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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영의 아카시아 꽃피면 [제2회 흡혈귀들]
유리넷  2015-11-08 11:04:50, 조회 : 125, 추천 : 12

김 범 영 문학소설

                      아카시아 꽃피면.


                     제2장. 흡혈귀들.

“강림이라는 동네에 경대라는 총각이 있었는데. 첫 선을 보러 나간 자리에서 상대 여자가 너무 아름답고 집안도 빵빵해서 자기도 모르게 허풍을 떨었대.”
설거지와 방청소가 끝나고 이브자리를 깔고 나란히 누워 녀석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뭐라고 허풍을 떨었는데?”
“눈에 보이는 것이 면사무소 공무원이라. 자기가 공무원이라고 했지. 사실은 쥐뿔도 없는 늙고 병든 홀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가난한 화전민이었는데.”
“저런!”
“오빠나 그 총각이나 다를 게 없어. 읽을 줄도 모르는 책을 들고 법대생 행세를 한 오빠나. 선을 보러가 만난 여자를 놓치기 싫어 허풍을 떤 총각이나. 오히려 그 총각이 오빠보단 용서가 되네.”
“엥? 잘못했다니깐.”
“알았어! 오빠하고 비교하지 않을게. 그 총각은 위대했거든.”
“뭐? 위대해?”
“응! 자신이 사랑하는 아내에게 거짓말을 한 죄책감에 정말 열심히 공부해서 공무원이 됐거든. 처음엔 결혼까지만 거짓말을 하자. 하고 어떻게든 결혼을 하려고 했는데. 결혼을 하고 나니 거짓말이 탄로 나면 아내가 실망을 할 것이 염려되어. 잠시 발령대기 중이라고 둘러대며 하루하루를 버티다가. 도저히 진실을 털어놓고 잘못을 빌 용기가 나지 않아 머리를 싸매고 공부를 해서 공무원 시험을 보는 길로 방향을 틀었대. 결과는 9급 공무원에 당당히 합격을 했지. 그리고 그 합격증을 들고 아내에게 그동안 거짓말을 한 것을 털어 놓고 용서를 빌었대.”
“그래서 아내가 용서를 했어?”
“아냐!”
“뭐? 그럼 헤어지기라도 했어?”
“아니! 아내도 함께 그 총각에게 용서를 빌었어. 그 아내도 거짓말을 했거든.”
“뭐? 무슨 거짓말을? 아하! 돈 많은 집 딸인 척 했구나? 가난한 집 딸이었어?”
“아니! 그 여자는 결혼이 첨이 아니었대. 한번 결혼에 실패를 한 여자였어. 임신도 했었고. 중절수술인가? 그 것도 했다더라.”
“이런! 그 여자가 더 나쁜 거짓말을 했구나. 해서 어떻게 됐어?”
“괜히 그 총각이 위대하다 했겠어? 그 총각은 오히려 아내의 과거를 포근히 감싸줬다는 후문이야. 지금 새말에 가면 그 총각 이야기가 화젯거리야. 그 총각은 완전 스타가 됐고. 식당이나 슈퍼마켓에서도 그 총각에게 물건을 공짜로 주려고 안달이야.”
“허!”
“오빠도 한 번 그렇게 해봐! 열심히 공부해서 정말 사법고시 한 번 도전해봐?”
“야! 난 겨우 고등학교도 졸업 못했어. 무슨 사법고시? 사법고시가 무슨 어린애 장난으로 보여? 그건 우리나라에서 가장 어려운 시험이야. 옛날 같으면 과거에 급재라도 할 정도 능력이 돼야........”
“이런 사고방식이 우리나라를 발전을 안 시킨다니깐! 말을 꺼낸 내가 잘못이지.”
녀석은 입을 닫았다.
잠시 적막이 흐르고. 녀석 모습을 살피던 나는 이미 녀석이 잠이 들었다는 것을 알았다.
“녀석! 나에게 그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이야기를 꺼낸 것이었구나. 오빠가 사법고시에 합격해서 검사라도 되면 좋겠지. 허나 그게 어디 쉬운 이야기냐? 우선 방을 구할 돈을 벌기도 바쁜데........ 녀석! 참!”
난 잠이 든 녀석의 모습을 들여다보며 기특한 생각에 미소를 지었다.

“할머니 다녀올 게요!?”
아침에 일어나 일터로 나가며 난 주인할머니에게 늘 그랬듯 인사를 했다.
“.........!? 오늘은 늦잠을 주무시나........!”
항상 인사를 하면 오냐! 하고 인사를 받으시던 할머니가 오늘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나보다. 기척이 없다. 어제 산에 나물을 뜯으러 다녀오셔서 피곤하셨나보다.
“여든 셋인데도 팔팔하셔. 산에 올라가면 젊은 사람도 따라가지 못해.”
이웃집 젊은 아주머니가 하던 말이 생각났다. 그렇게 할머니는 늘 산에 다니시며 나물과 약초를 캐서 용돈을 벌고 건강도 유지했다.
“그냥 가! 내가 이따가 아침 해서 할머니랑 같이 먹을게.”
녀석이 잠자다 말고 방안에서 한마디 했다.
“그래! 알았다!”
난 서둘러 조경업자가 기다리는 느티나무 3거리를 향해 달려갔다. 이미 시간이 다 됐기 때문이다. 성격이 까다로운 조경업자 사장은 일꾼들이 5분만 늦으면 일당에서 5000원을 공제한다. 그게 뭐 약속을 지키기 위한 방편이라나. 늘 입버릇처럼 떠드는 말이. 사람은 약속을 잘 지켜야 한다. 인간 공동체는 약속을 지키는 것부터 그 시작이다. 라고 잘난 체 하는 사장이 일이 끝나는 시간은 잘 안 지킨다. 이런 저런 핑계를 다 동원해서 꼭 30분이라도 더 일을 시킨다. 점심시간도 12시부터 1시까지라고 해놓고. 12시 10분은 돼야 밥을 먹으러 식당으로 가고. 12시 50분만 되면 일을 시작하자고 재촉한다.
오후 5시 30분에 작업 종료를 해야 하는데 늘 오후 6시는 돼야 작업을 종료한다. 그런 까닭에 일을 하는 친구들이나 인력공사에서 지원을 나온 인부들이나 모두 불평이 많다. 능률도 오르지 않는다. 어떡하면 시간을 때울까. 사장 눈치나 보며 일을 하다가 사장이 자리만 비우면 바로 연장을 집어 던진다. 똑똑한 것처럼 잘난 체 하는 사장이지만 내가 보기엔 가장 멍청한 사장이다. 나 같으면 그렇게 일을 시키지 않는다. 스스로 먼저 약속 시간을 지키고. 가끔은 능률을 위해 일찍 작업을 종료해주고 회식도 시켜주고. 그렇게 할 것이다.
내가 조경업자 멍청한 사장을 따라 다니며 배운 것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다.
출발 5분전에 도착을 했는데도 내가 가장 늦게 왔다. 당연히 사장은 핸드폰 시계를 들여다보며 곱지 않은 시선으로 날 노려봤다.
“성군! 좀 일찍 나올 수 없나? 혼자 늦게 오니까 다들 기다렸잖아!”
30대 후반 얍삽하게 생긴 사장은 그냥 지나치는 예가 없다 오늘도 기필코 한마디 하고 간다.
“죄송합니다! 할머니가 인사를 안 받으셔서 좀 늦었습니다.”
난 사실대로 이야기를 했다.
“늙으셔서 하루 종일 산에 돌아다니시니 좀 피곤 하겠어. 너무 걱정 마.”
조경업자와는 먼 친척뻘이라던가. 그래도 할머니 이야기가 나오니 관심을 갖긴 했다.
“오늘은 양평 조회장 별장에 나무 심는 것을 일찍 끝내고 고기라도 구워먹자.”
조경업자가 제법 인심을 쓰는 척 하고 말했지만 우린 다 안다. 늘 입버릇처럼 떠드는 일상적인 말이라고. 아직 한 번도 실행에 옮긴 적이 없으며. 나무를 다 심어도 이런 저런 핑계로 다른 일을 시키며. 오후 6시나 돼야 작업을 종료할 것이라는 사실을. 조경업자보다 우리가 더 잘 안다.
“비가 오려나.”
대규가 차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하늘을 처다 보며 말했다.
“왜? 오전 10시 10분 쯤 비가 오면 좋겠지? 아니면 오후 3시 10분에 오면 좋겠어?”
조경업자가 비꼬는 말투다. 오전 10시가 넘어서 작업이 중단되면 무조건 한나절 일당으로 친다. 오후 3시가 넘어서 우천으로 작업이 종료되면 무조건 하루 일당으로 친다. 이건 노동일을 하는 현장에선 언제부터인가 철칙처럼 전해진 공통사항이다.
허나 이것 역시 이 멍청한 조경업자에겐 안 통하는 말이다.
비가 10시가 넘어서 오면 억지로라도 비를 맞으며 12시까지 일을 시키고 종료한다. 물론 10시 전에 비가 한 방울이라도 내리면 얼른 작업을 종료하고 그날 인건비는 없다. 오후에도 마찬가지다. 3시 전에 비가 오면 얼른 작업을 마치고 한나절 일당만 주는데. 오후 3시 이후에 비가 오면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꼭 비를 맞으면서도 6시까지 일을 시킨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도무지 일이 안되면 하다못해. 집 창고에 들어가서 청소라도 시킨다.
툭. 툭.
양평으로 향하는 우리가 탄 봉고 승합차 앞 유리창에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제기랄! 오늘 일당도 날아갔군.”
대규가 작은 소리로 투덜거렸다.
그 작은 소리도 들었음인가. 조경업자가 힐끗 대규를 훔쳐보며 입가에 미소를 띤다.
10시가 다 됐을 때. 이렇게 비가 한 방울씩 떨어지면 바로 작업 종료를 시키는 조경업자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까짓 비에 일을 못해.”
하면서 기어코 9시 50분까지 일을 시키고 종료한다. 공짜로 일을 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그는 절대 놓치지 않는다.
조경업자는 바로 그런 생각에 지금 묘한 미소로 대규를 힐끗 보는 것이다.
오늘도 인건비 안 나가고 공짜로 3시간씩 일을 시킬 수 있다는 생각에. 그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지만. 조경업자의 입가에 미소도 사라지게 만드는 전화가 내게 걸려오고 있었다.
이제 막 아침을 하려고 일어났을 우리 귀여운 마귀할멈의 전화였다.
아니 어쩌면 내가 일터로 나가기 무섭게 일어나 아침준비를 했는지도 모른다.
“어! 그래! 일어났어?”
난 핸드폰을 열고 녀석의 전화를 받았다.
“오빠! 큰일 났어! 할머니가 이상해.”
“할머니가? 왜? 어떻게 이상한데?”
“숨을 쉬지 않아. 몸도 차갑고.”
“뭐라고? 숨을 쉬지 않아?”
내가 녀석과 통화를 하는 내용을 들은 조경업자는 급히 차를 세웠다.
“뭐야? 할머니가 뭐 어떻다고?”
“돌아가신 모양입니다.”
조경업자 물음에 내가 대답했다.
“이. 이런!”
조경업자는 급히 차를 돌렸다. 집을 떠난 지 불과 30여분 만이었다.
“어. 난데. 명이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나봐. 얼른 다들 오라고 해.”
조경업자는 운전을 하면서도 이곳저곳으로 계속 전화를 했다.
비틀비틀 마치 술 취한 사람처럼 승합차는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차량을 비켜갔다.
“야! 운전 똑바로 해 임마!”
언덕너머 저수지 아랫동네에 사는 고물상 아저씨가 차창을 내리고 욕을 하며 지나갔다.
“개새끼!”
조경업자 입에서도 욕이 튀어 나왔다.
몇 군데 더 전화를 하고 조경업자는 핸드폰을 조수석에 던져놓고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뿌연 안개가 강줄기를 따라 마치 하얀 백사처럼 꼬불꼬불 움직이고 있었다.
“안개가 낀 것을 보면 비는 오지 않을 모양이네.”
대규가 강가에 안개를 가리키며 아는 체 했다.
“저기압으로 안개가 바닥으로 깔리는 거야. 비는 올 거야.”
용역으로 나온 아랫마을 강씨 아저씨가 확신하듯 말했다.
강씨 아저씨는 대신인력이라는 용역사무실에 나간다. 하루 일당이 7만원인데 용역비 10000원을 주면 자기가 갖고 가는 돈은 6만원이다.
강씨 아저씨 말을 밑받침이라도 하듯 후두둑. 소리를 내며 빗방울이 굵어지기 시작했다.

“으앙........ 할머니! 할머니! 으앙........”
집에 도착하자 마귀할멈 녀석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직 아무도 오지 않은 방 안에 싸늘하게 식은 할머니 시신을 붙잡고 녀석 혼자서 울고 있었다.
“명이 어머니!”
조경업자가 방으로 뛰어들어 할머니 시신을 확인하고 털썩 주저앉았다.
“돌아가셨어요?”
내가 확인하듯 물었다.
“그래! 돌아가셨다. 에고....... 그렇게 정정하시던 분이 이게 뭔 일인고.”
조경업자는 안타까운 시선으로 할머니 시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이불로 할머니 얼굴을 덮어 버렸다.
“괜찮아. 할머니는 하늘나라에서 더 건강하게 사실 거야.”
어느 드라마나 소설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위로 말이 내 입에서도 나왔다.
난 녀석을 일으켜 어깨를 감싸주며 밖으로 나왔다.
“오빠도 그런 말을 할 줄 아네. 그건 드라마나 동화책에서 나오는 말이잖아. 하늘나라가 어디 있어? 다 꾸며낸 말이야.”
녀석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불과 몇 개월 동안 할머니와 정이 많이 든 모양이다. 녀석 눈이 벌겋게 충혈된 것을 보니 많이 울었나보다.
“녀석.......! 그렇게 친할머니처럼 따르더니. 많이 울었구나?”
“응! 갑자기 오빠가 아침에 인사를 해도 기척이 없는 것이 이상해서 할머니 방에 들어가 보니 할머니가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시는 거야. 나에게 무슨 말을 막 하시는데.......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어. 너무 작은 소리로 뭐라 하시더니. 갑자기 꼬르륵 하고 소리가 나고 축 늘어지셨거든. 몸도 많이 차가웠어. 아마 추워서 그러셨나봐. 할머니 불쌍해서 어떡해.......”
“그럼 네가 할머니 방에 갔을 땐 살아 계셨구나?”
“응! 그랬어. 몸은 이미 차갑게 식어 있었지만 분명 말을 하셨거든.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지만 분명 나에게 말씀을 하셨어.”
“뭐라 했는데?”
“몰라! 하나도 기억이 안나.”
녀석을 데리고 밖으로 나와 길가에 놓인 나무 벤치에 앉아 있는데.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할머니 죽음을 듣고 달려온 동네 사람들이었다.
“아이고.......! 아이고.......!”
갑자기 통곡 소리가 들렸다. 할머니 딸이 옆 동네에 산다 하더니 아마 그 딸이 도착을 한 모양이다.
“아이고........! 엄마! 이게 무슨 일이야? 아이고.......! 아고........!”
할머니  시신을 안고 통곡을 하는 저 딸. 울음소리가 왠지 가식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조경업자가 명이 어머니라고 할머니를 부르는데. 바로 지금 통곡을 하는 딸 이름이 명이였다.
할머니의 막내딸이다. 할머니는 자식이 모두 3명인데. 아니 낳기는 모두 6명을 낳았다고 하는데 3은 죽었다지 아마. 아무튼 두 명은 저 명이라는 딸의 오빠들이고. 둘 다 서울에서 제법 먹고 살만 하다는 소리를 조경업자를 통해 들었는데. 1년에 단 한 번 돈 몇 푼을 던져주다시피 주고 가는 것이 고작이란 말을 들었다.
아주 불효막심한 놈들이라고 조경업자는 늘 말했다.
“그만 울어요! 앞으로 며칠 밤 낯을 울어야하니 그만 그쳐요. 그리고 일단 여주의료원 장례식장에 전화를 했으니. 어머니를 병원으로 모시는 것이 어떠세요?”
조경업자가 명이라는 할머니 딸을 위로하며 물었다. 명이라는 할머니 딸은 이미 50대를 바라보는 나이였다. 조경업자보단 한참 많은 나이다.
“그건 네가 알아서 해라!”
명이라는 할머니 딸은 언제 울었느냐는 듯 할머니 곁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와 돌로 된 마루턱에 걸터앉았다.

앵앵.......
여주의료원 장례식장에서 참 빨리도 차를 보냈다. 우리가 할머니 집에 도착을 하고 이웃에서 명이라는 딸이 도착을 한 후 겨우 10분 만이다.
할머니 시신은 그렇게 빠르게 여주의료원 장례식장으로 이송됐다.
“넌! 얼른 학교에 가라!”
난 마귀할멈 녀석을 떠밀 듯 학교로 보냈다.
집안 청소도 하고 설거지도 하며 나도 여주의료원 장례식장으로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전 10시쯤 됐을 때다.  
덜컹.
할머니 방문을 열고 누군가 방을 뒤지고 있었다.
나와 보니 마당에 고급 승용차가 한 대 서있었다.
“뭐하세요?”
내가 황당해서 곱지 않은 시선으로 물었다.
“그런 넌! 누구냐?”
나이 50대 정도 되는 할머니 방을 뒤지던 남자는 오히려 날 이상한 눈으로 노려보며 물었다.
“전 이방에 세 들어 사는 사람인데요.”
난 내 방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난 이방에 사시던 분의 아들이다. 어머니 짐 정리를 하는 중이니 관섭 말아라!”
할머니 아들이라고 하는 50대 남자는 그 말을 남기고 다시 할머니 방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뭔가 찾는 모습이다.
“오늘 여기 이웃에 사는 명이 왔었나?”
그 남자는 찾는 것이 없는지 손에 들었던 할머니 베개를 방바닥에 집어 던지며 신경질적으로 내게 물었다.
“네! 왔었는데요.”
난 몹시 불쾌했지만 얼른 대답했다.
“그년이 가져갔군! 젠장! 한 발 늦었어.”
50대 남자는 투덜거리며 할머니 방을 나와 문을 떨어질 듯 확 닫고 승용차를 타고 휑하니 사라졌다.
“도대체 뭘 찾는 거지? 이 조그만 할머니 집문서라도 찾나? 그럼 이제 우린 어떡하지?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해야 하나.”
난 몹시 마음이 복잡했다.
대충 문을 닫고 할머니를 모신 장례식장으로 가기 위해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같이 가자!”
대규가 저만치 골목길에서 달려오며 소리쳤다.
“얼른 와!”
난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대규를 기다렸다.
“헉헉....... 3일 동안은 우리도 바쁘겠다.”
대규가 하는 말은 장례식장에 가서 우린 조문객들을 맞아야 하므로 힘들 거란 뜻인데. 그렇게 말을 하는 대규가 곱게 보이지는 않았다. 아무리 힘들어도 돌아가신 분에겐 그렇게 말을 하는 자체가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아! 물론 할머니 자식들처럼 돌아가신 어머니 방에서 뭔가를 찾기에 바쁜 그들보단 그래도 대규가 훨씬 나은 편이지만 말이다.
“얼른 가자! 조문객들 받으려면 일손이 부족할 거야. 우리가 도와야지.”
숨을 헐떡거리고 온 대규를 앞세우고 난 서둘러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갔다.
“난 우리 민주와 데이트 약속이 있는데.”
대규가 아쉽다는 말투다. 민주란 그때 나와 같이 소나무 아래서 만난 여자 이름이다. 대규 녀석 맘에 들었는지. 요즘 보면 다른 여자들과 사귈 때보단 조금 진지하다.
“결혼까지 가려는 모양이지?”
“야! 그런 무서운 말이 어디 있어? 결혼은 인생의 무덤이라고. 즐길 때 실컷 즐겨야지. 결혼은 무슨........ 너! 혹시라도 앞으로 여자 사귈 때. 결혼 하자 뭐 그런 말은 절대 금물이야. 알아? 그럼 혼인빙자 간음죄라던가 뭐 그런 법이 있다더라. 조심해. 항상 입조심.”
대규는 다른 건 몰라도 여자관계에 대해선 박사다. 아마 그런 박사 학위가 있다면 대규가 가장 먼저 받아야 하지 않을까.
“혹시 여자가 우리 결혼할 거지? 하고 물어도. 대답을 회피해. 그래! 하고 냉큼 대답하지 말고. 알았어? 여자들이 그런  말을 유도하는 경우가 있어. 그건 너와 정말 결혼을 하려는 것이 아니고. 널 옭아매려는 수작이니깐. 넘어가지 말고 멍청아! 그런 말로 네가 결혼 이야기를 꺼내도록 유도를 하는 여자는 일찍 쫑내. 알아? 계속 관계를 유지하다가는 나도 실수를 할 때가 있거든. 특히 술 같은 것 막 먹지 말고. 사람이 술에 취하면 자기도 모르게 그런 말에 넘어가거든. 여자들이 술을 먹자고 꼬이는 작전에 넘어가면 끝이야. 너야 술을 먹지 않으니 그건 안심이지만. 아무튼 여자를 만나는 것도 다. 치밀해야 돼. 머리 회전이 빨라야 한다고.”
대규의 수다는 버스가 도착하지 않았다면 계속 이어질 뻔 했다.

아이고........ 아이고.........
장례식장에 나와 대규가 도착을 했을 땐 이미 할머니의 딸과 두 아들은 도착을 해서 통곡소리를 내고 있었다.
“아이고....... 아이고........”
두 아들 옆에는 며느리들인지 여자 둘이 앉아 같이 통곡을 하는데. 이상하게도 아들도 며느리도 눈에 눈물은 한 방울도 흐르지 않았다.
명이라는 할머니 딸은 그래도 눈에 눈물이라도 흘렀다.
“얼른 이리와!”
조경업자가 대규와 나를 발견하고 손을 까딱거리며 불렀다.
“빨리 점심상 차려야지. 너희들은 술상부터 준비하고.”
나와 대규에게 술상을 준비하란다. 현제 온 조문객이라곤 할머니 두 아들과 딸. 그리고 며느리와 사위. 동네 사람들 몇 명이 고작이었다.
“술은 누가 먹는다고?”
내가 의아하게 생각하며 조경업자 들으라고 대규에게 큰 소리로 물었다.
“상주들은 줘야 하니까 얼른 준비해.”
조경업자가 내 의도를 알아차리고 누가 먹을 것인지 알려주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이제 도착한 사람들이 어디 목구멍에 밥이 들어가고 술이 들어가는가?  하루 종일 굶고 슬퍼해도 모자라는 판에. 술을 먹는다? 이건 내 상식으론 이해가 안됐다.
“상민아!”
할머니의 큰 아들이 조경업자를 불렀다. 여기 오기 전에 할머니 방부터 뒤지고 온 그 50대 남자다.
“네! 형님?”
“술상 멀었느냐?”
내 상식을 깨고 술상부터 찾는 파렴치한 상주. 나도 모르게 두 주먹이 쥐어졌다. 으이그. 저걸 확 두들겨 패서 할머니 옆에 같이 묻어줘. 하는 생각이 굴뚝같았으나 난 꾹 참았다.
“지금 갑니다! 얼른 갖다드려.”
조경업자는 대답을 하면서 나와 대규를 독촉했다.
난 얼른 장례식장 전용 식당에 가서 찌개와 간단한 안주를 상에 담아 소주와 함께 가져왔다.
“이리 줘!”
조경업자가 술상을 받아 상주들 앞에 갖다 놓았다.
“야! 한잔 하자!”
큰 아들이 둘째 아들을 부르고. 둘째 아들은 사위를 부르고. 사위는 며느리들을 불러서 술상에 빙 둘러 앉았다.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고 급히 오느라 밥도 못 먹었네.”
큰아들이란 놈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오다니. 기막힌 노릇이다.
“형님도 그랬소? 나도 배고파 혼났소.”
둘째 아들도 큰아들이나 다를 게 없었다.
“엄마 돌아가셨는데. 술이 목에 넘어가우? 아이고........ 불쌍한 우리 엄마.”
명이라는 딸이 두 오빠를 핀잔주며 다시 곡을 하기 시작했다.
슬금슬금 사람들 눈치를 보던 며느리들이 울상을 지으며 마지못해 술상에서 떨어져 할머니 영정 앞에 앉아 곡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거나 말거나. 두 아들과 사위는 이미 소주잔이 몇 차례 오고갔다. 후루룩 후루룩 소리를 내며 찌개그릇을 들고 맛있게 먹고 있었다.
전이며 홍어 무침까지 말끔히 먹어치운 두 아들과 사위는 이미 얼큰하게 취기가 동기 시작했다.
그때서야. 곡수리 리장과 동네 어른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언덕 넘어 저수지 마을 대평리 리장도 같이 왔다. 우리 마귀할멈 녀석이 갑자기 아프면 돈이 많이 들어간다고 의료보험을 들어야 한다나 뭐라나. 하면서. 곡수리 리장을 만나 부탁을 하는 자리에서 대평리 리장까지 알게 된 것이다. 마귀할멈 녀석이 우리가 살 곳을 삼거리를 택한 것은 이리가면 여주. 저리가면. 양평도 모자라서. 한쪽은 양동과 강원도로 가는 길목을 택한 것이다. 아무튼 마귀할멈 녀석은 도무지 그 생각을 짐작하기도 힘든 녀석이다. 할머니네 집 또한. 아래 삼거리 위 삼거리가 있는데. 그중. 여주 쪽으로 가까운 아래 삼거리에 있었다. 불과 30여 평 되는 대지에 15평 남짓한 방 두 개짜리 낡은 집이지만. 도로에 붙어 있어서 구멍가계라도 하면 용돈은 벌 수 있는 위치라고 할머니는 우리 마귀할멈에게 말했다.
“아이고....... 아이고........”
동네 사람들이 몰려오자 술상을 급히 치우고 목소리 높여 통곡을 하는 두 아들과 사위.
“갑자기 상을 당해서 뭐라 위로를 해야 할지.”
대평리 리장이 할머니 큰아들에게 위로의 말을 하다말고 고개를 돌려 버린다. 입에서 술 냄새가 확 풍기기 때문일 것이다.
“너무 슬퍼서....... 괴로워서 술을 그만.......”
눈치 빠를 둘째 아들이 얼른 변명을 한다.
“아이고........ 어머니! 갑자기 돌아가시면 이 아들은 누굴 의지하고 살란 말입니까.”
큰아들이 둘째 아들 말에 장단이라도 맞추듯 갑자기 할머니 영정 앞에 엎드려 통곡을 시작했다.
대평리 리장도. 다른 동네 사람들도 그런 두 아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는 않았다. 다들 아는데 그들만 모른다. 그렇게 가식적인 행동이 얼마나 마을 사람들 눈에 나쁘게 비친다는 것을.......
더욱 꼴불견은 저녁에 일어났다.
친척들과 이웃들이 많이 모이자. 노름판을 시작했다. 조문객들은 그렇다 치고. 밤이 늦어지자 상주들이란 놈들이 하나 둘. 노름판에 끼어들었다. 이미 술에 취해 몸도 가누기 힘든 두 아들은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돈을 딸 때마다  환호성을 질렀다.
“아프지 않고 주무시다가 갑자기 돌아가셨으면 호상이죠.”
好喪.
어떻게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그게 호상이란 말을 자식 입에서 나올까. 의구심이 생겼다.
“뭐? 호상? 이놈! 네 어미가 죽었는데 그게 좋단 말이냐? 고얀 놈!”
할머니 아들에게 당숙이 된다는 노인이 참지 못해 야단을 쳤다.
부글부글 타는 가슴에 기름을 뿌렸는가?
“어디서 못된 놈들을 자식이라고 감싸주던 원주 댁이 불쌍하지.”
“저걸 자식이라고 낳고. 미역국을 먹은 원주 댁이 안됐어.”
“지 에미 죽었는데 술이나 쳐 먹고. 한심한 놈들.”
여기저기서 상주들에게 욕설을 하기 시작했다.
귀가 있어 들었는지. 슬그머니 일어나 밖으로 사라진 두 아들과 사위는 그날 밤새 돌아오지 않았다. 아마 어디 가서 술에 취해 깊이 잠들었을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두 며느리도 소리 없이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밤새 끝까지 할머니 영정을 지킨 것은 명이라는 딸과. 나의 귀여운 마귀할멈뿐이었다.
“저게 누구여? 손녀딸인감?”
아들딸보다 더 슬피 울고 할머니 영정을 지키는 마귀할멈을 보고 사람들은 궁금해 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학교 선생님께 허락을 받았어. 나 3일간 안 나가도 돼.”
마귀할멈 녀석이 시키지도 않는 것은 잘했다. 어린 녀석이 학교나 갈 것이지. 할머니 영정을 지킨다 하고 밤이나 새고.
“오빠! 졸려.”
두 눈이 천근처럼 무거워 보이는 마귀할멈 녀석을 나는 한쪽에 눕히고. 이불로 덮어 줬다.
이불을 덮어주기 무섭게 금방 잠이 든 마귀할멈 녀석. 난 한 동안 옆에서 녀석을 지켜줬다.
“자넨 누군가?”
할머니 아들의 당숙뻘 된다는 노인이 내게 다가와 슬쩍 물었다.
“돌아가신 할머님 댁에 셋방을 얻어 사는 사람입니다.”
“아! 그럼! 저 아이도?”
“네! 제 동생입니다.”
“어쩌다.......? 부모님은 어디 계시고 둘이?”
“돌아가셨습니다. 사고로........”
난 마귀할멈 녀석이 동네 사람들한테 둘러대던 거짓말을 그대로 써먹었다. 아니 이건 마귀할멈 녀석이 내게 신신당부를 한 것이다. 오빠도 똑같이 말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우릴 이상하게 보니까 명심해. 하면서.......
하긴 부모도 없이 두 남매만 한 방에서 살아간다 하니까 이상하게 보는 눈도 많았다. 특히 대규부터 그랬다.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마귀할멈 녀석을 대규는 여자로 보는 모양이다. 나와 그렇고 그런 사이로 의심부터 했던 대규가 요즘은 마귀할멈 녀석을 더 챙긴다. 녀석이 자다가 이불을 걷어차면 번개같이 달려와 덮어줬다.
“너만 오빠냐? 나도 오빠지.”
요즘 대규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어젯밤 나갔던 두 아들과 며느리는 한나절이 다 돼서 얼굴에 기름기가 번들번들 해서 들어왔다. 어디 맛있는 식당가서 배부르게 먹고 온 모양이다.
사위란 놈은 아직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아마 두 아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집에 가서 아직까지 퍼질러져 자는 모양이다.
“아이고........ 아이고.......”
명이라는 딸 혼자서 아직도 할머니 영정을 지키고 있었다.
“얘야! 너도 저기 저 아이 옆에 가서 눈 좀 붙여라!”
당숙뻘 된다는 노인이 마귀할멈이 자는 곳을 가리키며 명이라는 딸에게 말했다.
마치 그 말을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명이라는 딸은 냉큼 가서 마귀할멈 옆에 이불을 깔고 누웠다.
“자! 네놈들은 어서 이리와 조문객을 맞아야지 뭘 하느냐?”
당숙뻘 된다는 노인의 불호령에 두 아들과 며느리는 마지못해 엉거주춤 할머니 영정 앞으로 걸어갔다.
“객들이 오면. 아이고....... 아이고....... 하면서 곡을 해야 하느니라. 조문을 마친 객들이 상주에게 인사를 하면 같이 예를 다해 맞이하고.”
당숙뻘 되는 노인이 두 아들과 며느리에게 장례식 예절을 가르치고 있었다.
50이 넘은 두 아들이 아직도 그런 예절을 몰라서 저런 후레자식 노릇을 하는 것은 아닐 텐데. 남들 눈이 있으니 몰라서 그랬을 것이라는 생각이라도 마을 사람들 눈에 심어주려는 마음 같았다.
“네! 네!”
당숙뻘 되는 노인의 뜻을 알았던가. 대답은 냉큼냉큼 잘도 한다.
아직 알려지지 않았음인가 조문객은 그리 많지 않았다. 가끔 한 명씩 다녀갔다.

점심시간이 다 돼.
사위가 나타났다. 사위 손엔 서류 봉투가 들려 있었는데. 그걸 큰아들에게 슬쩍 전달하고 뭐라 귓속말을 했다.
“강 지현이 누구야?”
큰 아들이 서류 봉투를 열고 서류를 확인하더니 우리 마귀할멈을 찾는다.
무슨 일인지 큰일 났다. 내 친동생이라고 동네 사람들한테 속이고 녀석 이름을 성 지현이라고 했는데. 갑자기 왜? 강 지현이란 이름을 찾을까.
“전데요? 왜 그러세요?”
워낙 큰 목소리에 녀석이 잠이 깨어 일어났다.
“어째서 우리 어머니 집문서가 네 이름으로 바뀌었지?”
큰아들은 금방이라도 마귀할멈 멱살이라도 잡을 기세로 물었다.
“제가 샀거든요. 할머니께서 제게 팔았어요.”
마귀할멈 녀석은 태연하게 대꾸했다. 나도 모르는 일이었다.
“여기 보면 80만원에 매매가 됐다고 하는데? 80만원에 산 것이냐?”
“네! 그래요.”
“그 집이 겨우 80만원 값어치 밖에 안 된단 말이냐?”
“할머니께서 돈이 필요 없다고 하시며 80만원만 받으신다고 했어요. 그거 리장님들도 아는 사실이에요.”
마귀할멈 녀석이 곡수리 리장과 대평리 리장을 보며 마치 자기 말이 맞지 않느냐고 묻는 표정이다.
“그렇다네. 우리가 증인이라네.”
두 리장이 동시에 나서며 큰아들에게 말했다.
“너도 모르는 일이냐?”
큰아들이 명이라는 여동생을 보며 화풀이를 하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 돈 80만원 엄마가 절 주셨어요. 얼마 전에........”
잠자다 깬 명이라는 딸은 부스스한 얼굴로 말했다.
“젠장!”
큰아들은 서류 봉투를 홱 집어 던지며 마귀할멈을 잡아먹을 듯 노려보다가 많은 눈들이 자신을 지켜본다는 것을 알고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가서 앉았다.
“네 친동생이라며? 왜 성이 틀려?”
대규가 강 지현이라는 말을 들은 모양이다.
“엄마가 간난 아기인 저 녀석을 데리고 다른 아버지를 얻었었거든.”
난 조금 전에 급히 생각해낸 것을 말했다.
“그런 일이?”
“에구.......! 불쌍한 오누이구먼.”
많은 사람들이 듣고 오히려 나와 마귀할멈을 동정하는 말이 들리자. 대규도. 큰아들도. 더 이상 다른 말이 없었다.
마귀할멈 녀석은 나를 바라보며 슬쩍 자신의 옆구리에 감춘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 손을 보여줬다.
사람들이 큰아들에 향한 분노가 조금 수그러들자. 큰아들이 슬그머니 명이라는 딸에게 다가갔다.
“어머니 귀금속들은? 네가 가졌느냐?”
“아냐. 나도 몰라! 갑자기 얼마 전부터 어머니 귀금속은 보이지 않았어.”
“그럼 저 강 지현이라는 아이가 오고부터? 아님 그 이전부터?”
“벌써 오래전이야. 쟤들은 이제 3개월 정도 됐고. 어머니 귀금속은 반년도 더 됐어. 아마 팔아서 용돈 쓰신 게 아닐까?”
“어디 그럴 어머니냐? 시어머니가 물려 준 귀금속이라고 만지지도 못하게 한 것을. 너도 알잖아? 그걸 파실 어머니냐고?”
“나도 집안 구석구석 다 찾아 봤어. 보이지 않더라. 이미 반년 전부터.”
“어머닌 그걸 어디다 뒀지. 젠장.”
“그까짓 옛날 귀금속 얼마나 간다고.”
“네가 몰라서 그래. 그거 무척 비싼 거야.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골동품이거든.”
“뭐? 그게 얼마나 가는데?”
“아마 한 몇 천. 아님 그 이상.”
“쳇! 그걸 믿으라고? 지금 장난하는 거지?”
명이라는 할머니 딸은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다. 허나 큰아들 표정은 심각했다.
“얼마 전 골동품 감정 방송에서 어머니 팔찌와 비슷한 물건이 나왔는데. 가짜로 밝혀졌지만. 당시 감정원들이 하는 말이 있어. 진품일 경우 그 값어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헉! 그럼? 몇 억이 될지도 모른단 이야기야?”
“쉿! 둘째가 알면 큰일 나.”
저쪽에서 걸어오는 둘째 아들을 발견한 큰아들이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며 자리로 돌아갔다.
명이라는 딸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그녀는 한 가지 비밀을 알고 있었다. 오빠들은 모르는 자기만 아는 비밀. 그래서 명이라는 딸은 지금 무척 행복했다. 어머니 돌아가신 슬픔은 이미 잊은 지 오래다.
“그래!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분명 저 지현이란 아이에게 무슨 말을 했다고 했어. 그건 나만 아는 비밀이야. 저 아이에게 그걸 물어보면 돼. 분명 그 귀금속들을 어디에 뒀다고 알려줬을 테니까.”
그녀는 그렇게 생각을 하며 속으로 이미 돈벼락을 맞는 환상에 졌었다.
“저어........ 당숙님!”
그녀가 당숙뻘 된다는 노인을 조심스럽게 불렀다.
“무슨 일이냐?”
“저 아이가 자식들인 우리들보다 더 엄마 영정을 지키느라 고생했잖아요. 아마 배가 무척 고프고 힘들 거 에요. 제가 데리고 나가 뭐 좀 먹이고 올게요.”
“오! 어떻게 그런 기특한 생각을? 얼른 다녀와라!”
당숙뻘 되는 노인은 명이라는 할머니 딸이 이 순간만큼은 대견해 보였다.
그녀는 얼른 우리 마귀할멈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나 역시 녀석의 안전을 생각해서 뒤따라  갔다.
“가자! 이쪽으로 가면 불고기 맛있게 하는 집이 있어. 오늘은 아줌마가 사 줄게 많이 먹어라!”
그녀는 나와 녀석을 자기 승용차에 태우고 장례식장을 벗어났다. 가까운 곳에도 음식점이 많은데 굳이 먼 곳으로 가는 이유는 혹시나 모를 오빠들 때문일 것이다.
따라와서 비밀 이야기를 들으면 안 되니깐.
하지만 세상사 모든 것이 다 자기 생각대로 될까.
그녀가 나와 마귀할멈 녀석을 데리고 불고기집에 간 사이 대규의 가벼운 입이 사고를 치고 있었다.

“아까 나간 지현이가 할머니 돌아가시기 전에 유언을 들었다던데. 무슨 이야긴 지 생각이 안 난다고 하더라고요.”
곡수리 리장이 아무도 할머니 임종을 지켜본 사람이 없다는 말에 톡 튀어나와 떠든 말이다.
그 말을 들은 큰아들 입가엔 행복한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둘째 아들 표정은 묘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열심히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것이 무슨 검색을 하는 모양인데. 표정이 수시로 바뀌고 있었다. 점점 즐겁고 행복한 표정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명이라 부르는 할머니 딸은 손수 불고기를 떠서 지현이 앞에 놓아 주며 본격적으로 질문을 시작했다.
“새벽에 어머니 돌아가시기 전에 무슨 말을 했다고 했지?”
“네! 했어요.”
“무슨 말을 했는데?”
“듣긴 들었는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뭐라 하셨는데?”
“음......! 거 뭐라더라. 수철이 아래. 팔찌. 그러시던데. 그게 무슨 뜻인지.”
“뭐? 수철이? 수철이가 누구지? 다른 이야기는 못 듣고?”
그녀 역시 무슨 뜻인지 도통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저보고 갖으라고.”
“뭐? 너보고 그걸 갖으래?”
“네! 수철이 밑에 팔찌. 너 갖으렴. 하고 돌아가셨어요.”
“너? 혹시 거짓말 아니야?”
“네! 정말이에요. 저도 그게 무슨 뜻인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정말 다른 말씀은 없었어?”
“그 전에 하신 말씀이........명명명 아니고........그랬던가. 아니 명명명 말고 그랬던가. 아무튼 그런 말씀이셨어요.”
“무슨 말이야? 도통 알 수가 없잖아. 차근차근 다시 말해봐? 첨부터.”
“그러니까 제가 할머니 방에 들어갔더니 할머니가 숨을 쉬시는 걸 몹시 힘들어 하시기에 할머니를 부르며 몸을 일으키려고 하자 할머니가 차가운 손으로 제 손을 잡으시고. 명명명 말고. 수철이 밑에........팔찌 네가 갖으렴. 하시더니 축 늘어 지셨어요.”
나는 마귀할멈 녀석이 하는 말은 도무지 무슨 뜻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그건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음식을 먹지도 않고 마귀할멈 녀석이 준 수수께끼를 푸느라 정신이 없는 모습이다. 덕분에 나와 마귀할멈 둘만 불고기를 맛있게 먹었다.

장례식장에 돌아온 마귀할멈은 다시 큰아들 소환을 받고 밖으로 나갔다. 나 역시 녀석의 안전을 핑계로 따라갔다.
“금방 불고기를 먹었다니깐. 아이스크림이나 먹자. 아저씨가 사줄게.”
큰아들은 나와 마귀할멈 녀석을 데리고 장례식장 뒤 골목에 있는 빵집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아이스크림도 팔았다.
“어머니 임종직전에 네가 어머니께 들은 말이 있지?”
“네! 조금 전에 아줌마에게 다 말해 드렸는데.”
“뭐? 명이에게?”
큰아들은 무척 놀라는 표정이다.
“네! 할머니께서 하신 말씀 그대로 전했어요.”
“뭐라 하셨어? 얼른 말해봐?”
“명명명 말고 수철이 밑에 팔찌 네가 갖으렴. 하고 말씀 하셨어요. 저도 아줌마도 그 뜻이 뭔지 몰라요. 아저씨는 알아요?”
“명. 명. 명. 말고. 수철이 밑에 팔찌? 흠! 무슨 말이지........ 도통 모르겠다. 그게 다야?”
“네! 그 말씀을 끝으로 돌아 가셨어요.”
“흠.......! 천천히 먹고 오렴.”
큰아들 역시 마귀할멈 녀석이 던진 수수께끼 때문에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갸웃 거리며 나가 버렸다.
“너! 언제 할머니 집은 샀어? 나도 모르게?”
난 녀석과 둘이 남자 먼저 그 이야기부터 꺼냈다.
“히히....... 오빠 이름으로 하려다가 여시들 만나서 잘못하면 날릴까봐 내 이름으로 했다. 거기 방이 두 개. 이제부터 하나는 오빠 방 하나는 내 방. 알았지? 그리고 언제까지 그 조경업자 아저씨 따라 다닐 수는 없잖아. 중고차라도 하나 사서 오빠가 직접 사장해라. 인터넷에 광고도 하고. 뭐 조경업자 그 아저씨는 그런 것도 모르니 일거리가 별로 없잖아. 요즘은 인터넷이 대세야. 내가 홈페이지 만드는 방법 배워뒀어. 멋지게 만들어서 광고 해줄게. 오빤 일거리 나오면 그 대규 오빠처럼. 여시 밝히는 오빠 말고 착실한 오빠들 구해서 사장 노릇해. 그래야 성공하지. 알았어?”
녀석! 참 기특한 생각을 했구나. 역시 나의 사랑스런 마귀할멈이다. 난 녀석을 한 참 말없이 바라보았다.
“히히....... 내가 대견스러워 미치겠지? 철없는 오빠를 데리고 살려면 나라도 똑똑해야지 어쩌겠어?”
“그래! 참 대견스러워 미치겠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난 정말 녀석이 어린아이가 맞나 의구심이 들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마귀할멈 녀석과 아이스크림을 먹고 장례식장에 돌아왔을 때. 돌아가신 할머니 시신이라도 뜯어 먹을 듯 흡혈귀들이 두 눈을 번뜩이기 시작했다. 큰아들 흡혈귀와 명이라는 딸 흡혈귀도 모자라. 둘째아들 흡혈귀에. 며느리들과 사위 흡혈귀까지........
덩달아. 무슨 보물찾기라도 되는 줄 알았나. 사돈에 팔촌까지. 침을 질질 흘리고 마귀할멈에게 서로 접근하려고 야단들이었다.
덕분에 그날 밤은 술판도 도박판도 없었다.
모두의 관심은 오로지. 단 하나의 수수께끼를 푸는데 온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명. 명. 명. 말고. 수철이 밑에 팔찌-
심지어 대규도 조경업자도 그 단어를 풀기위해 온 정신을 다 집중하는 눈치였다. 당연히 조문객들은 나와 마귀할멈이 땀을 뻘뻘 흘리며 맞이해야 했다.
“찾았다!”
밤........ 12시가 막 넘어가는 시간에. 둘째아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사람들 이목이 둘째아들에게로 집중됐다.
“어머님이 갖고 계시던 팔찌가 조선시대 명성황후께서 차시던 팔찌로 밝혀졌어요. 어머님이 명성황후 후손이시잖아요.”
“저놈의 입!”
둘째의 떠벌림에 큰아들이 발끈했다.
“와! 그럼 그 팔찌가 얼마짜리야? 몇 억짜리 아닐까?”
사람들이 수군수군 거렸다.
흡혈귀들의 눈에 불꽃이 튄다.
할머니의 굳은 피를 다 빨고 시신을 갈기갈기 찢어서라도 그 팔찌를 소유할 욕심들이다.
내 눈엔 할머니의 자식들 모두 흡혈귀로 보였다.
“명명명....... 말고. 수철이 밑에 팔찌.........”
이미 그들 마음속엔 할머니 죽음은 잊은 지 오래다. 오로지 그 수수께끼를 풀려는 마음뿐이다. 연신 입가엔 그 단어를 되뇌며 왔다 갔다 했다. 먹잇감을 찾는 흡혈귀처럼.
“장지는 어디로 할 건 가요?”
당숙뻘 되는 노인에게 대평리 리장이 물었다.
“명이 아범 묘지 옆이 양지바르고 좋네.”
“아. 네! 그럼 비석은 쓰지 않아도 되겠네요?”
“그럼! 명이 아범 비석이면 됐지. 명이 아범 비석이 높지는 않아도 넓어서 명이 어머니 묘비로 같이 사용해도 좋을 거야. 나중에 새로 하나 다시 만들어 세우던지.”
“.........!?”
열심히 조문객을 맞이하던 난.  대평리 리장과 당숙뻘 된다는 노인의 대화를 듣고 뭔가 번뜩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그 수수께끼의 비밀을 풀 것 같았다.
“히히......... 오빠가 젤 먼저 그 수수께끼를 풀었구나?”
녀석이 배시시 웃으며 옆으로 다가와 작은 소리로 물었다.
이런! 마귀할멈 같은 녀석! 내 표정만 보고 벌써 눈치를 챘다니. 무섭다 무서워.
“뭔데?”
녀석이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쿡 찌르며 작은 소리로 묻는다.
“비석.”
“뭐? 비석?”
“할머니 자식들 이름이 명수. 명철. 명이. 그래. 명명명. 명자를 빼면 수철이가 되지. 즉 할아버지 비석 뒤 가족들 이름 중 명자 말고 수. 철. 이. 밑에  그 팔찌가 묻혔다는 이야기야.”
“햐! 오빠 천제다. 그 머리로 꼭. 사법고시 합격해라. 알았지?”
녀석이 호들갑을 떤다.
너무 작은 소리로 말해서 아무도 들은 사람은 없었다.
“너보고 갖으라고 했으니 네가 찾아 갖을래?”
“아니! 난 필요 없어.”
“엥? 왜? 그거 진짜 비싼 골동품인지도 모르는데?”
“오빠도 그 물건에 욕심이 있어?”
“나라고 다르겠니? 욕심이란 것은 인간들 공통사항이잖아. 조물주가 그렇게 만들어 놨대. 그러니 욕심이 있다고 나쁘다고는 못하지. 다만.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지켜야 할 도리는 지켜야 한다는 것이지. 그게 인간의 최소한 양심이니깐.”
“히히........ 아직 말을 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어.”
“뭘?”
“할머니 말씀 말이야.”
“뭐라고? 무슨 말씀을 하셨는데?”
“팔찌는 가짜래. 반지와 목걸이도. 가짜고. 시어머니와 할아버지한테 속았대. 히히.......”
“그걸 왜 말 안 해? 그걸 말했으면 다들 저렇게 흡혈귀는 안됐을 것 아냐.”
“뭐? 흡혈귀? 적절한 표현이야. 히히....... 그 말은 하나 마나야. 내 말을 누가 믿겠어.”
녀석 말이 맞았다. 그 말을 하나 마나 저들은 그걸 찾으려고 혈안이 됐을 테니깐. 역시 녀석은 마귀할멈이고 애늙은이였다.
“만약에 말이야. 할머니가 잘 못 알고 있었다면? 그 팔찌가 진짜라면?”
“으으......... 우리 오빠가 언제부터 저들과 같은 흡혈귀가 됐지?”
“흐흐........ 나라고 안 될 이유가 없다니깐.”
“오빠! 아빠가 노름꾼이었다고?”
“응! 그랬지.”
“할아버지도 노름꾼이었대. 진짜는 노름으로 날리고 가짜를 만들어 놨대.”
“뭐? 할머니가 그렇게 많은 말씀을 하셨다고?”
“얼마 전에 할머니랑 나물을 캐러 갔을 때. 그때 말씀 하셨어. 가짜란 이야기도 그때 하셨고. 그래도 모양은 예쁘다고 그러셨지.”
“아하! 그랬구나.”
“리장 아저씨들을 증인으로 불러야 한다는 생각도 할머니 생각이셨어. 집을 나에게 팔면 자식들이 반발이 심할 것이라 하시면서 그렇게 하신 거야. 할머니도 자식들이 저렇게 나올 줄 이미 알고 계셨어. 해서 내가 생각한 것이 있는데. 지금부터 그걸 이용하려고. 히히.......”
마귀할멈 녀석이 뭔가 재미있는 놀이를 생각한 표정이다.
“저기요!”
녀석이 갑자기 사람들 모인 곳으로 나가며 큰 소리로 말했다.
“뭐냐?”
큰아들이 제일 먼저 반응을 했다.
“수수께끼를 풀었어요. 명명명.......말고 수철이 밑에 팔찌. 그 뜻을 알았어요.”
저 녀석 어쩌려고. 난 마귀할멈 녀석의 행동에 무척 당황했다.
“오! 그래? 뭐냐? 그 뜻이?”
흡혈귀들이 호기심을 보이며 우르르 몰려들었다.
“조건이 있어요. 알려주는 대신. 여기 할아버지께 할머니 장례식 비용부터 내세요. 100만원씩 내시면 그 분께만 가르쳐 드릴게요.”
녀석이 당숙뻘 된다는 노인을 지목하며 말했다.
으으....... 저 녀석 나중에 그 반발을 어떻게 받으려고 저럴까. 가짜라는 것이 밝혀지면 죽이려고 할 텐데......... 난 녀석의 입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막을 수가 없었다.
큰아들부터. 둘째. 명이. 순서대로  지갑을 열어 돈을 당숙뻘 되는 노인에게 줬다.
“말씀드릴게요. 수수께끼는 우리 오빠가 풀었는데요. 비석 뒤에 가족들 이름이랍니다. 명수 명철 명이. 앞에 글자를 빼면 아래로 수철이. 즉 비석 밑에 팔찌가 묻혔답니다. 헌데. 이 말이 중요해요. 며칠 전 할머니께서 저와 나물을 캐러 갔는데. 그때 말씀이 팔찌 이야기를 하셨는데. 할아버지께서 노름으로 그 진품 팔찌는 날리시고 가짜를 만들어 놨다 하시더라고요. 그래도 모양은 예쁘다 하셨어요.”
녀석 말이 끝나기 무섭게. 흡혈귀들은 우르르 밖으로 뛰쳐나가 각자 차를 몰고 할아버지 산소를 향해 경주를 하기 시작했다.
“그게 사실이냐? 할머니 팔찌를 할아버지가 노름으로 날렸다는 이야기가?”
당숙뻘 된다는 노인이 녀석에게 물었다.
“네! 사실이에요. 모양은 예쁘니 저보고 갖고 싶으면 갖으라고 했어요.”
“그랬구나. 그런데? 어떻게. 할머니 장례식 비용 생각을 다 했니? 어린 것이?”
“아까 할아버지랑 리장님들께서 장례식 비용 걱정을 하시는 걸 들었어요.”
“허! 기특한 아이구나. 네 덕에 장례식 비용은 걱정을 덜었구나.”
노인은 녀석 머리를 쓰다듬으며 흐뭇해했다. 동네 사람들도 녀석을 기특하다고 한마디씩 했다.
녀석은 내 걱정도 한방에 날려 버렸다. 그 팔찌가 가짜란 이야기를 분명히 했으니. 가짜로 밝혀져도 녀석에게 해를 입히려는 생각은 안 할 것이다.
흡혈귀들을 한 방에 날려버린 마귀할멈. 녀석은 정말 마귀할멈이 맞다. 녀석 덕에 흡혈귀들은 가짜 팔찌를 찾아 부푼 꿈속에 성실히 장례를 치렀고. 조문객들은 흡혈귀 본 모습을 못 봤으니 흠이 될 수 없었다. 아쉬움이 하나 있다면. 녀석이 좀 성급하게 밝히는 바람에 더 얻어먹을 수 있는 불고기와 아이스크림을 한번으로 끝냈다는 것이다.

오호라 인간사 뉘라서 피할까
죽은 어미 애통함은 잊었는가.
피를 달라 고기를 달라 매달리니.
악마가 무엇일까. 흡혈귀가 무엇일까
자식 놈들이 악마 아니라 할까.
이놈들이 흡혈귀가 아니라 할까.
시뻘건 눈으로 몰려드는 흡혈귀들.
마귀할멈 한 방에 쫓아내니.
다시 자식들이 되어 돌아왔구나.

장례식은 순조롭게 끝났다.
놈들은 인심 쓰듯 부조금 남은 것을 동네 리장에게 맡기며 할머니 무덤에 비석이라도 하나 세워 달라고 부탁을 하고 하나 둘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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