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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시아 꽃피면 제1회 마귀할멈을 만나다
김 범 영  2012-11-30 10:46:14, 조회 : 617, 추천 : 51

   김 범 영 문학소설. [불펌을 금합니다. 불펌이나 타 게시판에 게시하시면 법적 조치를 취하게됩니다]
                    
                         아카시아 꽃피면
    
                     제1장 마귀할멈을 만나다.

여우재.
강원도 깊은 산골 마을.
효자로 소문난 총각이 아픈 어머니 때문에 늦은 밤에도 집에 가기위해 고개를 넘는데.
여우가 무덤을 헤치고 해골을 긁는 소리에 천년 묶은 여우를 목격해서....... 라는 전설이 있는 고개 이름이 여우재다.
내가 이 마을에 이사를 온 것은 노름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 18세 때였다.
이제 1년이 지나 내 나이 19살이 되었다.
나와 동네 동갑인 친구가 한 명 있었다.
안치혁 이란 이름을 갖은 키가 조그만 친구였다.
서울에서 이사를 온 나에게 그 친구는 늘 서울 이야기를 물어봤고.
난 서울 이야기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을 했다.
그리고 드디어 그 친구는 나에게 가출을 도와달라는 부탁을 했다.
주머니에 달랑 2만원이 있던 나는 결국 그 친구와 함께 가출을 하고 말았다.
시골길 완행버스 요금이 겨우 되는 2만원을 갖고 가출을 한 나는. 여우재를 떠난 지 불과 30분 만에 버스에서 내려야 했다.
아흔 아홉 굽이가 있다 해서 붙여진 칡 사리 고개 문재.
안치혁의 부모님이 아들이 가출한다는 것을 알고 1톤 트럭을 몰고 따라와 버스를 세운 것이다.
문재 정상을 조금 넘어간 버스는 그렇게 나와 그 친구를 내려놓고 휑하니 사라졌다.
“내년에 아카시아 꽃피면 내가 꼭 그곳으로 갈게.”
그 친구는 나에게 그 말을 남기고 부모님을 따라 갔다.
“가려면 네놈 혼자 갈 것이지 남에 귀한 자식을 꼬여서 못된 놈!”
그 친구 부모님은 나를 무섭게 노려보며 그렇게 욕을 하고 사라졌다.
“제기랄! 친구 부탁 들어준다는 것이 나만 뜻하지 않게 가출이라니........!”
달랑 주머니에 남은 돈 1300원을 꺼내 보며 나는 쓴 웃음을 지었다.
“그래! 어차피 아버님께 가출한다고 인사말까지 편지로 남기고 왔으니 돌아갈 수는 없고 가는데 까지 가 보자.”
난 그렇게 마음을 다스리며 안흥 땅을 향해 문재를 내려가기 시작했다.

흑.......흑.........
안흥 땅을 지나 오원이란 마을을 막 지날 때였다.
오랫동안 걸어 온 내 몸이 녹초가 다 된 상황에서 이미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하는 늦은 오후였다.
어디선가 울음소리가 들려 나도 모르게 그 울음소리의 근원지를 찾았다.
길가 자그마한 소나무 아래 웅크리고 앉아 우는 소녀를 발견했다.
소녀는 몹시 남루한 옷을 입고 있었는데. 머리도 헝클어지고 누구에게 많이 얻어맞은 모습이었다.
“너? 누구한테 맞았니? 왜 울고 있어?”
길가에서 울고 있는 아이를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해서 그렇게 물었다.
“오빤. 어디 살아?”
귀여운 여동생이 없었던 나는 녀석이 오빠라 불러주자 그냥 뿌리치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고 앉아있는 녀석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오빠? 그래! 이 오빤 시골이 싫어서 서울로 가는 중이야.”
난 사실대로 이야기를 했다.
“오빠! 나도 데려가 줘!”
이제 초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새엄마의 횡포에 중학교도 못 들어간 불쌍한 소녀. 그 아이 이름은 강 지현. 나이 13세. 똑똑하지 못한 아빠가 일터에 나간 사이 새엄마는 아이를 때려 내 쫓은 것이다. 얼굴에 멍이 들고. 손에도 상처투성이다. 녀석이 날 바라보는 눈은 간절했다.
녀석은 무척 슬픈 눈을 갖은 아이였다.
그런 두 눈에 눈물을 가득 담고 매달리는 지현을 뿌리치지 못했다.
그렇게 지현과 나는 동행을 하게 되었다.
당장 먹을 것도. 잠을 잘 곳도 해결을 해야 하는 상황.
툭. 툭.
비까지 한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난 지현을 데리고 우선 비를 피해 다리 밑으로 들어갔다.
“여기 잠깐만 기다려!”
난 지현을 다리 밑에 앉혀놓고 근처 구멍가게로 달려갔다.
“라면 두 봉지 주세요.”
컵라면 살 돈이 모자라서. 650원짜리. 라면 두 봉지를 사니 주머니에 남아있던 1300원도 사라졌다.
다리 밑으로 걸어가며 길가에서 버려진 양은그릇을 하나 주어 들었다.
다리 밑에서 마른 검불들과 나뭇가지를 모아놓고 불을 피웠다.
“춥지?”
난 지현을 불가에 앉게 하며 물었다.
“응! 조금.”
지현은 무척 추운 모양이다 온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그런 녀석이 나에게 부담을 주기 싫었는지 조금 춥단다. 강원도 산골 봄은 춥다. 다리 옆 하천 둑엔 아카시아 나무 몇 그루가 서 있었는데 하얗게 꽃이 피었다.
아카시아 향기가 다리 밑까지 은은하게 퍼졌다.
“팝콘 나무야. 저거........!”
지현이 아카시아 나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팝콘나무?”
“응! 저 꽃이 마치 팝콘 같잖아. 난 우리 새엄마가 밥을 안주고 내 쫓으면 저 팝콘 나무를 보며 팝콘 먹는 생각을 했어. 그럼 배가 부르거든.”
팝콘나무. 정말 하얀 꽃들이 마치 팝콘을 소복하게 담은 모양이다.
“그랬어? 저 꽃은 맛도 좋은데.”
“난 키가 작아서 많이 따먹지는 못했어. 낮은 가지에 있는 꽃은 조금 먹어 봤지만........ 맛은 좋더라. 오빠도 나처럼 배가 고팠던 모양이구나?”
“응! 나도 배가 많이 고팠던 때가 있었단다.”
“왜? 오빠 엄마도 나처럼 계모야?”
“아니. 난 엄마가 없어. 아빠랑 둘이서 살았거든. 앞으로는 아마 너처럼 나에게도 계모가 생길 것 같지만........”
“생길 것 같지만? 그게 무슨 뜻이야?”
“요즘 우리 아빠 좋다고 따라 다니는 과부댁이 한분 계시거든. 하하.......”
난 얼마 전부터 아버지를 좋다고 따라다니는 이웃동네 과부댁을 떠올리며 웃었다.
“왜? 웃어? 그 과부댁이 못생겼어? 아님 뚱뚱해?”
“아니 젊었을 땐 무척 미인이셨던 것 같아. 뚱뚱하지도 않고.”
“그럼 왜 웃어?”
“아빠가 노름을 좋아 하시거든. 그 때문에 살림살이는 늘 가난했지.”
“그래서 오빠도 배가 고팠던 것이구나? 그런데? 그 과부댁도 아빠처럼 노름을 좋아 하셔?”
“응! 둘이 아주 죽이 척척 맞아. 둘이 합치면 아마도 부부 도박단이 될 거야. 하하........”
난 주어온 양은그릇에 흐르는 냇물을 담아 불에 올려놓고 있었다. 라면이라도 끓여 먹을 생각이다. 나도 배가 고프지만 지현이 무척 배가 고픈 모양이었다.
아까부터 지현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자주 들렸다.
“오늘 저녁은 그냥 라면으로 때우자. 오빠가 내일은 맛있는 걸 사줄게.”
“라면이면 어때. 배만 안 고프면 되지. 사람은 말이야. 지키지 못할 약속은 안하는 것이 좋아.”
“응? 무슨 뜻이야?”
“오빠 주머니에 돈이 없다는 것 다 아는데........ 어떻게 내일은 맛있는 걸 사줄 수가 있겠어? 그냥 하는 말이라도 난 믿고 기대게 되니깐.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마.”
지현은 나이만 어리지 생각하고 말하는 것은 이미 애늙은이가 다 돼 있었다. 아마도 너무 일찍부터 계모로부터 심한 학대를 받아 온 것이 어린 지현이 일찍 철이 들게 만든 것이리라.
“다른 사람한테는 몰라도 지현이 너에게만은 꼭 약속을 지킬게.”
난 꼭 그렇게 하리라 마음을 다짐하며 말했다.
라면 물이 끓기 시작했다.
“내가 끓일게.”
지현이 라면 봉지를 내 손에서 뺏다시피 가져가 뜯고 있었다.
“네가 라면도 끓일 줄 알아?”
“피....... 라면뿐이겠어? 오빠가 나랑 같이 있으면 오빤 음식 걱정은 안 해도 돼. 매일 계모가 나에게 밥해라 찌개 끓여라. 설거지해라. 빨래해라. 안 시킨 일이 없으니깐.”
“그렇구나. 헌데? 나랑 같이 있으면? 그게 무슨 뜻이야?”
“오빠도 갈 곳도 없고. 무작정 서울 가는 것 아냐?”
“응! 그래! 정해진 곳은 없지.”
“그러니깐. 나랑 같이 있자는 거야. 이렇게 만나는 것이 어디 쉬운 줄 알아? 이건 운명이잖아. 헤헤.......”
갑자기 지현이 애교를 떨며 웃었다. 어른들이나 하는 운명 어쩌고 해놓고 스스로 쑥스러운 모양이다.
“뭐? 운명? 이 쬐끄만 녀석이 웃겨.”
나도 어이없어 웃고 말았다.
지현은 끓는 물에 라면보다 스프를 먼저 넣고 있었다. 어디서 국물부터 만들어 라면을 끓이는 것을 본 모양이다.
지현이 라면을 넣고 나무젓가락으로 라면을 풀며 끓이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난 그래도 아버지 품에서 행복하게 자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 그래도 고등학교를 다니다 비록 강원도로 이사를 오느라고 졸업은 못했다 하더라도 지현이 보다는 형편이 나은 편이었다.
지현이 모습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한 없이 메어지고 있었다.
누굴 위해 이렇게 불쌍하다는 생각을 해본 것은 처음이다.
저 녀석. 내 친동생 삼았으면 좋겠다. 앞으로 저 녀석을 내 친동생처럼 보살펴 줘야지. 하는 생각이 자꾸만 마음 깊은 곳에서 생겨나기 시작했다.
“뭘 봐? 라면이나 먹자.”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나를 보고 지현이 나무젓가락을 주며 말했다.
“응! 그래! 먹자!”
난 얼른 지현이 손에서 나무젓가락을 받아들고 라면 그릇 앞으로 다가앉았다.
“아직은 우리 친하지 않으니깐 한 그릇에 같이 먹을 순 없잖아? 라면 봉지에 덜어서 먹기. 어때?”
지현이 라면 봉지를 탁탁 털어서 내 손에 쥐어주며 말했다.
“무슨 말이야? 친하지 않아서?”
“오빠랑 내가 친하면 같은 그릇에서 밥을 먹어도 좋다는 뜻이야. 그렇게 친해지면.......”
“음.......! 무슨 말인지 알겠다. 그렇게 하자. 얼른 먹어라! 많이 먹어.”
난 지현이 말뜻을 이해했다. 서로 친해지면 허물없이 지내도 좋은데 아직은 아니라는 뜻 같았다. 녀석이 정말 애늙은이였다.
무척 배가 고팠는지 지현은 정신없이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내가 서너 젓가락 먹었을 때 이미 라면 그릇은 바닥을 드러냈다.
“.........!?”
라면 그릇이 바닥을 드러내자 녀석이 내 생각을 했는지 미안한 표정으로 날 처다 보았다.
“아! 배부르다.”
난 지현이 미안해할 것 같아 배부른 척 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후루룩.
지현은 라면 국물까지 말끔히 비웠다.

팝콘나무.
녀석 말대로 팝콘을 가득 담은 그릇처럼 보이는 아카시아 꽃이 향기를 가득 담고 내 눈앞에 있었다.
꽃을 따서 한입 먹었다.
힐끗 뒤돌아보니 지현은 그릇을 냇물에 닦고 있었다.
난 배를 아카시아 꽃으로 채우려고 연거푸 따서 입으로 가져갔다.
얼마나 아카시아 꽃을 따서 먹었을까. 지현이 생각이 났다.
난 아카시아 꽃을 한줌 따서 들고 지현을 갖다 주려고 천천히 걸어왔다.
“허.......!”
어이없는 모습에 난 할 말을 잃었다.
다리 밑 모래위에 지현이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난 웃옷을 벗어 지현을 덮어주고 나뭇가지를 주어다 불을 피우기 시작했다.
지현이 추위를 막아주려는 의도에서였다.
그렇게 나무를 주어다 불을 피우던 나도 깊어지는 밤을 견디지 못하고 깜빡 잠이 들고 말았다.

으으.......
무엇인지. 내 배를 무겁게 누르는 고통에 난 잠에서 깼다.
“.......!? 이 녀석이!”
지현이 내 배를 베개 삼아 아직도 곤히 자고 있었다.
이미 날은 밝아오는데.......
어디 가서 노동일이라도 하려면 일찍 움직여야 하므로 난 슬그머니 지현이 얼굴을 쓰다듬으며 지현을 깨웠다.
“오빠! 깼어?”
이 녀석 잠을 잔 것이 아닌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지현을 덮어 주었던 내 웃옷이 나를 덮고 있었다. 녀석이 잠에서 깨어 나를 덮어 준 것이리라.
“오빠가 추워하기에 내가 오빠 배를 따뜻하게 해준다는 것이 그만.”
지현이 얼굴에 홍조가 돌았다. 쑥스러운 모양이다. 내 배를 따뜻하게 하려고 얼굴로 내 배를 덮어 줬다는 뜻인데....... 아무튼 녀석과 나의 첫 스킨십이기에 쑥스럽다는 표정일 것이다.
“어! 그랬어? 얼른 움직이자! 오빠가 약속한 것을 지키려면. 얼른 횡성까지 가야해.”
나도 더 이상 녀석이 쑥스러워 할 것을 염려해서 서둘러 떠날 준비를 하기위해 일어섰다.
“약속? 횡성?”
“엉! 횡성가면 인력시장이 있을 거야.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지. 걸어서 서울까지 갈 수는 없잖아.”
“아! 그런 뜻이었어? 역시 오빠를 믿을 수 있겠어. 알았어! 얼른 가자!”
녀석이 활짝 웃었다.
녀석은 서둘러 냇물에 세수부터 했다.
“.......!?”
녀석이 세수를 마치고 날 바라보는 눈치가 나보고 얼른 세수를 하라는 표정이다.
“알았어! 완전 시집살이를 하는 느낌이네.”
난 투덜거리며 세수를 했지만 속으로는 무척 좋았다. 녀석이 정말 내 동생처럼 느껴지기 시작  했기 때문이다.
세수를 대충 마친 나는 서둘러 녀석과 함께 횡성으로 향했다

새말인력.
횡성 시내로 들어가는 길목에 위치한 인력공사.
내가 지현과 함께 그곳에 도착을 한 시간은 아침 6시 조금 넘어서였다.
“오늘 일 좀 하려고 나왔습니다.”
난 인력공사 사장에게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부탁을 했다.
“질통 져 봤어?”
사장은 나를 아래위로 힐끗 훑어보며 물었다.
혼자 다 먹었는지 살이 뒤룩뒤룩 찐 30대 중반 쯤 되는 남자였다.
머리까지 짧게 밀어 버린 모습이 무척 험상궂게 보였다.
“네! 그럼요.”
난 얼른 대답했다. 질통이란 건설현장에서 등에 짊어지고 모래나 자갈 등을 나르는 통을 말한다. 아버지의 노름으로 늘 식량이 부족했던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틈틈이 해본 일이였다.
“음! 그럼.......! 이봐! 김씨!”
사장은 건물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50대 남자를 불렀다.
김씨라 부르는 50대 남자는 얼른 담배를 끄고 사무실로 뛰어 들어왔다.
“오늘 얘를 데리고 가!”
나이로 따지면 한참 많을 김씨에게 사장은 반말을 하고 있었다.
“따라와!”
사장의 반말에 비위가 상한 김씨는 나에게 짜증스럽게 말했다.
“제기랄! 오늘 첫 단추가 좋지 않군!”
난 속으로 투덜거리며 김씨를 따라갔다.
“차에 타라!”
얼마나 오래 됐는지. 금방 떨어져나갈 듯 덜컹거리는 녹슨 1톤 더블 캡 화물차 뒷좌석 문을 열어주며 김씨가 말했다.
화물차 뒷좌석엔 40대 남자가 한 명 이미 타고 있었다. 안을 들여다보니 앞좌석에도 한 명 타고 있었으나 뒷머리만 보여 자세히 알 수는 없었다.
“얘도 좀.......?”
난 지현을 보여주며 같이 탔으면 하고 김씨 허락을 기다렸다.
“누군데?”
김씨는 지현이 아래위를 한 번 훑어보더니 퉁명스럽게 물었다.
“제 친동생입니다.”
난 얼른 대답했다.
“흠......!”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나와 지현을 다시 훑어보는 김씨.
“오빠랑 친척집에 다녀오다가 소매치기 당했어요.”
눈치 빠른 지현이 두 눈에 눈물을 가득 담고 김씨를 처다 보며 말했다.
“저런!”
차 안에 있던 사람이 먼저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였다.
“타라!”
김씨가 마지못해 허락을 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지현이 얼른 차에 올라탔다.
부릉. 부릉.
한참을 시동을 결려고 노력한 끝에 겨우 화물차 시동이 걸렸다.
“자네 성이 뭔가? 어떻게 불러야 하지?”
옆에 앉았던 40대 남자가 내 이름을 물어봤다.
반짝.
지현이 두 눈에 이채가 발했다.
아직 지현도 내 이름을 몰랐던 것이다.
“성 기정입니다.”
난 얼른 대답했다.
“오! 그래! 성군! 노가다 일은 많이 해봤나?”
“네! 학교 다니며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알바로? 성실한 학생이구먼.”
40대 남자는 고개를 끄떡이며 나를 대견스럽다는 표정으로 봤다. 아마도 그 남자 자식 또는 형제 중 성실하지 못한 사람이라도 있다는 뜻인지.
“넌? 중학생이지?”
40대 남자는 지현을 보고 물었다.
“네! 전 성 지현이라고 해요.”
지현이 냉큼 대답했다. 헌데. 성 지현이라니........ 녀석 참 눈치도 빠르고 아무튼 못 말리는 애늙은이가 분명했다.
덜컹덜컹.
우릴 태운 화물차는 심하게 덜컹거리며 시골길로 달리고 있었다.
“오늘 일을 할 곳은 서원면에 있는 축사를 짓는 현장이야. 2층 살림집에 보일러를 깔 작업이니까 질통은 그리 많이 지지는 않을 것이야. 일을 할 동안 동생은 뭘 하고 있지?”
40대 남자가 나와 지현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전 근처에서 놀고 있을 게요 걱정 마세요.”
갑자기 대답하는 지현이 두 눈에 이채가 발했다. 뭔가 재미있는 놀이가 생각난 모양이다.
“놀다가 점심 시간되면 와라! 축사 주인집에서 밥해주니까 12시 전에 미리 와서 기다려라!”
김씨가 차를 세우며 지현이를 돌아다보며 말했다.
인력공사 사장한테 반말 들은 것에 대한 짜증스런 마음이 좀 풀렸는지 조금은 자상한 말투였다.
“어제 사서 간식으로 먹던 빵이다. 아직 상하지 않았으니 가지고 가서 놀다가 배고프면 먹어라!”
앞좌석 조수석에 앉았던 남자가 뒤돌아보며 검은 봉지에 든 것을 지현에게 줬다.
이제 갓 30세가 되었을까. 무척 젊고 잘생긴 남자였다.
“감사합니다!”
지현이 공손하게 두 손으로 받았다.
하는 행동을 보면 무척 가정교육이 잘 된 녀석 같은데. 언제부터 새어머니 손에서 학대를 받은 것인지. 나를 처다 보는 지현에게 난 눈을 찡끗 해 보이며 차에서 내렸다.
골짜기 깊은 곳에 축사를 짓는 현장에 도착을 한 것이었다.
“오빠! 파이팅!”
지현이 나를 보며  주먹을 쥐어 보였다.
“그래! 이따가 보자. 멀리 가지 말고.”
난 걱정스런 눈으로 지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지현이 빙긋 웃어 보인다. 기특한 녀석. 저게 진짜 내 동생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난 그런 생각을 하며 창고에서 질통과 삽을 들고 모래더미로 향했다.
탕탕.
갑자기 무슨 소리가 들려 보니 지현이 회색 한말짜리 물통을 거꾸로 들고 통속에 들어간 이물질을 털어내고 있었다.
“저 녀석 뭣 하려고 저러지.”
난 고개를 갸웃거리며 작업을 시작했다.
정말 점심시간이 다 되도록 지현이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 가서 재미있게 놀고 있는지 걱정은 되지만 찾아다닐 수도 없고. 불안한 마음에 일을 하면서도 여기저기 두리번거렸다.
“물통 들고 저기 계곡으로 갔다네.”
내 걱정을 아는지 40대 남자가 곁으로 다가오며 슬쩍 한마디 했다.
“계곡으로요?”
난 도무지 지현이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투로 되물었다.
“아마 물고기 잡으러 간 모양일세.”
“개구리 잡으러 간 것 아닐까요?”
갓 30세가 돼 보이는 잘생긴 남자가 시멘트를 하나 어깨에 메고 가며 말했다.
“때가 어느 땐데 개구리야? 가재면 몰라도.”
40대 남자가 말도 안 된다는 투로 말했다.
“여긴 높은 지대라 아직 추워요. 개구리가 아직 물속에 있지 않을까요?”
잘생긴 남자 말처럼 지대가 높아 무척 쌀쌀했다.
“아무리 추워도 아카시아 꽃이 피는 계절에 무슨 개구리가 물속에?”
40대 남자가 자신의 생각에 확신이 없는지 고개를 갸웃 거렸다.
이 녀석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물통을 들고 계곡으로 갔는지 나는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식사들 하세요!”
노란 점퍼를 입은 주인아주머니가 축사 신축현장 옆에 놓인 컨테이너 문을 열고 나와 큰 소리로 말했다.
“네! 갑니다! 여보게들 밥 먹으러 가세.”
40대 남자가 대답을 하며 나와 잘생긴 남자에게 말했다.
“지현아! 지현아!”
난 지현이가 갔다는 계곡을 향해 큰 소리로 불렀다.
“오빠! 나 여기 왔어.”
지현이 계곡으로 난 숲길에서 달려 나오며 손을 흔들었다.
난 지현이 달려오길 기다리고 서 있었다.
“어디 갔었어? 뭘 잡으려고?”
난 지현이 옷이 물에 젖은 것을 보고 물었다.
“잡긴......! 어서 가서 밥이나 먹자. 돈이 없을 땐 누가 준다는 밥은 알뜰하게 챙겨 먹어야 돼. 설마 내가 점심시간에 안 올까봐? 걱정했어?”
갑자기 녀석이 징그럽게 미소를 지으며 날 처다 봤다.
“자랑이다. 돈 없는 게.”
난 손을 내밀었다. 무심코 지현을 데리고 식당으로 가려는 생각으로 한 행동인데 녀석이 냉큼 내 손을 잡는다. 녀석의 손은 무척 차가웠다. 한나절 동안 물손에서 논 것이 틀림이 없다. 도대체 뭘 하고 놀았을까?
“얼른 와라! 밥 먹자!”
김씨가 컨테이너 박스 문 앞에서 나와 지현을 불렀다.
“네!”
난 얼른 대답하고 부지런히 걸어갔다.
차가운 녀석 손을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해주려고 두 손으로 녀석 손을 감싸 쥐며 걸어갔다.
“쯧쯧........ 어쩌다가 소매치기를 당해서.”
이미 나와 지현이 이야기를 들은 듯 주인아주머니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나와 지현에게 밥과 국을 떠줬다.
“잘 먹겠습니다!”
지현이 씩씩하게 인사를 하고는 정신없이 밥을 먹기 시작했다.
이 녀석 분명 아침은 굶었어도 간식으로 먹던 빵을 갖고 갔는데......... 며칠 굶은 녀석 갔네.
난 지현이 밥을 먹는 모습에 의문이 생겼으나 그냥 배가 고픈 모양이구나 하고 나도 배가 고팠기에 열심히 밥을 먹었다.
내가 밥을 다 먹었을 땐 또 지현이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허! 그 녀석! 뭘 하기에 저리 바삐 가나.......”
나보다 더 궁금한 사람은 김씨 같았다.
“제가 설거지 끝내고 한번 가 볼게요. 동생은 염려마세요.”
주인아주머니는 내가 지현을 걱정하는 표정을 보고 그렇게 말했다.
“저 계곡에 뭐가 있나요?”
잘생긴 남자도 무척 궁금한 모양이다. 주인아주머니에게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거긴....... 고래실논밖엔 없는데.”
주인아주머니도 도무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이다.
“고래실논이라면? 미꾸라지 잡나.”
김씨도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한마디 했다.
“옷에 물기만 조금 있지 깨끗하던데요. 미꾸라지를 잡으면 옷도 더러워졌을 텐데?”
40대 남자가 당치 않다는 투로 말했다.
“아!”
갑자기 주인아주머니가 뭔가 알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죠?”
김씨가 얼른 물었다.
“고래실논 위로 올라가면 조금씩 샘물이 흐르는 도랑이 나오는데. 거기 아마 가재가 많을 거 에요.”
주인아주머니가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표정이다.
“네......! 가재를 잡는 모양이군요. 헌데? 가재를 잡아서 뭐에 쓰려고? 오빠 볶아 먹으라고?”
40대 남자가 고개를 갸웃 하며 물었다.
“글쎄요........”
주인아주머니도 김씨도 잘생긴 남자도 나도 모두 고개를 갸웃 했다.


다시 작업을 하는 동안 지현은 한 번도 내려오지 않았다.
오후 간식을 챙겨 준 주인아주머니가 지현이 놀러간 계곡으로 올라가는 모습이 내 눈에 보였다.
난 조금 안심이 되는 내 마음을 느끼며 이미 그 녀석과 정이 들었구나 하고 놀랐다.
하루밖에 안 됐는데. 벌써 걱정을 하는 내 마음이 정말 그 녀석을 동생처럼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주인아주머니가 계곡에 올라가고 조금 있으니. 지현이와 함께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녀석 손엔 묵직하게 보이는 물통이 들려있었다.
“뭐에요? 뭘 잡았니?”
김씨가 무척이나 궁금했던 모양이다. 쪼르르 달려가며 주인아주머니와 지현에게 물었다.
“제 생각대로 가재에요. 보세요. 얼마나 많이 잡았나.”
주인아주머니가 지현이 손에 들린 물통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회색 물통이라 안에 내용물은 겉으로 보이지 않았다.
김씨가 물통 입구에 눈을 갔다가 대며 들여다보고 있었다.
“와! 반통은 되겠다. 많이도 잡았네.”
김씨가 놀랍다는 투로 소리쳤다.
“서울 사람들과 관광객들한테 팔면 5만원은 받는 답니다.”
주인아주머니가 대견스럽다는 듯 지현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빙긋 웃었다.
“서울사람들이? 가재를 뭣 하려고?”
30대 남자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요즘 도시에선 술안주로 가재와 개구리가 최고 인기인데. 개구리는 못 잡게 법으로 막아 놓자 가재가 멸종되는 거죠.”
잘생긴 남자가 뭔가 불만스러운 투다.
“멸종이고 나발이고 우선 사람이 살아야지. 사람보다 중요한 것이 어디 있어? 생존을 위해 잡는 것은 죄가 아니야.”
40대 남자가 잘생긴 남자 말에 핀잔을 주고 있었다.
“그거 나한테 팔아라!”
언제 나타났는지 몸집이 큰 50대 남자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장님 오셨어요?”
김씨가 얼른 인사를 했다. 축사주인 남자였다.
축사 주인은 주머니에서 오만원권 한 장을 꺼내 지현에게 줬다. 지현이 물통을 축사 주인에게 넘겨줬다.
“나 좀 보자!”
축사 주인이 지현이 표정을 살피더니 한쪽으로 지현을 데리고 갔다. 둘은 뭔가 몇 마디 말을 주고받더니. 지현이 녀석이 점퍼 속에서 검은 비닐봉투를 꺼내 축사 주인에게 줬다. 축사 주인도 다시 오만원권 한 장을 꺼내 지현에게 주고 지현이 등을 손바닥으로 토닥거리더니 물통과 검은 비닐봉투를 들고 검은색 승용차를 타고 사라졌다.
“저 녀석 저건 뭐지? 검은 비닐봉투에 들어있는 저것을 잡으러 다닌 모양인데. 가재는 부수입이고 저게 진짜 같은데.”
난 무척 궁금했지만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다. 모두들 지현이 검은 비닐봉투를 축사 주인에게 건네주는 것을 못 본 모양이다.
“사장님도 술안주로 가재를 좋아하시나 봐요.”
30대 남자가 당연하다는 투로 말했다.
“아뇨. 저분은 다시 살려주려는 모양이에요.”
주인아주머니가 묘한 미소를 지으며 주방으로 사라졌다.
“다시 살려주러?”
김씨도 잘생긴 남자도 나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현이도 손에 들고 있는 오만원권 두 장을 만지작거리며 뭔가 불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수고했어요. 얼른 동생 데리고 가세요.”
주인아주머니가 슬그머니 내 주머니에 일당을 넣어주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용역 소개비는 제가 별도로 지급 할 것이니 안심하시고 가세요.”
내가 머뭇거리자 주인아주머니가 다시 말했다.
김씨를 바라보니 고개를 끄떡거리며 날 보고 미소를 짓는다.
40대 남자도. 잘생긴 남자도. 30대 남자도 모두 나에게 잘 가라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떡거렸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난 공손히 인사를 하고 지현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녀석의 차가운 손이 내 손을 꼭 움켜쥔다.
“이 고개를 넘으면 양동이란 마을이 나오는데 거기 기차가 지나가. 기차를 타면 서울 가기 편할 거야. 잘 가!”
하루 만나서 같이 일했다고 정이 든 것인지 아니면 나와 지현이 불쌍해 보였는지 김씨는 마지막 인사를 하는데 그 목소리가 조금 떨리고 있었다.
“가다가 경운기라도 지나가면 얻어 타고 가렴. 걸어서 가기엔 너무 멀어.”
주인아주머니가 흰색 비닐봉투에 뭔가 담아 가지고 지현을 주며 말했다.
“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지현이 주인아주머니와 다른 사람들을 보며 인사를 했다.
난 지현이 손을 꼭 잡고 그 곳을 떠났다.

“아까 그 검은 비닐봉투에 든 것은 뭐야?”
고개를 넘어 내리막길을 걸으며 지현에게 물었다.
“도롱룡 알이야.”
“도롱룡?”
“응! 그거 약으로 쓴다나 뭐라나. 남자들한테 좋다던가. 아무튼 비싼 거야. 그 아저씨가 그냥 오만원에 팔라고 떼를 써서........”
“아하! 그래서 아까 돈을 받고 뭔가 심기가 불편했구나?”
“아냐! 그 가재를 아주머니가 살려줄 것이라고 했잖아?”
“응! 그랬지.”
“근데 아저씬 그거 술안주 한다고 했단 말이야. 간장에 졸여 먹으면 술안주로 일품이지. 했거든. 괜히 나만 나뿐 사람 된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빴던 거야.”
“하하....... 누가 그래? 네가 나쁘다고? 생존을 위해 잡는 건 나쁜 게 아니라고 하잖아. 잘했어. 아주 잘한 거야.”
난 녀석과 맞잡고 가던 왼손을 내 몸 쪽으로 잡아당기며 오른손과 바꿔 잡고 왼손으로 녀석 어깨를 포근하게 감싸 줬다. 녀석의 얼굴이 내 가슴을 파고든다.
몸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녀석이 지금 울고 있는 것이다.
“왜? 왜 그래?”
“그냥....... 아빠 생각나서.”
“아빠? 그래! 너의 아빤 어떤 분이셔?”
나도 그 것이 무척 궁금했다. 자식을 새어머니가 그렇게 학대를 하는데. 그걸 아빠가  모를 리 없었다. 그냥 방치한다는 것이 납득이 안됐다.
“아빤 장애인이야. 뇌성마비래. 그래서 엄마가 아빠도 버리고 나도 버리고 떠난 것이고. 지금 새엄만. 얼마 안 되는 재산을 노리고 들어 온 것이라고 동네 사람들이 수근 대는데. 모르겠어. 아무튼 무서워. 새엄마는........”
“그랬구나! 녀석! 그래도 반듯하게 자랐어. 기특하게.”
“뭔 소리야? 뭐가 반듯하고 기특해? 오빠가 뭘 알아. 나에 대해서. 겨우 하루 같이 있어놓고.”
“엉?”
“이거 알아? 우리 동네 친구들이 날 왜 마귀할멈이라고 부르는지? 모를 거야.”
“마귀할멈? 네가? 왜?”
“없는 것도 뚝딱 만들어내는 내 손도 그렇지만....... 내 눈에 거슬리면 두 발 못 벋고 잔다고 하더라. 히히........”
“뭔 소리야?”
“봤잖아? 오늘 10만원 뚝딱 벌고. 먹을 것 이렇게 받아 오는 것.”
녀석이 주인아주머니가 준 흰 봉투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봉투에는 주인아주머니가 특별히 준비를 한 삶은 계란과 찐 고구마가 들어 있었다.
“그래! 그건 오빠도 놀랐어! 어떻게 그런 생각을? 가재와 도롱뇽 알이라니? 그건 그렇고. 두 발  못 벋고 잔다는 것은?”
“히히....... 나중에 보면 알아. 급하긴.”
녀석이 묘한 미소를 짓는다.
“나중에? 우린 서울까지만 같이 가는 게 아니었어?”
“이렇게 어린 친동생을 그 험한 서울 바닥에 혼자 살아가게 버린다고?”
“친동생?”
“아까 그랬잖아. 강지현이 아니라 성지현이라고. 잊었어? 오빠 입으로 친동생이라 해놓고?”
“그거야....... 그분들한테 변명을 하다 보니........”
“뭐야? 벌써 내가 귀찮아 졌다는 거야?”
“아. 아니야.”
“그럼 서울 가서도 같이 있자. 응? 어차피 오빠도 갈 곳도 없다며?”
“그거야 그렇지만....... 너랑 같이 있으려면 방을 얻어야 하는데....... 우린 돈이 없잖아.”
나도 사실 녀석과 이미 정이 들어서 헤어지기가 쉽지는 않았다. 돈이 문제였다. 혼자 같으면 공장 기숙사라도 들어가거나. 아는 사람에게 잠시 신세를 져도 되는데. 녀석이 문제였다. 그렇다고 녀석 말대로 어린 녀석을 서울에 혼자 살아가라고 한다는 것 또한 말이 안 되는 것이다. 얼마나 험악한 세상인데.
“그럼 우리 서울까지 가지 말고. 양평 근처에 방을 얻자. 농촌엔 그래도 방이 쌀 거야.”
“양평근처? 네가 양평을 어떻게 알아?”
“히히....... 이래서 세상은 돌고 도는 거라고 했나봐. 그 무서운 새엄마 고향이 양평이라 하더라.”
“그랬구나! 그럼 방이야 시골에 얻고 산다고 하지만 일이 있어야지. 돈을 벌어야 할 것 아냐?”
“쳇! 이 오빠 이제 보니 갓 우리를 나온 병아리네. 세상을 몰라요. 세상을. 농촌이라고 일이 없나? 요즘 전원주택이다 뭐다 해서 농촌에 얼마나 일이 많은데. 특히 양평은 서울 사람들이 전원주택지로 가장 선호하는 지역이라 하더라. 거 뭐라 하더라.......! 전원주택 말고....... 아하! 귀농이라 하더라. 양평은 전원주택지로 좋아 한다면 여주는 귀농지로 좋아 한다나. 뭐라나. 그러니....... 여주와 양평 중간 정도 시골마을에 방을 구하자. 응?”
“그건 왜?”
“아둔하긴! 이리가면 전원주택 공사가 있고. 이쪽으로 가면 귀농 준비하는 일거리가 많고. 그 중간에 우리가 방을 얻으면 일거리가 많잖아. 또 나도 중학교를 다녀야지. 안 그래?”
“중학교를? 네가?”
“엥? 이 오빠가 무정하네. 어떻게 친동생을 학교도 안 보내려고 생각해. 아무리 그래도 대학까지는 보내야지. 요즘 대학은 나와야지 초등학교 졸업이 뭐야? 창피하게.”
녀석이 내 눈치를 살피며 배시시 웃는다. 이미 내가 자기가 하자는 대로 할 것이라고 확신하는 표정이다. 정말 나도 매정하게 녀석을 밀어낼 수가 없었다.

털털털.......
경운기 하나가 오고 있었다.
“아저씨! 아저씨!”
지현이 내 손을 놓고 경운기를 향해 달려갔다.
“뭐냐?”
이미 경기도 땅이라 그런지 조금은 까칠해 보이는 말투지만. 자상한 표정의 노인이다.
“양동까지 가는 데요 좀 태워다 주세요. 네?”
지현이 애교를 부리며 부탁을 한다.
“타라!”
노인이 경운지 뒤 짐칸을 머리로 힐끗 가리키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오빠 빨리 와!”
녀석이 노인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경운기 짐칸에 올라타며 나를 부른다.
“감사합니다!”
나도 노인에게 공손히 인사를 하고 경운기 뒤 짐칸에 올라탔다.
털털털......
경운기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녀석이 경운기에 앉아 다리를 펴고 주무르는 것이 무척 다리가 아팠던 모양이다.
“다리가 아팠구나?”
내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녀석이 날 처다 보며 고개를 흔든다. 경운기 소리에 크게 말을 하지 않으면 듣기 힘들었다.
걸어오면서 그렇게 쫑알거리던 녀석이 입을 굳게 닫았다.
녀석이 입을 닫으니 나도 자동적으로 입을 굳게 닫고 말았다.
냇가로 시원하게 뚫린 아스팔트 도로위로 우릴 태운 경운기가 달리고 있었다.
시골 도로라 지나가는 자동차도 보이지 않았다.
빨간 뾰족한 지붕에 하얀 통나무 주택 굴뚝에서 하얀 연기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것을 보니 아직은 날씨가 추운 모양이다.
꼬르륵.
내 배에서 배고픈 신호를 보내는 것이 이미 저녁 시간이 지난 것을 알 수 있었다.
“돈을 벌면 우선 핸드폰이라도 사야지. 시간도 알 수 없고. 녀석과 통화도 해야 하고........”
여기까지 생각을 한 나는 스스로 놀라고 있었다. 낮에 일터에 나가 녀석과 통화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이다. 물론 이미 내 마음속엔 녀석을 학교에 보내고 수시로 잘 있나 전화를 하고. 하는 일상생활을 한 폭의 그림처럼 그리기 시작했다.

녀석의 말대로 우린 여주와 양평 중간 마을인 대신면 곡수리 삼거리에 위치한. 어느 할머니 댁에 방을 얻어 삶을 시작했다.
시골집이지만 기름보일러가 설치돼 있는 깔끔한 방이었다.
한 달에 보증금 없이 20만원씩 주기로 했다.
자식들이 모두 도시로 나가고 혼자 외롭게 사는 할머니는 마치 자식처럼 우릴 좋아했다.
“큰 물고기는 큰물에 살아야 돼.”
녀석은 대신면에 있는 중학교를 마다하고 버스로 30분이나 걸리는 양평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남긴 말이다.
난 그 녀석 말대로 같은 동네에서 공사를 맡아 이곳저곳으로 일을 나가는 조경업자를 따라 양평 쪽 전원주택 일과 여주 쪽 귀농주택 공사를 하러 다니는데 제법 일거리가 많아 한 달에 20일은 일을 했다.
같이 생활 한 지 1달이 조금 넘어서. 난 녀석 핸드폰과 내 핸드폰을 샀다.
“히히....... 이젠 오빠가 낮에 내 소식이 궁금하구나? 그럴 줄 알았어.”
녀석이 마치 내가 핸드폰을 사다 줄 것을 미리 알았다는 투다.  
녀석과 새로운 삶을 시작하면서 내겐 친구가 2명 생겼다. 물론 같이 노동일을 하는 친구였다.
곱상한 얼굴에 계집애처럼 생긴 남 민혁. 하는 짓이 못마땅한 빤질빤질한 윤 대규. 둘 다 나보다 한 살 위다. 민혁은 쉬는 날이면 늘 나를 데리고 낚시를 간다. 낚시 광은 아니고 물고기를 잡아 매운탕 집에 팔아 돈을 벌려는 알뜰한 친구다. 반면 대규는 계집애들 꽁무니만 쫓아  다니는 친구다. 수단이 좋아서 자랑삼아 떠드는 소리를 들으면 한 달이 멀다하고 파트너가 바뀐다. 여주 공업단지 근처에 조그만 언덕이 있는데. 그 곳이  대규의 포인트다.
“공순이들. 대학생이라면 환장을 해서....... 책 몇 권 옆에 끼고 앉아 있으면 미끼를 콱 물지.”
대규가 늘 하는 말이다. 대규 이야기를 들으면 계집애들 만나면 바로 그날 끝장을 본다는 것이다.
“요즘 성적 개념이 너무 무질서 하단 말이야.”
민혁은 대규 이야기를 들을 때 마다 늘 그 말을 입버릇처럼 하며 못마땅해 한다.
“아카시아 꽃이 피면 가장 좋은 시기야. 모기도 없지 춥지도 않지. 걸치고 갔던 점퍼 깔고 그냥 흐흐........”
대규 녀석이 자랑하는 말끝은 항상 그렇게 끝낸다.
“길어야 1년이지. 빠르면 그날 끝내고. 아카시아 꽃이 피면 늘 난 그렇게 낚시를 시작하지.”
대규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그 친구 만나지 이제 한 달도 안돼서 벌써 그 친구 파트너 여자는 한 번 바뀌었다.
처음에 본 여자는 죽은 깨가 볼에 조금 있던 대규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여자였는데. 지금은 도톰한 몸집의 대규와 같은 또래의 경상도 여자였다.
만나지 얼마 안돼서인지. 대규가 일이 끝나면 늘 기다리고 있다가 같이 어디론가 간다.
“아직 모기가 없어서.......”
대규는 아직 방이 없다. 조경업자가 마련해 준 컨테이너 박스에서 민혁과 같이 잔다. 그렇다고 모기도 없는데 숲에서 하면 됐지 굳이 모텔까지 가느냐 하는 말이다.

할머니 집에  세 들어 살기 시작한 지 2달이 조금 넘었을 때. 그 계집애 같던 민혁은 몸이 아프다는 이유를 대고 서울로 올라갔다. 지현이 녀석이 학교에서 늘 늦게 귀가를 하므로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자 자연스럽게 난 대규와 가깝게 지내게 되었다.
지현이 왜 늦게 귀가를 하는지. 그 이유를 물어보면 공부를 열심히 하느라 늦어진다고 대답한다. 남들보다 2개월이나 늦게 학교에 입학을 한 지현이 같은 반 친구들 수준을 따라 가려면 열심히 많이 배워야하는 것은 사실이다. 어리지만 애늙은이 같은 녀석이기에 그 녀석 말을 난 믿었다.
“이거 들고 따라와!”
대규가 책 두 권을 내게 던지다시피 주며 말했다.
한자로 法學通論 이라 써진 책과 刑法 이라 써진 책이다.
“이제부터 넌 법대생이야. 잊지 마!”
대규는 그렇게 날 데리고 계집애들 낚시터에 처음 동행을 하게 되었다.
“요즘은 모기가 있어서 숲엔 작업하기가 힘들어. 관광지로 가야 돼. 실륵사라고 있는데. 그 근처에 멋진 바위들이 강가에 있어. 거기 큰 소나무 하나가 있는데. 얼른 가면 명당자리를 잡을 수 있을 거야.”
대규는 행정학 책을 옆구리에 끼고 걸으며 말했다.
난 대규를 따라 여주로 가는 버스를 타고 한강을 건너기 전에 검문소 옆에서 내렸다.
“잘해 임마!”
대규가 내 어깨를 탁 쳤다.
강가로 조금 내려가니 큰 바위들 가운데 잘생긴 제법 큰 소나무가 한그루 서 있었다.
대규는 그 소나무를 중심으로 하류 쪽을 바라보며 앉았다.
“넌 거기 앉아.”
난 대규가 앉으라는 상류 방향으로 앉았다.
“그냥 책을 읽는 척 하면 말을 걸어 올 거야. 그럼 법대생인 척 하면 돼.”
대규가 손에 책을 펼치고 책을 읽는 자세 그대로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저 검문소가 보이는 길목에 한 무리 여자들이 나타났다.
대규 눈에 이미 그들이 보인 것이다.
난 법학통론을 꺼내 펼쳐 보았다.
“제길! 무슨 한자가 이리 많아. 읽을 수가 없잖아.”
내가 투덜거렸다.
“누가 읽으래. 그냥 읽는 척 하라니깐.”
대규가 작은 소리로 얼른 말했다.
한 무리 여자들이 이미 지척에 다다르고 있었다.
“어머! 여기 경치 좋다! 애들아! 우리 여기서 사진 좀 찍고 가자!”
여자들이 우르르 몰려오며 호들갑을 떨었다.
난 여자들 얼굴을 바라 볼 용기가 없어서 얼른 책을 읽는 척 했다.
“와아! 경치 정말 짱이다.”
호들갑을 떨던 여자 하나가 내 앞으로 와서 섰다.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그 여자의 신발이 내 무릎 앞에 보였다.
“어머! 아저씨 법대생이에요?”
거리낌 없는 여자의 도발적인 물음에 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떡이고 말았다.
“어느 대학이에요? 고대? 연대? 서울대?”
그 여자의 물음에 고개를 끄떡인 다는 것이 공교롭게도 서울대? 라고 물은 뒤였다.
“서울법대 다니세요?”
그 여자가 다시 확인하듯 물었고 난 고개를 끄떡였다.
“아저씨!”
그 여자가 작은 소리로 날 불렀다.
처음으로 난 고개를 들어 그 여자를 봤다.
나와 비슷한 나이의 눈이 서글서글한 도톰한 얼굴을 갖은 여자였다.
그 여자 눈이 반짝 이채를 띠었다. 그 여자도 내 얼굴을 처음 본 것이다.
“옆에 앉아도 돼요?”
“네!”
그 여자 물음에 난 짧게 대답했다.
그 여자는 내 왼쪽에 살며시 앉았다.
힐끗 대규를 보니까 그 친구 옆에도 어느새 한 여자가 다가서 말을 걸고 있었다.
“애들아! 먼저 가! 난 이 아저씨랑 이야기 좀 하다가 갈게.”
내 옆에 앉은 여자가 함께 온 여자들에게 하는 말이다.
“잘 해봐! 우린 간다.”
도대체 몇 명이 왔는지 난 그 여자들을 처다 볼 용기도 없었다.
떠드는 소리가 없는 것이 이미 모두 사라진 모양이다.
“아저씨 이름이 뭐에요?”
내 옆에 앉은 여자가 나에게 묻는 말이다.
본명을 절대 가르쳐주면 절대 안 돼. 대규가 나에게 늘 입버릇처럼 한 말이다.
“강 지혁.”
난 지현이 이름이 생각나서 얼른 그렇게 둘러댔다.
“전 박 혜경. 지난 대입 시험에 미끄러지고 지금은 노는 중이에요.”
“아! 그래요? 그럼 저와 나이가 비슷하네요.”
“몇 살이신데요?”
“이제 20살.”
“동갑이네요. 그럼 우리 말 놓고 편하게 이야기 하죠?”
“아! 네! 그러죠. 뭐.”
“만나서 반갑다! 지혁아!”
혜경이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노동일이나 하는 내가 법대생이라는 포장을 하고 위선 속에 만난 그녀  박 혜경.
내가 뜻하지도 않게 그녀에게 이끌려 그날 모텔까지 직행을 하고 말았다. 내가 낚시를 한 것인지 그녀가 낚시를 한 것인지. 나에게 다가온 첫 여자의 추억은 달콤한 환상 속에 그렇게 스치듯 지나갔다.
왜? 녀석이 마귀할멈인지 그날 집에 돌아와서 난 알았다.
“킁킁........”
녀석이 내 몸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어느 여시 냄새가 나는데? 누구야?”
지현이 토끼눈을 뜨고 날 노려보며 물었다.
“무슨 말이야? 여시는 무슨?”
난 제대로 변명도 못하고 머뭇거렸고.
“핸드폰 줘봐.”
녀석이 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뺏듯 꺼내들었다.
“이게 누구야? 뭐 혜경? 누구야? 이 여시가 누구냐고? 왜 말을 못해? 얼른 말해?”
“오늘 처음 만난 여자야. 친구 하기로 했어.”
내가 왜 녀석에게 그런 해명까지 해야 하는지 나 자신도 도통 알 수 없었다.
“친구 좋아 하시네? 친구하고 몸을 비비고 그랬냐? 온 몸에 여시 냄새가 아주 코를 찌르네. 코를 찔러.”
녀석이 갑자기 혜경이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무슨 짓이야? 이리 안줘?”
난 얼른 녀석 손에서 핸드폰을 빼앗아 종료 버튼을 눌렀다.
“으앙........”
갑자기 녀석이 주저앉아 울기 시작한다.
“무슨 일인고?”
녀석 울음소리가 워낙 크자  할머니가 놀라 뛰어 들어왔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난 얼른 놀란 할머니를 안심시키고 있는데. 녀석이 내 손에서 다시 핸드폰을 빼앗아 들고 밖으로 뛰어 나갔다.
“아무것도 아닌데? 아가가 울어? 아기를 울리면 오빠가 안 되지.”
할머니가 날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네! 제가 좀 잘못 해서........ 죄송합니다. 다음부턴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난 얼른 할머니를 돌려보내고 싶었다. 녀석이 혜경에게 전화를 걸어 무슨 말을 할지 모르기 때문에 얼른 녀석을 따라 가려는 급한 마음에서였다.
“암! 그래야지. 하나뿐이 오누이가 싸우면 되나.”
눈치도 없는 할머니는 도무지 내 앞을 비켜줄 생각을 하시지 않는다.
한참이 지나 녀석이 생글생글 웃으며 들어와 내게 핸드폰을 돌려주고서야 할머니는 밖으로 나가셨다.
할머니가 나가고 난 급히 밖으로 나와 혜경에게 전화를 걸었다.
“혜경아!”
내가 무슨 변명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먼저 그녀를 불렀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어. 뭐? 대학? 법대생? 야! 어디서 애 딸린 홀 애비가 성형수술은 해 가지고....... 어려 보여서 깜박 속았잖아. 다신 연락하지 마. 시발! 재수 옴 붙었네.”
그녀가 투덜대며 전화를 끊어 버렸다. 내가 다시 전화를 해도 그녀는 다시는 받지 않았다.
그녀 이야기를 다 듣지 않아도 녀석이 그녀에게 뭐라고 말을 했는지 훤하다.
내가 아빠며 성형 수술을 해서 젊게 보이는 것뿐이다. 뭐 대충 그런 말을 한 것 같다.
“이........! 마귀할멈 같은 녀석이.......!”
난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나온 마귀할멈. 그 말을 하고서야 녀석이 학교 친구들 사이에 왜 마귀할멈이라는 별명이 붙었다는 것인지 알 수 있었다.
“흐흐......... 그래서였어. 녀석 별명이 그래서 마귀할멈! 흐흐.........”
난 허탈하게 웃으며 방으로 들어왔다.
“.........!?”
녀석은 이불을 깔고 엎드려 울고 있었다.
“지현아! 왜 울어?”
난 얼른 녀석 옆에 앉아 녀석 등을 토닥거렸다.
“오빠! 이제 나와 헤어지고 싶은 거지? 날 버리려는 거야?”
녀석이 얼른 내 품속으로 얼굴을 파묻으며 울음 섞인 음성으로 물었다.
“아냐! 내가 왜 널. 절대 아냐! 우린 오빠와 동생이잖아. 내가 널 버리는 일은 절대 없을 거야. 그러니 울지 마라!”
난 두 손으로 녀석 얼굴을 포근하게 안아줬다.
“정말?”
녀석이 내 품에서 벗어나 내 얼굴을 빤히 처다 보며 두 눈을 반짝 빛냈다.
“암! 약속할 수 있어. 절대 널 버리는 그런 일은 안 해.”
“그럼 손가락 걸고 맹세해.”
녀석이 새끼손가락을 내민다. 난 얼른 녀석 새끼손가락에 내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도장. 복사. 히히....... 그 약속 잊지 마? 다시 그런 일이 있으면 혼난다. 알았어?”
“어! 그래 알았어.”
“뭐? 법대생? 어디서 허풍만 늘어 가지고. 그래도 진실 하나만 있다고 믿었더니 어디서 그런 허풍을 배웠어? 그 대규 오빠 따라 다니더니 물들었지? 다신 대규 오빠랑 놀지 마. 알았어?”
“아. 알았어!”
난 녀석 앞에서 마치 고양이 앞에 쥐처럼 쩔쩔매고 있었다.
녀석과 함께 살아온 지 벌써 3개월 가까이 되면서 마치 정말로 녀석과 오누이가 된 듯 깊은 정이 들었던 것이다.
“뭐해? 얼른 씻고 와! 밥 먹어야지. 설마 그 여시랑 저녁까지 먹고 온 것은 아니지?”
“앙! 아니지 그럼! 얼른 씻고 올게.”
난 얼른 수돗가로 나갔다. 마당 한 쪽에 있는 수도꼭지를 틀고 시원한 물을 두 손으로 받아 얼굴에 연거푸 퍼붓다시피 했다. 시원했다. 정신이 맑아졌다. 젠장! 대규 그놈 따라갔다 이게 무슨 꼴이람. 난 스스로 생각해도 내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뭘 해? 빨리 들어오지 않고?”
녀석이 방문을 열고 소리쳤다.
“앙! 그래 들어간다. 들어가.”
난 얼른 녀석이 기다리는 방으로 들어갔다. 방 가운데 조그만 상위엔 이미 녀석이 차려놓은 따뜻한 밥과 국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학교 갔다 오면서 미나리랑. 밭에서 솎아낸 얼갈이배추를 좀 갖고 와서 무쳤어. 맛있지?”
녀석이 내가 반찬을 먹는 모습을 보며 물었다.
“응! 지현이 반찬 솜씨는 최고야.”
정말 그랬다. 어느새 난 녀석 반찬에 길들여지고 있었다. 식당 반찬보다 녀석이 만들어주는 반찬이 맛있고 좋았다.
“킁킁....... 이런 오빠! 밥 먹고. 얼른 옷부터 세탁하게 벗어. 그 여시 냄새 때문에 골치가 아프네.”
녀석이 갑자기 내 옷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으며 말했다.
“알았어!”
“히히........”
녀석이 갑자기 웃는다.
“왜?”
“오빠가 이제야 수수께끼를 풀은 모습이네.”
“무슨 수수께끼?”
“내가 왜? 마귀할멈인지 그 것을 말이야. 히히.........”
이런 진짜 마귀할멈 같은 녀석이 눈치도 빠르네. 그건 또 어떻게 알았을까.
“오빠 얼굴에 그렇게 쓰여 있어. 나를 보는 눈길이 이런! 마귀할멈 같은 녀석! 하는 내용이 그대로........”
캭! 녀석 진짜로 마귀할멈이 아닐까? 그런 것도 다 알고. 난 녀석이 무척 신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라 할 말이 없는 나는 그냥 입가에 미소를 띠며 녀석을 바라보았다.
“명심해! 오빠랑 내가 한 방에서 생활한지 벌써 3개월째야. 이미 오빠 냄새라면 내 코에 저장이 됐다고. 여시 냄새가 조금만 묻어도 바로 알게 되니깐. 두 번 다시 그런 일이 있으면 혼날 줄 알아? 엉?”
“아. 알았다니깐.”
“좀 억세지만  아직은 냉이 국이 먹을 만하지?”
“응! 맛있는데.”
“내년엔 메주로 된장을 집적 담아야겠어. 시장 표는 맛이 없어. 그치?”
“아냐! 난 네가 해주는 것은 다 맛있어.”
“엥? 이 오빠가 왜 갑자기 날 비행기태우기 시작하지? 또 샛길로 빠지려는 수작 아냐?”
“샛길이라니?”
“또 법대생 행세를 하며 여시하고 놀려는 수작 아니냐고?”
“아니야! 절대 아니라니깐.”
흐흐........ 이거 내 꼴이 이게 뭐야. 저 녀석 손아귀에서 난 완전히 꼼짝을 못하잖아. 난 정말 내 꼴이 우스웠다. 이걸 그냥! 콱! 난 그렇게 녀석을 혼내주고 싶었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정말 녀석이 친동생 같아서........ 내가 야단치면 울까봐. 녀석 마음에 상처를 줄까봐. 난 그렇게 하지 못했다.
새어머니 학대에 못 견디고 집을 뛰쳐나온 어린 녀석이 저렇게 밝게 웃고 떠드는 것도. 나에게 친동생처럼 잔소리와 간섭을 심하게 하는 것도. 아마 가슴 속 깊이 슬픔을 감추느라 애쓰는 모습 같아 내 눈엔 오히려 녀석이 한없이 불쌍해 보인다.
“이제부터 돈 벌어오면 다 나한테 맡겨. 허튼 데 다 쓰고 언제 서울 갈래?”
“서울? 너 서울 가고 싶구나?”
“큰 물고기는 큰물에서 살아야 한다고 했잖아. 벌써 잊었어?”
“그래서 서울로 가려고? 방 얻을 돈 모아서?”
“당근. 내가 알아보니 서울 변두리 싼 곳은 500만 원 정도 보증금이면 얻을 수 있더라. 월세도 한 달에 30만 원 정도고....... 음......! 월세가 아닌 전세라도 얻으면 좋은데. 그건 서울 가서 열심히 벌어서 마련하자고. 알았지?”
“녀석.......! 서울 가려는 마음을 아직 접은 게 아니었구나? 알았다! 얼른 벌어서 서울로 가자.”
“서울 가면 방 두 개짜리를 얻어야 돼. 나도 이제 다 컸으니 언제까지 오빠랑 한 방에서 자. 알겠어? 나와 오빠는 괜찮다 하더라도 남들 눈엔 이상하게 보이거든. 히히.......”
녀석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얼굴을 붉히며 웃는다.
“자! 이 통장 네가 관리해.”
난 그동안 모아놓은 돈이 들어있는 통장을 녀석에게 맡겼다.
“헤......! 이 오빠가 정말 날 믿는구나! 고마워. 믿어줘서.”
“마! 오빠가 동생을 안 믿으면 어떻게?”
“그럼! 그럼! 이제야 오빠가 철이 드는구나. 역시 남자는 여자를 알아야 철이 든다고.”
“무슨 말이야?”
“누가 모를 줄 알고? 그 여시랑 잠까지 잔 것 다 알아! 오빠가 부쩍 어른스러워 졌거든. 하지만 그 여시는 절대 안 돼? 진실이 없이 사귄 여자는 오래 못가. 사랑은 진실해야 하거든. 언젠가는 그 거짓이 드러나고. 서로 속이고 속은 사실을 알면 사랑은 깨어지더라.”
“호! 너 정말 모르는 게 없구나?”
“우리 아빠와 엄마 이야기. 그리고 친구 녀석 부모님 이야기를 인용한 것뿐이야.”
“그래? 아무튼. 그렇다 해도 넌 역시 별명이 잘 어울려. 애늙은이. 마귀할멈. 흐흐........”
“헤....... 친구들이 그 별명 괜히 지어 줬겠어? 다 겪어보고 지어준 별명이야.”
“아주 맘에 든 모양이네. 별명이?”
“응! 맘에 들어. 친구 녀석들이. 나에게 그 별명을 지어준 결정적 계기는 따로 있거든.”
녀석이 밥을 다 먹고 보리차를 컵에 따라 내 앞에 놓으며 묘한 미소를 짓는데. 무슨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 모양이다. 난 아직 남은 밥을 얼른 입에 떠 넣고 보리차를 마시며 녀석 얼굴을 바라보았다. 빨리 이야기를 시작 하라고 재촉하는 표정으로.
“급하긴! 상이나 치우고 말해 줄게.”
마귀할멈 같은 녀석 이미 내 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난 얼른 일어나 같이 상을 치웠다.
“설거지까지 해줄 기세네?”
“으으....... 설거지 해달라는 말이구나? 알았다! 하지! 우리 귀여운 동생 손에 습진이라도 생기면 안 되니깐.”
난 얼른 팔소매를 걷어 부치고 설거지를 시작했다. 내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녀석은 방을 열심히 청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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