙.........”
녀석이 나를 안고 오열한다.
“난 네가 죽은 줄 알고........ 왜 다들 네가 죽었다 하는지........흑흑.........”
“그 새엄마 손에서 벗어나려고 꾸민 일이란 말이야. 오빤 그래서 내가 만약을 위해. 내 노트북 비밀번호를 가르쳐 줬잖아. 왜? 내 노트북은 열어보지도 않고? 핸드폰은 왜 해지를 시키고? 내 것도 오빠 것도 다 오빠가 해지를 시켰더라?”
녀석이 눈물을 뿌리며 내게 악을 쓰고 있었다.
“노트북은 왜? 그리고 핸드폰은 내가 해지를 시킨 것이 아닌데....... 나도 누가 해지를 시켜서 다른 번호로 새로 가입했는데.”
“노트북에 내가 오빠에게 편지를 남겼었어. 혹시 내가 죽었다 해도. 그 새엄마 손에서 벗어나려고 작전을 쓴 것이니 울지 말고 조금만 기다리라고. 그리고 핸드폰 가계 아가씨가 오빠가 주민등록증까지 주며 해지를 시켰다고 하더라. 물론 그 아가씨. 해지가 안 된 것을 해지됐다고 속이고 새로 가입하게 했던 것으로 밝혀졌지만........”
“뭐? 그런 못된......! 그래서 내가 그 긴 7년간을 너와 헤어지게 했다고? 그 고객 새로 가입시키면 수당 얻어먹으려고? 해지도 안 된 것을 해지됐다고 속이고 새로 가입하게 만들어? 으이그.........”
난 분통이 터졌다.
“그 아가씨 그런 식으로 고객 속이다가 구속됐어. 그 아가씨만 잘못 아니야. 오빤 도대체 내가 노트북 이야기를 했는데. 왜 열어보지 않은 거야? 그리고 7년간 왜 한 번도 이곳에 안 오고? 킁킁.......”
녀석이 갑자기 내 몸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
“이상한 냄새네. 이건 뭐지? 아카시아 향긴가?”
녀석이 나를 안고 있던 팔을 풀고 내 품에서 벗어나며 의아한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네가 병원에 실려 갈 때 팝콘나무 이야기를 했거든. 해서 난 매년 아카시아 꽃이 피면 그 곳에서 널 기다렸어. 지금도 그 곳에서 널 기다리다가 돌아오는 길에 새말에서 네 차를 발견하고 따라온 것이고. 그 노트북 이야기는 정말 까맣게 잊고 있었다. 이젠 생각나지만. 그리고 너 그때. 놈들에게 맞아서 병원가지 전에도 많이 아파했잖아? 제주도에서부터? 그래서 난 정말 네가 죽을 줄 알고........”
“바보! 그건 생리통 때문이잖아! 바보야!”
“엥? 그게 그거였어? 난 그런 줄도 모르고........”
난 드디어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비록 입가에 미소는 띠고 있지만 눈물은 아직 그치지 않고 있었다.
“오빤 옛 모습 그대로네. 조금 나이가 들어 늙긴 했어도.”
녀석도 눈물을 흘리면서도 미소를 지었다.
“넌 길에서 만나면 모르겠다. 많이 컸어. 예뻐지고. 이젠 숙녀 티가 제법 나는데. 하하........”
난 녀석 어깨를 두 손으로 잡고 이리저리 살펴보며 웃었다. 눈엔 눈물이 흐르면서.
“오빠!”
“왜?”
“우리 이젠 정말 헤어지지 말자! 다신 헤어지지 말자 응?”
녀석이 다시 내 품으로 안기면서 말했다.
“그래! 그래! 다시는......... 널 내 눈에서 안보이게 하지 않을 거야. 늘 내 곁에 있게 할 거야. 늘....... 내 곁에만.”
난 녀석을 다시 으스러지도록 안았다. 녀석 키가 어느새 많이 켰다. 내 키를 비슷해지고 있었다.
“정말이지? 영원히 내 곁에 있어야 돼? 영원히?”
녀석이 더욱 내 품에 깊이 안기며 물었다.
“그래! 약속하마. 이 약속 반드시 지킬게. 너도 앞으로 아무 말 없이 내 곁을 떠나지 마라? 너도 약속해. 응?”
“응! 나도 약속할게. 떠나라 해도 절대 안 떠나.”
“녀석! 죽은 줄 알았는데 이렇게 살아있어 줘서 정말 고맙다. 고마워.”
“오빠가 너무 순진해서 그래! 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는데. 사망신고도 안됐고. 병원 의사도 만나보면 되고. 학교에 가도 알 수 있고. 무엇보다도 여기 왔으면 금방 찾았을 텐데. 왜 늦은 거야? 뭘 하느라고?”
녀석은 두 눈에 눈물을 펑펑 쏟으며 억울하다는 투로 말했다.
“오로지 아카시아 꽃이 필 때만 기다렸다. 그리고 아카시아 꽃이 피면 널 기다리러 오원 마을 다리 아래로 갔다. 내 7년은 늘 그랬어. 늘........”
“오빠! 흑흑........”
녀석이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미안하다. 정말 미안해. 내가 좀 더 일찍 여길 왔어야 하는데....... 그 7년간 이곳 생각을 안했어. 내 기억 속에서 까맣게 잊고 있었어. 여길 말이야.”
“도대체 오빤 어디서 뭘 하며 지낸 거야? 밥은 제대로 먹고? 잠은 어디서 자고? 어떻게 먹고 살았어? 응?
“7년간? 그래! 우선 내가 7년간 뭘 했는지 그것부터 이야기 할게. 너도 다 이야기 해줘. 응?”
“알았어! 오빠부터 해봐?”
녀석과 난 어깨를 마주대고 앉아 서로 부둥켜안고 지난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옥과 같았던 그 7년간의 이야기를 난 시작하고 있었다.
“정말 지옥에서 길을 잃고 헤매던 나를 꺼내준 것은 너였다. 이곳을 정리하고 혼자 서울로 올라갔다. 서울엔 아버지가 내게 물려준 유일한 땅이 있었다. 비탈진 산허리에 아카시아 나무가 있는 52평짜리 땅. 아버지의 깨끗하지 못한 돈으로 구입한 땅이기에 나에게 버림받았던 땅. 난 그곳에다가 움막을 짓고 거지처럼 살아가기 시작했다.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고물을 주어 팔아 돈이 생기면 그 돈으로 술이나 먹고 쓰러져 너를 그리워하며 울다 지쳐서 잠들곤 했다. 사람들은 나에게 손가락질을 했고. 먹다 남은 음식을 던져주며 놀리기도 했다. 난 차츰 정신 상태까지. 썩을 대로 썩어 도무지 인간 같지를 않았다.”
내가 이야기를 하는 동안 녀석은 말없이 날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잠든 내 꿈속에 네가 나타났다. 날 보고 울며 책을 몇 권주고 가더라. 책을 받아보니 법학 책이었는데. 잠에서 깨어 난 웃고 말았다. 나 보고 가짜 법대생 노릇 하며 여자를 사귀라고 하는 줄 알고.”
“오빠 맘속에 그런 생각이 있었던 거야.”
녀석이 입을 삐쭉 내밀었다.
“우연일까. 그날 전농동을 리어카를 끌고 돌아다닐 때였다.”
“우리 지하실에 지저분한 것들이 많은데. 모조리 가져가시래요.”
“어느 소녀가 그렇게 말을 하며 날 주택 지하실로 안내를 했다. 내가 지하실에 있는 박스며. 책들을 리어카에 싣다보니 법학 관련 서적이 많이 보이더라. 갑자기 꿈이 생각났지. 그리고 네가 꿈속에서 날 야단치는구나! 하고 생각했지. 해서 나도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그 책들 중 법학 책들을 골라 가지고 움막으로 돌아왔다. 그날은 술도 안 먹었다. 그리고 몸도 깨끗이 씻고. 공부를 시작했지.”
“법학 공부를?”
“그래! 가방끈이 짧아 어디 한자를 읽을 수나 있어야지. 옥편을 하나 사서 일일이 찾아 메모를 하며 읽었지. 매일 고물을 주어 팔아 생계를 유지하며 틈틈이 공부를 했다. 돈을 모아서 아카시아 꽃이 피면 오원 그 다리 아래서 15일 이상을 널 기다리며 공부를 하고. 3년이 지나. 사법고시에 도전을 했다. 무참히 떨어졌지만. 그리고 다시 2년이 지나 난 그동안 모은 돈으로 나의 움막을 걷어내고 그 곳에 아담한 집을 하나 지었다.  집이 완공되고 또 다시 찾아 온 사법고시. 난 벌써 3번째 도전이었다. 결국 또 떨어졌다. 처음보다 나아진 것은 그래도 점수를 제법 받았다는 것이다. 조금은 자신감이 생겼다. 더욱 머리를 싸매고 공부를 했다. 간혹 꿈속에서 네가 나에게 미소를 보이며 나타났다. 난 더욱 자신감을 얻었다. 그리고 드디어 난 합격을 했다. 1차 2차. 모두.”
“와! 오빠! 정말이야? 대단하다. 정말 오빠 최고야!”
녀석이 와락 내 품으로 다시 얼굴을 묻는다. 아마 또 우는 것이리라.
“그러나 거기 까지다. 난 검사가 되고 싶지는 않다. 변호사 역시.”
“엥? 왜?”
녀석이 눈물을 손바닥으로 닦으며 날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봤다.
“정치인들 하수인이나 되는 그런 검사는 난 싫다. 적성에 안 맞아. 내가 가장 경멸하는 자들이 바로 정치인이니까.”
“그럼 변호사라도 돼야지?”
“변호사들을 보면 돈을 쫓아다니는 불나방 같아 보이거든. 검사가 권력을 위해. 돈을 위해. 정치인들 엉덩이나 닦아주는 자들이라면. 변호사들은 돈이라면 죄가 있는 자들도 없는 자로 만들고. 죄 없는 자도 있는 자로 만들려고 노력하는 가장 사기꾼 같아 보이거든. 해서 난 싫다.”
“쳇! 역시 오빤 순수해. 억울한 사람을 도와 누명을 벗겨주는 변호사가 되면 되잖아? 오빠도 억울하게 경찰서에 갇혔었잖아. 다 그 여자가 돈을 먹여서 그렇지만.”
“돈을 먹이다니?”
“우리 그 나뿐 새엄마 말이야. 준태 그 아저씨도 그렇고 경찰도 그렇고. 나 못살게 굴려고 다 돈을 먹였대.”
“저런 나쁜........”
내 입에서 욕이 나오려다 참았다.
“그러니 오빠! 변호사는 그냥 해라! 응? 착한 변호사 하면 되잖아? 나랑 사업 계속하면서. 어렵고. 억울한 사람 나오면 도와주고. 응? 돈은 받지 말고. 그럼 되잖아? 응?”
“사실 난 검사가 되고 싶었어. 바로 날 억울하게 유치장에 가둔 저 돈 벌레 같은 쓰레기 경찰들을 잡아 죽이려고.”
“경찰이라고 다 나쁘진 않아! 그 새엄마 치마폭에서 놀아난 경찰도 목이 날아갔어. 그 새엄마도 2년 간 교도소에 갔다 나왔고.”
“엥? 왜?”
“날 폭행하라고 청부한 사실을 준태 아저씨가 다 털어놨거든. 그래서 새엄마가 교도소 들어가는 바람에 아빠는 이혼을 하고 이모네 집으로 갔어. 아빤 지금 호주에서 살아. 몸도 많이 좋아 지셨더라.”
녀석이 초롱초롱한 눈에 눈물을 가득 머금고 날 바라보는 모습이 예전 귀여운 마귀할멈 그 모습 그대로였다.
“흐흐........”
난 그 모습을 보고 웃었다.
“왜 웃어?”
“네 모습이 이제 좀 보이는 듯해서....... 옛날 그 모습이.”
“히히........ 내가 어딜 가나. 아직도 내 별명은 마귀할멈이고 성박 그대로인데.”
“성박? 명패는 강지현으로 했던데?”
“히히........ 그건 다 이유가 있지.”
녀석이 갑자기 얼굴을 붉힌다.
“이젠 네 이야기를 해봐? 7년간 이야기를?”
“그보다 우선 오빠부터 대답을 해야지. 변호사는 포기 안한다고. 응?”
“알았어! 나도 그냥 명함만 갖고 있지 뭐.”
“응! 그래! 그럼 언젠가 억울하고 불쌍한 사람이 나오면 도울 수 있잖아.”
“그냥 명패뿐이라니깐. 사법고시를 패스했다고 다 같지는 않아. 누군 검사가 되고 누군 못되지. 해서 검사가 못되면 변호사라도 하는데. 그게 비극의 시작이야. 판사. 검사 출신 변호사들은 서로 인맥이 있어서 알아주고 밥벌이도 어렵지 않지만. 검사도 못돼 변호사가 된 햇병아리 변호사를 누가 변론을 맡기겠어. 돈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 외엔. 그러니 밥벌이도 안 되지........ 결국은 그들도 로펌의 노예로 전략하고 말지. 허나 그 케이스는 그나마 나은 편이고. 돈을 쫒아 사기나 치는 인간쓰레기로 전략하는 불쌍한 사람들도 많아. 명패를 들고 있다고 다 변호를 맡기지는 않아. 허니 내가 명패가 있다고 언젠가는....... 하는 기대는 버리는 게 좋을 거야. 난 돈을 쫒아 불쌍한 사람들 사기나 쳐서 등골 빨아먹지는 않을 테니까.”
“알았어! 역시 내가 사람을 볼 줄 안다니까. 오빤. 내가 본 사람들 중 최고야.”
녀석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비행기 그만 태우고 이제 네 이야기 한 번 해봐?”
“알았어! 음....... 그러니깐. 병원에서 오빠가 나가고 난 바로 정신을 차렸어. 나를 진찰하던 의사가 다른 의사와 교대를 했는데. 우리가 조경을 해줬던 고객이더라고. 나를 알아보고 의사가 놀라는데. 정문에서 급히 들어오는 그 여자가 보이는 거야.”
“새엄마?”
“응! 해서 급히 난 의사에게 부탁을 했지. 저 여자가 오면 내가 죽었다고 하라고. 그 의사 눈치가 빨라서 정말 그렇게 해줬어. 헌데....... 난 정말 다시 정신을 잃었지 뭐야. 나중에 깨어나 보니 병실이더라. 의사 말이 머리를 다쳐서 뇌진탕 증세도 좀 있고. 갈비뼈도 두 개나 나갔다 하더라. 놈들이 발로 막 찼거든. 가슴은 멍투성이였는데. 일주일은 꼼작도 못하고 병원 신세를 졌어. 병원에서 의사에게 오빠가 경찰에 연행되었단 이야기도 들었지. 일주일이 지나 겨우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오빠도 안 오고. 무슨 일인가 궁금해서 의사 전화기를 빌려 오빠에게 전화를 했지. 쳇! 그새를 못 참고 해지 시켰냐? 난 황당해서 할 말이 없더라.”
녀석이 토끼눈을 뜨고 날 노려봤다. 장난이지만 옛 모습 그대로 녀석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미안! 정말 그건 내가 멍청했어.”
난 정말 내가 생각해도 바보 같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핸드폰 가계 아가씨한테 속았다는 분함보다 내가 바보였다는 사실에 더욱 속상했다.
“병원에서 꼭 23일 만에 퇴원을 했어. 집으로 와 보니 더욱 황당하더라. 문엔 못을 박아놓고. 짐은 비닐로 싸놓고. 오빤 사라지고. 자동차는 준태 그 아저씨가 가지고 도망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오빠가 떠났다는 연락을 받고 돌아왔어. 그리고 잘못을 뉘우치고 경찰서에 가서 사실대로 진술을 했지. 처음엔 경찰들이 오히려 사건을 묻으려고 했지. 그 돈을 먹은 경찰 때문에........ 리장님들이 도와줘서 사건이 확대되고 결국은 그 여자도 돈을 먹은 경찰도 다 죄를 받았어. 헌데 오빠는 돌아오지 않더라. 아무리 기다려도 안 오더라고. 조그만 내가 뭘 어떡해? 돈벌이도 할 수도 없고. 이모네 집으로 가면서 아빠가 준 돈으로 우선 먹고 살면서 학교도 다니고 그랬는데.........그 돈도 곧 떨어지더라.  쳇! 아무리 기다려도 오빠가 와야지.”
녀석 눈에 또 눈물이 가득 고여 흐른다. 난 얼른 녀석 눈에 눈물을 손으로 닦아 줬다. 난 고개를 들고 녀석을 바라보지 못했다. 너무 미안했다. 내가 바보처럼 이곳을 떠나 7년간이나 오지 않아서. 녀석을 고생시킨 것을 생각하니 너무 미안했다.
“다행히 민혁 오빠는 연락이 되더라. 해서 오빠를 불렀지. 그리고 다시 조경 사업을 시작했어. 학교는 그만두고. 우선 먹고 살아야 하잖아. 돈을 벌기위해 민혁 오빠랑 같이 뛰었지. 그리고 차츰 사람을 늘렸어. 민혁 오빠는 그해 여름까지만 날 도와주고 서울로 갔고. 같이 학교 다니던 남자애들이 방학엔 아르바이트를 하며 날 도와주고. 인력공사 다니던 아저씨들과 함께 정현조경 사업을 계속했지. 돈이 많이 모이더라. 도 모으는 재미로 일은 계속 했는데. 오빠가 오질 않는 거야. 너무 보고 싶어서 매일 우는데. 옆집 장씨 아저씨가 제안을 했어. 우리지과 그 아저씨네 집까지 헐고. 같이 이곳에 2층 건물을 지어 같이 살자는 거야.해서 난 그동안 모은 돈으로 그렇게 하기로 했지. 1층은 장씨 아저씨가 쓰고 난 2층을 쓰기로 했어. 땅도 공동으로 2분에 1씩 지분을 갖고. 집도 1층은 장씨 아저씨 소유로 하고. 2층은 내 소유로 했어. 건축비도 공동 부담하고. 그래서 장씨 아저씨는 슈퍼마켓을 하는데 꽤 짭짤해. 대신 여기 사무실 전화를 내가 출장 갈 때는 슈퍼로 돌려놔서 아저씨가 받아줘.”
“아! 그럼 오늘 내가 전화를 했는데 받은 아저씨가 바로!”
“오빠가 전화를 했었어?”
“응! 전에 판교에서 처음 조경 공사를 맡겼던 그 사장님이 오원에서 날 알아보고 이곳 이야기를 하더라.”
“어! 그 사장님은 그 후 한 번도 못 봤는데. 어떻게 알고?”
“인터넷에서 본 모양이더라. 소문으로 듣기도 하고.”
“아! 홈페이지를 본 모양이구나! 인터넷보고 전국에서 막 연락이 와.”
“그래서? 학교는?”
난 가장 녀석에게 미안한 것이 그것이었다. 녀석이 중학교를 다니다가 말았다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창피하게 중학교 중태를 하면 되겠어? 해서 혼자 공부해서 겨우 고등학교 졸업은 했는데....... 대학은 포기하려고.”
“왜? 이젠 오빠가 있으니까 대학 공부를 해.”
“아냐! 그만 둘래.”
“아니 왜?”
“그 이유는 오빠가 검사나 변호사 되기 싫다는 이유와 비슷해. 세상엔 꼭 간판이 필요한 것은 아니잖아? 내가 대학 졸업을 한 것 하고 지금 하고 뭐가 다를까? 오빤 내가 대학 간판을 달아야 좋아? 지금 난 싫고?”
“아. 아니야! 난 무조건 네가 좋아!”
“그럼 됐어! 난 대학은 포기. 사업으로 성공할 거야. 이젠 오빠도 있으니 난 너무 행복해. 히히........”
녀석이 다시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안긴다.
갑자기 녀석의 몸에서 진한 향기가 내 코를 자극한다. 녀석이 이제 숙녀가 돼서. 숙녀 냄새가 나는 모양이다.
“오빠!”
“응?”
“나 좀........꼭 안아줘! 꼭.”
녀석이 그렇게 말을 하며 내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난 두 팔에 힘을 줘서 녀석을 힘껏 안아줬다.  내 마음은 너무 행복했다. 이미 그 길고 긴 지옥의 터널을 벗어나고 있었다.

“이쪽으로 와!”
녀석이 날 굳게 잠긴 문을 열고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살림을 하는 주거공간이었다. 방이 무려 3개나 됐다. 하나는 녀석이 쓰는 방이었고. 하나는 빈 방이었다.
“여기 오빠 방이야. 들어 와!”
방문을 열고 날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어! 내 물건들........!”
그랬다 그 방은 내 물건이 잘 정돈 되어있고. 침대와 가구들도 들여놔 있었다.
“여기가 오빠 오면 쓰라고 준비를 한 방이야. 맘에 들어?”
“응! 네가 날 기다리며 준비를 해놨구나. 미안해. 늦게 와서.”
“아냐! 정말 미안한 것은 나야. 내가 새엄마 손에서 벗어나려는 생각에 오빠한테 미리 이야기를 안 해서 생긴 일이잖아. 다 내 잘못이야. 그러니 내가 미안해.”
“아냐! 오빠가 여길 빨리 와봤어야 했어. 늦게 와서 정말 미안해.”
“참! 오빠도 집을 지었다 했지? 내일 거기 구경 가자! 오빠가 있던 집을 구경하고 싶어.”
“내일? 바쁘지 않아?”
“응! 3일간 비가온대. 그래서 모두 쉬기로 했어.”
“오! 그래? 그럼 같이 서울 가자! 가서 그 집은 세를 놓고 짐을 챙겨서 내려와야겠다. 응?”
“잘 생각 했어.”
녀석과 난 내방 침대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새엄마란 여자는 지금은 널 괴롭히지 않아?”
“히히......... 이젠 내가 다 컸잖아. 내가 질 것 같아?”
“뭐? 하하........”
“혼자서 조경 사업이다 뭐다 하며 살아가니깐 남자들이 치근덕대는 경우가 많아. 심지어 숨어 있다가 갑자기 덮치는데. 우선 내 안전부터 확보를 해야겠더라고.”
“어! 그랬어? 그래서 어떻게 했어?”
“운동을 시작했지. 태권도. 히히........”
“뭐? 태권도? 그게 무슨 도움이 돼? 그거 호신술로는 별로라던데? 깡이 있어야 한다고. 하더라. 깡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대.”
“쳇! 내가 누구야 마귀할멈이잖아? 깡 하면 나지. 히히........”
“그래서 위험은 없었어?”
“어렸을 땐. 준태 그 아저씨가 오빠와 내게 잘못한 것을 뉘우치고 날 많이 도와줬어. 매일 날 지켜주기도 하고. 내가 커서는 내 스스로 지켰지. 물론 우리 조경 팀에 일하는 분들이 많잖아. 그 분들이 날 많이 지켜주기도 했지. 그래서 대충 견디며 살아왔지. 정말....... 내가 힘들고. 나 스스로 지키기 힘들 때. 오빠 생각이 간절하더라. 오진 않고. 보고는 싶고 어떤 때는 막 욕했다. 빨리 오라고. 악을 쓰며 울기도 하고. 히히........”
녀석 눈가에 반짝 눈물이 고인다. 생각만 해도 울고 싶은 모양이다. 난 녀석 어깨를 포근히 감싸 안았다.
“호주에 계신 이모는 여기 청산하고 호주로 오라고 하셨지만 난 오빠를 기다려야 한다며 여길 떠나지 않았어. 잘했지?”
녀석이 결국 눈물을 흘리며 날 처다 보고 억지 미소를 지으려고 애쓴다.
“응! 잘했어! 네가 호주로 갔다면 난 지옥 같은 긴 터널을 벗어나지 못했을 테니까. 이젠 벗어난 기분이야.”
“나도 오빠를 기다리며 1년 2년 까지는 야속하고 밉고 그랬는데........ 차츰 오빠가 잘못된 선택이라 했을까봐 걱정되더라고.”
“잘못된 선택이라니?”
“나 보고 싶어서 죽을까봐. 히히.........”
“엉! 그래! 그러고 싶은 마음이 어디 한 두 번이었겠어? 허나 아카시아 꽃이 필 때를 기다리는 마음에 버티고 또 버텼다. 올해 안 오면 내년에 오겠지. 또 내년엔 오겠지. 하면서.”
“내가 왜? 그 팝콘나무 이야기를 했지?”
“엥? 그걸 나한테 물어?”
“아마 내가 기절은 했을 때 오빠랑 다리에서 라면 먹던 꿈을 꿨던 것 같아. 그 팝콘나무가 하얗고 아름답게 보였던 것 같아. 맞아 그런 것 같아.”
녀석은 기억을 더듬으며 그렇게 말했다.
“쳇! 뭐야? 그럼 잠꼬대를 듣고 난 7년을 그곳에서 기다렸다는 거야?”
“잠꼬대는 아니지. 히히........”
“아무튼 좋다! 이젠 너무 행복해.”
난 녀석을 으스러지도록 안았다.
“나도 좋아. 너무 행복해.”
녀석도 두 팔로 내 허리를 꼭 안았다.

아침이다.
비가 툭툭 떨어지고 있었다.
마귀할멈이 빗자루로 하얀 물감을 칠하고 지나 간 듯. 하얀 안개가 온 천지에 그림을 그리듯 군데군데 지나간 자국만 남겼다.
난 동네 사람들에게 대충 인사를 하고. 녀석과 함께 내 승용차에 올라탔다.
서울로 가려는 것이다. 내가 그동안 지은 아담한 내 보금자리를 녀석에게 구경시켜 주고 싶었다. 녀석도 호기심 가득한 표정이다.
아침부터 꼬마 녀석 하나가 강으로 이어진 작은 도랑에서 족대로 고기를 잡고 있는 것을 보니 어젯밤에도 비가 많이 온 모양이다.
“많이 잡았니?”
녀석이 차창을 열고 꼬마에게 말을 걸었다.
“어! 사장 누나! 어디가?”
“오빠랑 서울 갔다 올게.”
“응! 그 형이 누나가 찾던 그 사람이야?”
“그래!”
“응! 엄마한테 이야기 들었어. 얼른 갔다가 와! 매운탕 끓여 먹자?”
“그래! 먼저 먹지 마?”
녀석은 차창을 올리고 입가에 미소를 가득 담는다. 그 꼬마와 아주 친한 모양이다.
“누구?”
“누구 같아?”
“엥? 나보고 누구 같으냐고 묻는 걸 보니 나도 아는 사람의 아들이란 이야기네. 누구지?”
“20살에 장가를 간........”
“혹시 그 준태?”
“맞아 준태 아저씨 아들이야. 벌써 10살이지 아마.”
“으으........ 나보다 겨우 3살 많은 사람이 벌써 10살짜리 아들이라니.”
“왜? 부러워?”
“부럽긴........ 너무 지나치다 싶지. 저게 과속스캔들이지 뭐가 과속스캔들이겠어 흐흐..........”
“난 부러운데..........”
녀석이 말끝을 흐린다. 녀석 얼굴을 보니 처녀가 할 말이 아닌 것을 해서 그런지 붉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잉! 너도 부끄러워 할 줄고 알아? 별일이네.”
“쳇! 오빠가 뭘 알아?”
“뭘 모르는데?”
“그냥 운전이나 잘 하셔. 히히.......”
녀석이 배시시 웃는다. 그리고 한 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마치 솜사탕을 흘려 놓은 듯 희뿌연 안개가 하나 둘 흩어지고 있는 고속도로를 나와 녀석을 태운 승용차는 미끄러지듯 달리고 있었다.
“오빠!”
한 동안 말이 없던 녀석이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
“오빠가 숲에 앉아서 책을 읽으면 아가씨들이 또 옆으로 오지 않던가?”
녀석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호기심 있게 날 바라본다. 정말 관심이 있다는 증거다. 저건 그냥 지나가는 질문이 아닌 것이다.
“왔지. 수도 없이 많았어. 처음엔 워낙 거지차림이라서 아무도 곁에 안 왔지만. 내가 목욕도하고 옷도 갈아입고 앉아 책을 볼 때는 많았지. 더군다나. 내 보금자리 주택까지 짓고 있을 땐 무더기로 다가왔지.”
“그럴 줄 알았어! 그래서 어떻게 했어? 다 데리고 잔건 아니지?”
“내가 대규냐? 그걸 다 데리고 자게? 널 그리며 매일 슬픔에 잠겨있는 내 마음은 꼭꼭 닫혀 있었다. 다가오는 여자들을 파리 쫓듯 휘휘 쫓아 버렸지. 그러자 더 호기심을 갖고 몰려들더라. 내가 워낙 잘생겼나봐. 흐흐.........”
난 내가 그렇게 잘난 척 하는 농담을 하면 녀석이 에고 저 왕자 병. 또는 잘난 척 하긴. 하며 핀잔을 줄줄 알았다.
“맞아! 오빤 정말 멋있고. 잘 생겼어.”
녀석이 갑자기 마귀할멈 같지가 않았다. 그리고 그 말도 농담이 아니었다.
“.........!?”
난 녀석이 또 어디 아픈가 하고 한 손으로 녀석 이마를 만져보았다.
“열은 없는데........”
“뭐야? 내가 아파서 헛소리 하는 것으로 보여? 난 정말 세상에서 오빠가 제일 멋있고 좋아! 오빠보다 멋있고 잘생긴 사람은 아직 못 봤어.”
“응? 너무 비행기 태우는 것 아냐?”
“바보! 난 지금 고백하고 있잖아! 오빠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중이야.”
“앙! 나도 널 사랑해. 정말 사랑해!”
“정말이지?”
“그럼! 정말이지!”
“그럼.........! 우리 결혼하자?”
끼이익.
난 급히 자동차를 갓길로 세웠다.
“무슨 이야기야? 뭐? 결혼? 너와 난 오빠와 동생이야. 오누이가 무슨 결혼?”
난 터무니없다는 투로 말했다. 정말 녀석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 몰랐다.
“친오빠도 아니잖아. 그리고 난 이미 성인이라고. 내가 왜? 성지현이 아닌 강지현으로 명패를 만들었는지 알아? 오빠를 사랑하기 때문에 친동생 하기 싫어서 그랬어.”
“난........ 난........ 네 오빠야. 친오빠.”
난 그 말을 하고 다시 차를 몰기 시작했다.
녀석은 또 한동안 말이 없었다.
“정말 오빤. 내가 여자로 보이지 않아?”
녀석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래! 난 네가 숙녀로 자란 것에. 스킨십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여자로 보이기도 했지만. 그건 사람이 할 짓이 아냐. 비록 너와 난. 남남으로 만났지만. 친남매를 하기로 했잖아?”
“응! 그랬지. 그거야 지난 이야기잖아?”
“왜? 7년이란 시간을 넘어 다시 만나니까. 내가 남자로 보여? 오빠로 안보이고? 친오빠로 안 보여?”
“.........!?”
녀석이 잠시 말이 없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표정도 살필 수 없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남녀 간의 오묘한 감정이야 조물주도 마음대로 못하는 것이지만. 우린 그러지 말자! 난 영원히 네 친오빠가 되고 싶어. 넌 내 친동생이 되고 싶지 않아?”
“오빠!”
“왜?”
“혹시.......! 애인 생긴 것 아냐? 이미 여자가 생겼어?”
“아니. 그건 아니지만. 난 네가 남자가 생기면 오빠로서 면접을 보고 싶을 뿐이야. 너도 내가 여자가 생기면 시누이 노릇을 해 줘. 응?”
“오빠가 정말 날 친동생으로 생각하고 있었구나?”
“처음 만날 때부터 그렇게 하기로 했으니까. 13살 어린 널 사귀다가 크면 아내로 삼아야지 하는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어. 너도 그렇잖아?”
“난.......! 난 아니야! 처음부터 오빠와 난 운명적으로 만났다. 하고 생각하며. 내가 크면 꼭 오빠한테 시집가야지 하는 생각뿐이었어. 그래서 얼른 성인이 되기를 손꼽아 기다리며 오빠가 돌아오길 학수고대 했어.”
“음.......! 너? 지금 마귀할멈 심보가 도졌지?”
“그게 무슨 말이야?”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하나 그거 시험하는 거잖아?”
“엥? 그럼 내가 오빠 마음 떠보려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고 있다 이거야?”
“그래! 난. 너도 나와 같이 친자매로 살아가려는 마음이란 걸 알아! 아니야?”
“아니라니깐! 난 처음부터 오빠를 내남편감으로 점찍었단 말이야.”
“임마! 너와 난 나이차이가 얼만지 알아?”
“그까짓 7년차이야 뭐. 다들 그 정도 나이 차이에 결혼을 잘만 하더라.”
“이.......! 정말이야? 너? 결혼 이야기 정말이냐고?”
“그렇다니깐! 나 오빠 사랑한다고. 그럼 됐잖아? 오빠도 날 사랑한다며? 그럼 된 것 아니야? 우리 결혼해서 같이 살자. 응?”
“으........ 이 마귀할멈 녀석이........! 이젠 날 남편으로 만들어 손아귀에 넣고 살겠다. 이거네?”
“히히........ 어떻게 알았지? 들켰네.”
“그래서 넌 끝까지 나와 결혼을 하겠다. 이거냐?”
“당근. 히히........”
“으........ 벗어난 줄 알았더니 아직도 지옥의 터널 속이네. 언제나 벗어나려나........!”
“뭐? 지옥의 터널? 웃겨........ 아무리 그래도........ 길이 있는데 지옥의 터널에서 안 나오는 사람이 뭘 그래? 거기가 좋으니깐 그렇지.”
“오빤. 언제까지라도 네 친오빠로 남으련다.”
“난 꼭 오빠를 내 남편으로 삼을 거다.”
“으으......... 정말이냐?”
“그래! 정말이다! 왜? 누가 이기나 내기 할까?”
녀석이 두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날 바라보는 모습이 전혀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난 지옥의 터널 속에서 잠이나 자련다.”
나 역시 조금도 물러설 마음이 없었다. 녀석은 언제나 내 친동생으로 남아야 한다는 것이 내 마음이었다.
“그럼 나도 그 터널 속으로 들어가면 되지 뭐.”
“으........ 마귀할멈 심보는 사라지지 않았어. 나이를 먹어도 그대로야.”
“히히........ 내가 어딜 가나.”
녀석은 나이를 먹으며 더욱 완벽한 마귀할멈으로 변해있었다.

녀석과 떠드는 사이 승용차는 서울에 도착을 했다.
“와! 여기가 서울이야?”
녀석은 아직 서울 구경을 못한 모양이다.
“넌 아직 서울 첨이니?”
“오빠가 얼른 와서 구경 시켜줬음 되잖아. 누가 데리고 와야지. 나 혼자는 무섭고. 히히........”
“아! 미안! 우리 마귀할멈이 도시를 무서워하는 줄 몰랐네.”
“쳇! 도시를 무서워 하냐? 오빠가 없으니까 혼자 다니는 것이 무섭다는 이야기지. 내가 너무 미인이라서 남자들이 보면 막 달려들어. 그게 무섭다는 거야. 히히.........”
“그래! 우리 지현이가 세상에서 젤 예쁜 것은 맞아. 마귀할멈이라서 그렇지 흐흐.........”
나와 녀석은 이미 심각한 결혼 이야기는 잊은 지 오래다. 다시 장난꾸러기가 돼 있었다.
허나 비록 잠시 잊고 있을 뿐이지 녀석과 나의 긴 싸움은 아직 시작도 안했다.
"오빠!“
“왜?”
“서울 왔으니 서울 구경 좀 시켜줘. 멋진 곳으로 응?”
“지금부터?”
“아니! 오빠 보금자리부터 구경하고.”
“알았다! 그럼 보금자리로 슝~”
난 복잡한 도심 길을 헤집고 나가기 시작했다. 녀석이 오늘 하루만 시간이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내일부터는 아침에 비가 조금 오다가 그칠 것이라는 예보가 있었다. 그렇다면 녀석은 내일부터 다시 바빠질 것이다. 물론 나도 녀석을 도와야하니까 같이 바빠질 것이다. 늦더라도 오늘 서울 구경할 만한 곳은 다 돌아다녀야 한다. 그래야 녀석 서울 구경을 조금은 시켜줄 테니까. 사실 자연미는 없지만. 우리나라에서 구경을 할 만한 곳이 가장 많은 곳 역시 서울이다. 또한 가장 구경을 해보고 싶은 곳 역시 서울이다. 인간은 자연을 사랑하지만. 인간의 업적을 더 사랑한다. 그 것은 인간이 발명하고. 개발하고. 생각하고. 인간 스스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인간은 인간 스스로 만든 건축물과 문명. 그리고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을 가장 큰 기쁨으로 안다. 그리고 그 첫 번째 구경이 싫증이 나면 두 번째로 찾는 것이 자연미다. 일탈을 하고 싶을 때 찾는 것이 자연인 것이다. 허니 당연히 서울에 구경거리가 가장 많은 것이다.
서울에서 일상생활을 탈피하고 싶을 때. 즉 일탈을 원할 때. 사람들은 무리 속에서 벗어나 자연의 품을 찾는다. 그리고 자연의 소중함을 느낀다. 해서 자연을 보호하자. 하고 외치는 것을 아끼지 않는다. 그래야 누군가 자연을 보호할 것이고. 자기 자신이 보호하지 않아도 자연은 보호돼야 하니까. 자신은 그 아름다운 자연을 회손 하더라도. 가장 아름다운 자연 속에 자리를 잡고 싶은 것이 욕망이다. 즉 명당자리에 별장을 짓고. 주택을 짓고 살고 싶은 것이 사람들 욕망이다. 자연이야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지켜줄 것이니까. 난 그저 자연을 사랑하자! 자연을 보호하자! 라고 외치는 대열에 합류만 하면 되니까.
자연과 함께 야생동물도 보호를 해야 한다. 대중들 앞에서 막 외친다. 야생동물을 보호하자! 라고. 그리곤 뒤에서 몸보신을 위해 곰 쓸개즙을 빼내 먹고 노루 뼈를 고아먹고. 뱀의 성기를 잘라 먹는다. 가장 야비하고. 가장 잔인하고. 가장 더러운 동물이 인간이다. 그 것은 단 하나 머리가 좋기 때문이다. 아이큐가 높다는 것 하나 때문에 인간은 그렇게 변했다.
그러고 보면 녀석의 아버지는 가장 착하고. 가장 순수하고. 가장 깨끗한 동물에 속한다. 비록 뇌성마비로 아이큐는 낮지만. 그런 술수를 부릴 줄 모르니까.
내가 녀석을 태우고 막 답십리에 도착을 하고 있을 때 녀석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호주에서 온 국제전화였다.
녀석이 전화를 받더니 날 바꿔줬다. 아마도 날 바꿔달라고 한 모양이다.
“여보세요? 아버지세요? 기정이입니다.”
내가 먼저 말했다.
“응? 나....... 지현이 아빠. 그래! 지현이 잘 돌봐줘서 고마워.”
뇌성마비라더니 말을 또박또박 잘한다.
“아버지! 지현인 제 동생입니다. 제 친동생입니다. 그러니 지현이 아버지도 제 아버지입니다. 절 그냥 아들로 생각해주십시오.”
난 녀석이 결혼 이야기를 못하게 못을 박는 중이었다.
“아니야! 지현인 자넬 남편감으로 생각한다던데........ 난 이들보다 사위가 좋아!”
역시 녀석 아버지는 순진하시다. 녀석이 한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신 것이다. 당연히 처음 대화를 하는 나보다 딸을 더 믿는 것은 인지상정. 더군다나 아직 한 번도 만나본적 없는 나 아닌가.
“아! 그러세요? 그 문제는 지현이랑 상의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아무튼 지현이 잘 부탁하네.”
“네! 염려하지 마십시오.”
내가 거기까지 말을 했을 대 녀석이 핸드폰을 얼른 뺏어갔다.
“아빠! 아들은 절대 안 된다고 해? 사위가 좋지? 응?”
녀석이 다시 자기 아빠에게 아양을 떨며 세뇌를 시키는 중이다. 순진한 녀석 아빠는 이제 그 말을 끝까지 그대로 믿고 나에게 고스란히 전할 것이다. 어찌 보면 녀석은 앞에서 나열한 인간들 분류에 들어가는 정말 마귀할멈일지 모른다. 아빠를 이용하는 못된 수를 들고 나왔으니까. 그렇다 해도 난 녀석이 좋다. 내 옆에 있는 것 하나 만으로도 난 행복하니까.
어쩌면........ 녀석은 정말 아주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어. 아빠에게 도움을 청한 것인지도 모른다. 정말 그럴 지도......... 그럼 녀석은 마귀할멈이 아니라 나의천사.
녀석의 긴 통화가 끝나서야 녀석은 나의보금자리를 발견했다. 아빠와의 통화도 녀석의 얼굴은  눈물범벅이다. 어린 녀석이 나를 만나. 아빠와도 떨어져 살며 오로지 날 기다렸는데. 난 녀석을 마귀할멈이라 했다. 이게 아닌데........ 갑자기 내 마음은 무너져 내렸다. 슬그머니 다가가서 녀석을 말없이 꼭 안아줬다.
녀석도 내 보금자리를 구경하다가 갑자기 내가 녀석의 몸을 돌려 두 팔로 안자. 가만히 내 품에 몸을 맡겼다. 두 팔을 늘어뜨린 체. 녀석은 온 몸을 내게 맡기고 있었다.
녀석의 몸은 살며시 떨리고 있었다.
난 다시 정신을 수습했다. 너무 안아주는 것이 길면. 녀석이 오해를 할 소지가 있다. 적당히 무너지는 마음을 수습하고 녀석을 안았던 팔을 풀어버렸다. 난 녀석의 오빠로 남아야 했다. 녀석이 착각을 하는 행동은 하면 안됐다. 다 큰 성인이 만났다면 아마 나도 녀석 생각처럼 녀석을 여자로 보고 결혼 생각도 했을 것이다. 허나 내가 녀석을 만난 것은 13살 어린아이였다. 당연히 난 그 애 오빠로 지금까지 살아왔다. 오빠가 동생을 찾듯 그런 마음으로 녀석을 찾았던 7년이었다.
허나 녀석은 그와 반대였다. 나를 결혼상대로 찾고 기다렸던 것이다.
이제 행복하기만 한 시간이 될 줄 알았는데.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친오빠로 살고 싶은 나와. 아내로 살고 싶은 녀석의. 끝을 알 수 없는 게임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햐! 오빠가 손수 지은 집이야?”
녀석은 내 품에서 벗어나며. 다시 순진한 내 동생으로 돌아와 있었다. 아마 어색함을 감추려는 생각 같았다. 속이 깊은 녀석........
이미 아카시아 꽃은 다 지고 푸른 숲을 형성한 아카시아 나무들이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 깊은 숲에 하얀 주택이 아담하게 지어져 있었다. 내 보금자리다. 이미 녀석은 내 대답도 듣지 않고 집으로 달려가 문을 잡아당긴다.
“.........!? 잠겼네?”
녀석은 문이 그냥 열릴 줄 알았나 보다.
“곡수리 정도면 문을 열어놓고 다녀도 되지만 여긴 안 돼! 그래서........”
“아! 그래! 먼저 판대리 휴양시설 그 주인도 그랬다. 불량 청소년들이 담배와 술을 마시며 쓰레기를 버린다고. 그래서 오빠도 문을?”
녀석이 알겠다는 표정이다. 참 녀석도 그러고 보면 순진하다. 저런 순진한 녀석한테 여긴 도둑이 많아 하고 굳이 알려줘야 하겠는가. 난 결국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거릴 수밖에 없었다. 착한 마음씨에 굳이 오물을 끼얹고 싶지 않았다.
난 현관문 열쇠를 꺼내 문을 열었다. 녀석이 얼른 안으로 들어갔다.
“에게! 겨우 방 두 개야? 이거 15평정도 되겠네?”
녀석이 조경 사업이다 뭐다 하며 공사를 하더니 척 보면 안다.
“응! 딱 15평짜리.”
“방도 작고....... 이 방은 오빠가 쓰던 방 같고. 지저분한 것이........ 헌데 이 방은 뭐야? 여자가 있었어?”
녀석이 방문 하나를 열고 날 바라보는 눈이 매섭다.
“응! 나 애인 있어.”
“히히........ 이거 날 기다리며 내가 돌아오면 쓰게 하려고 꾸민 방이구나. 오빠가 애인이 있으면 응! 있어 하고 얼른 대답 하겠어? 누굴 속이려고 해? 내가 누군데. 마귀할멈이잖아?”
녀석은 속지도 않는다. 틈틈이 가구와 생활필수품들을 구입해서 녀석이 돌아오면 불편하지 않게 꾸며둔 방이다. 비록 작지만 내 정성이 가득한 방이다.
“오빠도 날 많이 기다렸구나? 방도 이렇게 꾸며 놓으면서? 엥! 이거 어린애가 쓰는 생리용품이잖아! 이걸 날 주려고? 웃겨........!”
녀석이 방안을 살피다가 생리용품을 들고 웃고 말았다. 너무 작은 사이즈로서 13살 어린애가 쓰면 딱 맞는 크기다. 내 마음속엔 아직 녀석이 13살로 기억되어 있는 걸 어떡하겠는가.
“흠.......! 신혼부부가 살긴 딱 좋은 집이네. 집을 비워두면 흉가처럼 되니까. 세를 놓자. 전세 말고 월세로. 보증금 받고. 알았지?”
녀석 머리 회전은 역시 빠르다.
“알았어! 그렇게 해.”
“그럼 오빤 가서 빈 박스 좀 사와!”
“빈 박스? 왜?”
“으이그........ 왜긴 왜야? 짐 싸야지. 이삿짐 옮겨야 할 것 아냐? 여기서 살래? 나랑 같이 안 살고? 변호사도 안 해. 검사도 싫어. 그럼 나와 같이 조경이나 하러 다녀야지. 안 그래?”
녀석이 지금부터 이삿짐을 포장하려나보다.
“서울구경은 언제 하고?”
“다음에 하지 뭐. 새털같이 많은 날에 급하긴.”
녀석은 얼른 가서 박스나 사오지 뭘 하느냐고 묻는 표정이다. 난 곧바로 근처 슈퍼마켓으로 향했다. 박스를 얻어 오려는 생각이다.

내가 슈퍼에 다녀오는 사이 녀석은 임 짐 정리를 다 하고 날 기다리고 있었다.
“월세로 집을 세놓으려면 짐을 모조리 가져가야해. 깨끗이 치워줘야지. 여기 방 하나 얻으려면 얼마정도 줘야해? 한 달에? 보증금은 얼마고?”
“이 근처엔 방 하나에 보증금 500만에 월 30만 정도야”
“우아! 너무 비싸다. 방 하나에 그 정도야?”
“응! 대부분 서울 중심가는 그래.”
“여기가 중심가야?”
“처음엔 이곳이 변두리였는데........ 서울이 커지다보니 이젠 중심가로 변했어.”
“강남은 어디야?”
“한강 남쪽. 옛날엔 서울 사람들 화장실 치워서 갔다 버리던 곳이지. 미나리 논들과 밭으로 집은 없던 곳이었는데....... 우리나라 갑부들을 양성한 장소이기도 하지.”
“갑부들을 양성하다니? 무슨 뜻이야?”
“그린벨트다 뭐다 하고. 서울 외각을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어 놓는데. 이게 참 웃기는 것이. 대부분 정치하는 자들이 소유주들에게 헐값으로 매입 후. 꼭 그 지역을 그린벨트에서 해제시킨다니까. 그럼 땅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고. 땅을 매입한 권력자들만 갑부로 탄생하지. 강남은 그와는 좀 다르지만. 권력과 연관이 깊은 곳이지. 바로 군사정권 시절 그 군사정권에서 한 권력 하는 자들이 거의 한강 남쪽 땅을 소유하고 있었다 해야 옳은 것이지. 해서 그 한강 남쪽이 신도시 형식으로 개발되면서. 지역적인 편차가 심한 갑부들이 탄생한 곳이 바로 한강 남쪽이다.”
“지역적인 편차? 그 건 경상도 전라도 그런 이야기야?”
“그래! 바로 그런 이야기야.”
“오빠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런 것도 사법고시에 나와?”
“아니. 그 당시 절대 권력을 손에 넣고 있던 사람들이 대부분 어느 한 지역 출신들이거든.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내가 만약에 어느 지역에 땅을 많이 갖고 있다고 하자. 그런 내가 어느 지역에 신도시 개발을 명할 수 있는 위치에 있으면. 너 같으면 다른 사람이 많은 땅을 소유하고 있는 지역을 신도시로 개발 하겠니? 아님 내가 갖고 있는 땅이 있는 곳을 택하겠니?”
“아! 듣고 보니 그렇구나! 그래서 선거다 뭐다 하면 그 쪽은 어느 한 지역만 몰표가 나오는 구나?”
“아니! 그건 경우가 좀 틀려. 돈이 많고 보수 성향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야. 물론 우리나라 정치하는 자들이 다 같이 유도하는 것이 지역감정이기 때문에.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정치인들 농간에 놀아나고. 아직도 일부 무식한 사람들은 지역이기주의 성향이 많은데. 많은 국민들이 지식이 높아지다 보니. 이젠 우리나라도 어느 지역 정당 보다는 사람 됨됨이를 보고 뽑는 지식인들이 많아지고 있거든. 해서 올바른 정치인들을 뽑을 그 날이 멀지는 않았어.”
“오빤 역시 대단해. 사법고시 공부를 하면 그렇게 유식해 지는 거야?”
“엥! 저 마귀할멈이 이제 보니 날 가지고 놀고 있잖아.”
“히히........ 들켰네. 이제부터 짐은 내가 포장 할게. 오빤 가서 부동산에 집 세놓는다고 하고. 테이프이나 몇 개 사와!”
“알았다!”
“아! 집은 방 하나 값만 받아. 500 보증금에. 월 30만원. 알았지?”
“왜? 너무 싸잖아?”
“없는 사람들이 월세를 얻지. 돈 많은 사람들이 월세를 얻겠어? 없는 사람들 돕지는 못할망정. 더 뜯어 먹어야겠어? 그냥 빌려주면 집 꼴이 말이 안 되니 보증금을 필히 받아야하고. 월세도 받아야 하지만 최소한만 받자. 응?”
“녀석! 역시 우리 지현이는 천사야.”
난 녀석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보이고 밖으로 나왔다.
언덕길을 조금 내려오는 곳에. 승용차가 한 대 서있고 누군가 날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
화사한 연한 하늘색 상의에 블랙 치마를 입은 여인이다.
“안녕하세요?”
여인이 선글라스를 벗고 인사를 했다.
“아! 여지 오랜만이네.”
나와 같이 사법고시에 합격을 해서 검사가 된 민 여지였다. 명문대를 나와 한 번에 합격을 한 대단한 여인. 민 여지. 올해 25세로 나보다 2살 어렸다. 들리는 소문엔 대단한 집안 배경을 갖고 있다고 전해졌다. 그런 그녀가 날 찾아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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